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몸 공부, 마음 이야기

꼬리에 또 꼬리

모두 빛 2008. 7. 11. 11:38
 

 

새벽노을이 자귀나무 꽃이랑 어울려 아름답다. 이제 큰 김매기는 웬만큼 했다. 장마라더니 가문 장마 때문에 김매기는 쉬웠다.

 

이제 짐승 피해를 막을 준비. 올해는 유난히 짐승 피해가 심하다. 분홍 감자를 멧돼지가 파  먹지를 않나, 서리태는 고라니가 절반 가량을 먹어치웠다.

 

서리태 밭에는 얼마 전에 부랴부랴 울타리를 쳤다. 그런데 집 뒤에 있는 메주콩 밭도 안심을 할 수 없다. 고라니가 오지 말라고 밤이면 불을 밝히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한다면 전기세도 문제고, 밤에 불을 계속 켜두면 곡식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오늘 새벽부터 울타리를 치는 일을 시작. 우선 쇠파이프 준비. 여기저기 논밭 둘레에 흩어져있던 쇠파이프를 한 곳으로 모았다. 그렇게 하다보니 풀이 무성한 곳이 많아 낫으로 풀을 벤다. 하다보니 서양자두 나무에는 환삼덩굴이 나무 위까지 뻗어있다. 낫으로 치다보니 잘 익은 자두가 있다. 견물생심이라고. 말랑말랑 자두, 하나 둘 잘 익은 걸 골라서 땄다.

 

다시 원래 울타리 치는 일을 해야지. 쇠파이프가 휘어진 게 많아 망치로 반듯하게 했다. 굵은 쇠파이프는 해머가 필요하다. 공구를 찾는 김에 펜치와 철사도 같이 준비. 잠깐 물 한잔 먹고 한다고 집안으로 들어왔는데 또 다른 일이 보인다.

 

오늘 아침 먹을 쌀은 내가 준비해야했다. 어제 방아 찧고 남은 마지막 쌀에는 돌이 많다. 돌을 물로 가려내야 한다. 쌀을 씻고 나서 다시 울타리 치는 일. 큰 쇠파이프를 해머로 박았다. 중요한 모서리는 큰 쇠파이프, 중간에는 작은 쇠파이프. 한참 하는데 밭 둘레를 타고 넘어 들어오는 칡덩굴이 보인다. 낫으로 칡덩굴을 벤다. 그냥 무시하고 파이프 박는 일에 집중을 하면 좋으련만 그게 안 된다. 이 놈이 조만간 옥수수를 타고 올라갈 기세다. 칡을 다 베고 나서 다시 울타리 치는 일. 풀숲에 던져둔 해머를 찾아 쇠파이프를 마저 박았다.

 

밭 끝머리까지 쇠파이프 박고 나자 이번에는 물탱크가 궁금하다. 요즘 가물었기에 물이 새삼 소중하다. 어제 이웃이랑 상수도 공사를 했는데 밤사이 물이 많이 들어왔나? 뚜껑을 열어보니 어느 정도 들어온다. 안심을 하고 다시 울타리 치는 일.

 

이제 철사로 울타리를 쳐야한다. 동네 어른들에게 물어보니 고라니는 줄을 짐승몸통 정도 높이로 쳐야한단다. 너무 낮으면 훌쩍 뛰어 들어오고, 너무 높으면 울타리 아래로 들어온단다. 해 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하는 김에 두 줄로 울타리를 쳐야겠다.

 

이렇게 오늘 일은 두서가 없다. 울타리 치는 일을 생각조차 안 하다가 갑자기 일을 시작해서 그런가. 아니면 날이 너무 더우니까 머리가 잘 안돌아서인가? 중심에 집중을 못하고 한 가지 하다가 곁에 또 다른 일이 생각나면 또 그 일을 하고. 몸통은 나 두고 꼬리를 만지고, 또 그 꼬리에서 또 꼬랑지를 만지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