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에 사는 자원(16)이가 우리 집에 왔다. 홈스쿨링 3년차 여자 아이. 손님 아이들은 일단 우리 집에 오면 이 곳 질서와 흐름을 따른다.
우리는 아이들이 오면 먼저 배울 준비가 되어있다. 자원이가 잘 하는 피아노에 대한 기대가 있다. 이거 말고도 탱이가 자원이에게 기대하는 건 운동이다.
“자원이 오면 우리 식구 요가를 배워볼까?”
상상이는 저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누나가 온다는 거 자체에 관심을 가진다. 우리 부부 역시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다.
자원이 역시 우리 집에 온 목적이 분명하다. 우리 집에서 틈틈이 수학공부를 하려고 준비를 해왔지만 거기에 매이지 않는다.
“언니네 집에서 배울 게 많으면 꼭 수학은 안 해도 되”
자원이가 저녁에 도착을 했다. 상상이가 끓인 떡국을 먹었다. 자원이 관심 가운데 하나가 요리다. 우리 집에 오기 전부터 엄마와 이야기를 했나보다. 요리를 많이 배워오라고. 직접 와서 보니 점심은 탱이 언니, 저녁은 상상이가 한다는 걸 눈으로 보고 바로 느낀다.
자원이는 피아노 치는 게 자연스럽다. 아니, 생활화되었다고 해야 할까. 우리 집 디지털 피아노는 건반도 부족하고 소리도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대도 피아노에 자신을 맞추어 편안하게 친다. 우리 아이들은 자원이가 피아 노치는 걸 보고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자극이 된다. 잘 안 되거나 궁금한 건 거리낌 없이 자원이에게 묻는다.
그 다음날 아침에는 밥을 먹기 전에 운동 시간. 자원이가 요가를 가르칠 준비가 덜 되어 있다고 우리가 하는 태극권을 먼저 배우겠단다. 몸풀기 운동을 하는데 자원이는 두 팔을 어깨너비로 수평이 되게 벌렸을 때 왼쪽 어깨가 위로 조금 올라가는 모습을 보인다. 본인은 그걸 모르고 있다. 서로 자세를 교정해가면서 태극권을 끝내고 바로 밥을 먹자니 서운했다.
“자원아, 한 가지 동작만이라도 요가를 해 보자”
자원이는 한동안 요가를 안 해서 기억을 되살리며 가르쳐준다. 요가를 해 보니 나와 상상이 몸이 뻣뻣하다는 걸 새삼 다시 느낀다. 나도 올 겨울은 틈틈이 요가를 다시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렇게 우리는 여럿이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받는다. 사실 우리는 식구끼리만 해도 자극을 주고받는 게 많다. 하지만 이렇게 손님이 오면 빨대로 빨아들이듯 자극을 받고자 한다. 물론 상대방이 배우고자하면 가르치는 것도 그렇게 한다.
자원이가 평소 관심이 적은 분야지만 관심을 갖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림이다. 탱이는 요즘 그림에 푹 빠져있다. 자원이에게 그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서 아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는 즉석에서 자원이가 만다라를 그렸다. 느낌이 참 좋은 그림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자원이에게 글쓰기와 관련해서 나누고 싶은 게 많다. 우리가 쓴 글을 자원이가 봐주고, 우리는 자원이 글쓰기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를 바란다. 자원이는 거의 날마다 일기를 쓴다. 일기는 사실에 충실한 글쓰기. 이게 밑받침 된다면 다른 글쓰기는 어렵지 않다.
내가 자원이에게 주문한 건 주제가 있는 글쓰기를 해 보면 어떠냐고 했다.
“무슨 주제가 좋을까요?”
“성장에 대해 써보면 어떨까?”
“성장?”
“음, 자라는 아이들은 자기 성장을 느끼잖아? 사람마다 성장하는 모습이 조금씩 다르니까, 네 성장을 글로 드러내면 다른 사람한테도 자극이 많이 되리라고 봐”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한달음에 써내려간다. 저녁에 글쓰기 모임시간에 자원이는 여러 사람 앞에서 글을 발표했고, 모두에게서 박수를 받을 만큼 내용이 좋았다. 우리 부부는 우리 자신들이 쓴 글에 대해 늘 아이들 조언을 듣는다. 지금은 자원이까지 있으니 더 좋은 기회다. 자원이 이야기는 간단명료했다. 하지만 독자 한 사람으로서 해주는 이야기이기에 소중한 도움말이 된다.
이렇게 세세한 주고받기보다 더 큰 자극은 아무래도 삶을 온전히 나누는 것일 테다. 굳이 자랑하듯이 내세우지 않아도, 보고 느끼게 되는 삶의 전체 모습이랄까. 밥상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사소해 보이는 것들 하나에도 많은 게 녹아있다. 이어지는 수다 속에 번뜩이는 삶의 지혜. 때로는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서도 느끼는 게 얼마나 많나.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드는 그런 관계.
지난번 모내기 캠프 때, 자원이 남동생 양손이가 우리 집에 도착하면서 외쳤던 말이 생각난다.
“아저씨, 아줌마. 사윗감 왔어요”
열네 살 양손이 넉살이 싫지가 않았다. 사윗감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닌가. 자원이를 보면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 하나.
‘우리 며느릿감이구나’ ㅋㅋㅋ
자원아, 고맙다. 우리 집에 와 주어.
'살아가는 이야기 > 아이들은 자연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것에 두루 열려있는 아이, 명지 (0) | 2007.11.28 |
---|---|
[스크랩] 결혼기념일에~ (0) | 2007.11.15 |
[스크랩] 행복에 대한 란이의 그림 (0) | 2007.10.11 |
[스크랩] 브레인스토밍으로 엿보다. (0) | 2007.09.30 |
홈스쿨링 3년차(풀꽃처럼 김자원 글 펌) (0) | 2007.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