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겪는 아픔이 있다. 바로 두통이다. 일년에 서너 번, 이 아픔이 온다. 그 이유는 잘 모른다. 뇌 자체에 어떤 이상인지 아니면 나를 둘러싼 환경에 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모른다.
어릴 때는 아프면 그냥 견디는 걸로 지냈다. 그 당시는 병원 가는 건 고사하고 약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아프고 나면 나아졌다. 시골로 와서는 내 몸에 어느 정도 집중을 하면서 다양한 자연요법과 대체의학을 연구하고 또 내 몸을 실험삼아 이런저런 치료를 해보았다.
민간요법은 정말 가짓수가 많다. 사람마다 처방전이 다르다고 해야 할 정도다. 버드나무껍질을 다려서도 먹고, 그 외 옥수수차, 무즙, 칡, 파, 검은콩…….사실 두통에 좋지 않는 게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런 음식과 더불어 머리 두드리기. 이걸로도 안 되니 뜸과 사혈 그리고 침놓기도 했다. 사혈은 손가락을 사혈 침으로 찔러 피를 빼는 거다. 이렇게 해도 나아지지 않으면 열 발가락을 찌른다. 다하고 나면 휴지가 피로 범벅이 되지만 두통은 나아지지 않았다. 침은 누구에게 놔 달라고 하기도 그러니 손수 놓았다. 오른 손으로 왼손과 팔뚝을, 왼손으로 오른손과 오른 팔뚝의 침자리에 침을 놓았다. 침을 다 놓은 내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외계인이 된 듯했다. 하지만 흔쾌히 치료가 된 적이 없었다. 그럴 때 절망감이란! 지난 10년간 감기에 걸린 적은 한번도 없지만 이렇게 일년에 서너 번 머리 아픈 건 내게는 천형에 가깝다.
한동안 아픔을 견디기가 어려워 진통약을 먹곤 했다. 한 알도 많으니 알약을 반으로 갈라 반만 먹는다. 자고 나면 신기하게도 아픈 게 나았다.
그런데 어제 또 아픔이 왔다. 아침부터 머리가 무겁더니 살살 아파온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는 잠을 잤다. 자고 나니 잠깐 좋아지는 듯하더니 여전히 무겁다. 오후에는 이웃에서 식사 초대를 해주어 이웃들과 어울리느라고 두통을 덜 느꼈다. 집에 돌아오니 다시 무겁고 아팠다.
저녁을 굶었다. 잠을 잤다. 한 시간 정도 자고는 또 깼다. 머리가 무겁다. 다시 잠은 안 오고 산책을 했다. 논두렁 밭두렁을 걷는다. 인터넷을 좀 했다. 시간을 잊는 데는 인터넷이 어느 정도 도움 된다. 자려고 누우니 다시 아프다. 찌근찌근. 약을 먹을까. 좀더 참아볼까. 비몽사몽 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니 머리가 한결 좋아졌다. 내게는 기적에 가깝다. 반나절 만에 두통이 물러가는 증세가 오는 게 아닌가. 어제 저녁을 굶었더니 한결 식욕이 돋는다. 아침에 무 밭에 무를 솎는데 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설 때만 조금 아픔이 있다.
아침을 먹고 나니 점점 머리가 나아진다. 이 기분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뿌연 시야가 걷히는 느낌. 어두운 동굴이 점점 밝아지는 느낌. 황홀감도 된다. 약을 먹고 나을 때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몸의 변화다. 아주 서서히 나아지는 느낌. 몸 스스로가 수술을 하고, 스스로 다시 꿰매고, 스스로 새살이 돋는 그런 느낌. 끊어진 다리가 다시 연결되고, 막혔던 흐름이 제대로 흘러가는 느낌. 이런 느낌을 글로 다 적기는 어렵겠다.
이런 내 몸 변화에 감격하여 지난 일기를 찾아보았다. 다행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나온다. 지난해 12월이다. 그때는 약을 먹고 고비를 넘긴 걸로 나온다. 그리고 보니 거의 일년 만에 두통이 온 거고, 이번에는 약에 의존하지 않고 몸 스스로가 이겨냈다.
그 당시 글에 홈페이지 회원들의 댓글도 많이 달렸다. 다시 읽어본다. 내가 진단한 내 두통의 원인은
‘아픈 과정을 돌아보면 아무래도 내 행동과 마음이 작용한다. 뭔가 뇌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기에 아픈 것이다. 뇌 자체가 무슨 문제가 있게 타고 났더라도 내 몸을 다시 움직이는 건 역시 나다. 천형을 천은(天恩)으로 바꾸는 게 내 몫일 것이다. 몸가짐, 마음먹기를 늘 잘 해야 한다. 수행이 별거 인가. 아픈 데서 벗어난 게 수행일 테다.’
자연 건강을 연구하는 회원이 전해준 댓글에 따르면 두통의 원인으로는 뼈와 피에 문제가 있단다. 특히 목뼈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뇌로 가는 혈관과 신경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또 다른 이야기는 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다. 장에 숙변이 특히 태변이 남아 있다면 평생 두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이럴 때는 단식이 효과를 본단다.
사실 병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는 건 쉽지 않다. 어느 한 가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원인을 정확히 안 다면 치료도 바로 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어쨌든 이제 서서히 천형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다. 통증 횟수도 줄고, 그 증세도 심하지 않으며, 몸 스스로 이겨낼 정도로 나아지고 있다. 이를 확인하는 아주 소중한 자료는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이 글 역시 내가 나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소중한 차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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