살아가는 이야기/몸 공부, 마음 이야기

마음도 좋아지는, 몸을 위한 일

모두 빛 2008. 1. 21. 14:18

어제도 진눈깨비가 오더니 오늘도 이어진다. 연 이틀 집 둘레만 있었더니 몸이 영 말이 아니다. 책을 보는 것도, 아이들과 장기를 두는 것도, 요가나 태극권을 하는 것도 잠시 잠깐이다.

 

몸을 움직이는 일을 너무 안 했더니 몸이 몸답지가 않다. 오늘 아침에 깨어나서부터 몸이 개운하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목둘레가 뻐근하다. 어깨도 무겁고 뻣뻣하다. 목 돌리기, 어깨 돌리기 운동을 해도 굳은 근육이 풀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일을 해야 할 듯. 이럴 때 내가 즐기는 일이 지게질. 눈발이 내리는 가운데 지게를 지고 나섰다. 이 일은 오직 몸을 위한 일이다. 사실 땔감으로 치면 적어도 보름 정도는 저축을 해 놓은 게 있다. 굳이 눈을 맞으며 나서야할 절박함은 없다.

 

지금 내게 절실함이란 오직 몸. 굳은 몸을 풀어주는 일이다. 지게는 그 자체 무게만도 10키로 정도 된다. 이를 등에 지고 산을 오른다. 운동으로 치면 가벼운 등산이다. 쓰러진 나무를 톱으로 베어 지게에 싣는다.

 

이 때 짐을 많이 싣지 않는다. 지게 무게를 다 해서 40키로 넘지 않는다. 30키로 정도가 적당. 지게 무게를 뺀 나무 무게는 기껏 20키로다. 이렇게 지게질을 하게 된 동기는 산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사람이 지게질 하는 걸 본 뒤부터다. 처음 그 사람이 지게질을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영 낯설었다. 내 눈으로 얼핏 보기에 지게 짐이 10키로 남짓. 그걸 짐이라고 지고는 걸음걸이가 춤추듯 나긋나긋하게 산을 내려오는 게 아닌가. 딱 하루치 땔감 정도. 처음 볼 때는 비웃음이 절로 났다. 노인네도 한 짐 가득 지는 데 장년 정도 나이에 너무 한 거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런데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이해가 된다. 만일 한꺼번에 무리하게 짐을 지면 무릎을 비롯하여 여러 군데 무리가 된다. 시골 어른들치고 근골격계 질환이 없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무리하게 몸을 혹사한 결과라고 본다. 나 역시 요즘은 지게질을 가볍게 한다. 눈이 올 것을 대비해 나무를 넉넉히 쌓아두고 싶다면 하루에도 여러 번 산을 가면 된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며칠만 계속 하면 땔감이 금방 넉넉히 쌓인다.

 

땔감을 지고 산을 내려오는 운동은 올라갈 때보다 한결 변화가 많다. 우선 무게. 30키로 무게를 등짐으로 지니 목이랑 어깨 근육이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줄었다 하며 운동이 된다. 한 발 움직일 때마다 균형이 달라지니 목과 어깨 근육이 움직인다. 게다가 내려오는 길은 균형 잡기가 더 어렵다. 가파른 길이나 바위를 비켜가는 길에서는 몸을 비틀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 또한 지게 짐이 둘레에 서있는 나무에 닿지 않게 몸을 좌우로 돌리면서 내려와야 한다.

 

지게질 운동을 말로 다 설명하기가 어렵다. 배, 허리, 다리, 발끝 모두가 함께 하는 운동이다. 산을 오르내리는 지형에 따라 자세와 움직이는 근육이 자유자재로 달라진다. 호흡 운동도 자연스럽다. 그러니 지게질은 체조나 요가 그 어떤 운동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고유한 운동이 아닐까. 이렇게 지게질로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그냥 빈 몸으로 오르내리는 일은 심심하고 재미가 덜하다.

 

또 하나, 지게질의 좋은 점. 일에 몰두하기에 운동이라는 생각을 잊고 한다는 점이다. 요가나 태극권을 할 때는 대개 ‘이게 운동이다’라고 의식하면서 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 하기 싫어도 하게 되는 모순에 빠지곤 한다. 꾸준히 하지 못하면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게 된다.

 

그러나 몸을 위한 일은 그렇지가 않다. 일이 곧 운동이 되는 셈이니 자연스럽다. 그 일에 몰두할 수 있고, 몸이 자연스럽게 풀리게 된다. 또한 일이 곧 우리 몸을 덥히는 에너지가 된다. 일과 에너지가 바로 연결된다.

 

집에 내려와 가져온 나무를 도끼질로 쪼갰다. 이 도끼질은 지게질의 마무리 일이자 마무리 운동이다. 집안으로 들어오니 기분이 아주 좋다. 마음을 위한 일은 몸을 힘들게 할 때가 가끔 있다. 하지만 몸을 위한 일은 몸도 좋고 마음도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