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스크랩] 결혼기념일에~

모두 빛 2007. 11. 15. 06:04

 

지난 10일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

아침에 일어나 습관대로 배추를 살피고(요즘 매일 아침 배추를 살피는 재미에 산다~)

아침밥을 하러 창고에 갔는데 내 손전화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응? 벨소리도 아니고 메세지 알림 소리도 아니고 도대체 뭔 소리지?

전화기를 살펴 보니 웬 스케쥴 알림?!

이건 또 뭐지? 이런 게 다 있었나?   

"결혼기념일! 추카추카~~ 엄마, 아빠 사랑해요~~ "

딸아이가 몰래 스케쥴 알림을 해 놓은 모양이었다.

아하~, 우리 결혼기념일~~.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전부터 아이들은 뭔가 은밀하게 준비를 하는 것 같던데~~ 

 

아침부터 두 자매는 쑥닥쑥닥 소곤소곤 계획을 수정하고

아들은 웬일로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밥도 차리고

"웬일이냐? 성학이가 방정리를 다 하고?"

"에이~~ 오늘은 결혼기념일 이잖아요~~"

 

"엄마, 오늘은 하귀집에서 자자~. 그래야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줄 수 있는데..."

이제 쭈욱 밭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챙겨오지 않은 살림살이들이 필요한 모양이다.

"선물을 준다는데 그러지 뭐~~"

 갑자기 내가 너무 먹고 싶었던 떡국을 끓여 맛나게 먹고

아이들의 지시(?)에 따라 우리 부부는 팔짱을 꼭 끼고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다.

그래야 선물을 받을 수 있으니까.

란이는 여기 저기에 메모를 써 붙이고 그 지시에 따라 움직이다 선물을 받을 수 있게 해 놨다.

그리고 경이는 안방 문에다 쪽지를 붙이고 <숨은 선물 찾기>를 하게 해 놓았다.

그리고 아들은? "청소하고 밥하고 했잖아요~! 이따가 안마도 해 드릴께요~^^" 하고 선물 끝.

란이와 경이는 정성스럽게 쓴 편지와 함께 돈이 들어 있는 봉투가 선물이었다.

헉! 웬 돈?!

돈을 보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하지만 사연이 있는 돈이었다. 편지에 정성스럽게 쓴 내용을 보고 알았다.

돈이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줄이야. 돈을 받고 감동 받긴 처음인 것 같다.

아이들의 돈. 내가 허투루 용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해서 조금씩 받는 돈인데....

 

이리저리 선물을 찾도록 우리 부부를 빙글빙글 돌리더니

다음엔 진짜 선물이 있다며 마루에 앉으라 그런다.

그리곤 두 자매가 척척 호흡을 맞추는 축하공연.

공연 대본도 미리 써 놓고(밭에서 지낸 관계로 많이 차질이 생겨 수정을 많이 본 모양이었다.)

사회자가 됐다가 배우가 됐다가 가수가 됐다가 연주자가 됐다가 하며

둘이 함께 백창우 아저씨의 노래 두 곡을 선정해서 노래테잎을 틀고 수화로 공연을 하기도 하고,

막둥이는 오카리나 공연을 한다며 듣도 보도 못한 곡 - 막둥이 작곡? - 을 연주하고,

또 조롱박 연주를 하겠다며 작은 조롱박 말린 것으로 이것저것 두드리고 비비며

세상에 하나 뿐인 막둥이만의 조롱박 연주를 하고,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삽입됐던 곡에 '키 작은 경이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개사를 해서 노래를 부르고,

란이는 같은 곡을 각각 분위기를 다르게 조금씩 편곡을 해서 피아노 연주를 해 줬다.

하지도 않은 앵콜을 받겠다며 가장 맘에 드는 곡을 고르게 하고 앵콜곡을 쳐 주는 센스까지~.

나는 신비로운 곡을 남편은 폭발적인 곡을 다시 듣기 요청했다.

어디서 편곡을 배운 것도 아닌데 란이가 연주한 피아노 연주는 정말 분위기가 다 달랐다.

그 어떤 유명한 연주자의 연주가 이보다 더 감동적일까?

아이들이 연주하는 내내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난 아이들에 대한 걱정스러움을 이제 완전히 떨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움, 배움에 대한 걱정스러움...

전보다 더 강한 믿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봐야지.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그대로 믿어야지...

 

 

아이들의 공연을 보는 남편의 얼굴이 말을 하는 듯 하다.

'이 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헤헤헤헤~~~~'

 

 

공연에 대한 답례로 진한 포옹을 해줬다.

 

 

막둥이도 꼬오옥~!

뼈가 으스러지게 아주 꼬오옥!

 

공연이 끝인가 했더니 케�을 준비했단다.

그리곤 꼭꼭 숨겨서 케�을 갖고 왔다.

쨔잔~~ 하고 공개한 케�은 바로 홍시.

 

"홍시 케�이야~!! 케� 살 돈이 없었고, 만들 시간도 없었고~~ ㅋㅋㅋ"

"우와~~ 정말 멋진 케�이닷! 정말 멋져!"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홍시 케�.  또 가장 감동적이었던 홍시 케�.

 

*

 

여러분도 홍시 케� 한 입 드세요~~ ^^

 

출처 : 살림
글쓴이 : 때리아 원글보기
메모 : 가장 값진 선물은 아이들 성장이 아닐까? 그 마음이 잘 드러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