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모든 것에 두루 열려있는 아이, 명지

모두 빛 2007. 11. 28. 18:35
 

 

 


봉화에 사는 명지가 우리 집에 왔다. 명지는 열여섯 살 홈스쿨러. 초등학교를 마치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명지와 우리 집은 인연이 제법 오래다. 그러니까 명지가 초등 5학년 때인가 부모랑 우리 집을 들렸다.

 

그 때 명지 모습은 가날픈 몸매에 얼굴은 창백했다. 말이 거의 없었고, 상상이 방에서 만화만 보았다. 그러던 아이가 이번에 만났을 때는 너무나 달랐다. 활달하고 유머가 넘치고 우리 식구와 어울리는 게 자연스럽다. 명지는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몸이 많이 건강해졌단다.

 

이번에 명지가 우리 집에 온 건 탱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12월 초에 ‘학교너머’에서 하는 탈학교 아이들의 축제가 있는 데 그 때 아이들이 여러 가지를 준비한 단다. 노래, 춤, 마당극, 영화 상영 그리고 그림들을 전시한다. 이 축제에서 명지가 맡은 역할이 많지만 우리 집에서 탱이랑 주로 준비를 하는 건 그림.

 

명지가 들고 온 가방에는 그림 도구들이 그득했다. 예전에 그린 그림들도 보여주었다. 주로 연예인인 동방신기를 많이 그렸다. 명지는 누가 한두 마디 툭툭 던지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무슨 이야기 끝에 내가 ‘명지가 참 잘 큰다’고 하자 명지가 하는 말.

“제가 좀 다재다능하지요”

“그래! 뭘 잘 하는 데?”

“그림 잘 그리지요. 노래도 잘 하고, 미모도 이 정도면(웃음). 하하하”

 

명지는 어떤 점에서는 저희 집보다 더 편하게 지내는 것 같다. 우리 집은 물도 잘 나오지요, 여기는 봉화보다 더 따뜻하다. 언니도 있고, 나이차가 적은 상상이도 있다. 게다가 가끔 잔소리할 부모도 없다. 그래서인지 늘 깔깔거린다.

“명지는 누구하고나 수다가 되는 구나”

“늘 그렇지는 않아요.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식구들과도 이야기를 안 해요. 그러다가 기분이 좋으면 누구하고라도 다 하지요. 나무는 물론 돌멩이하고도 해요. 하하하”

 

명지랑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열려있는 아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주고받고 되받아치고 인정하고 감사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를테면 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아저씨, 앞치마 참 잘 어울려요”

“그래? 역시 명지는 보는 눈이 있구나”

“요즘은 이상형의 남자에 이런 것도 있어요.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남자”

 

요즘은 우리 집에 이렇게 아이들이 간혹 온다. 지난번에는 자원이가 그 전에는 지민이와 승수. 그러다보니 이제는 우리 집에 아예 식구가 한 두 사람 더 늘어난 기분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일꾼으로 본다. 명지한테 무슨 일을 시킬까? 마침 김장을 담글 때다. 명지는 정말 때맞추어 잘 왔다. 생강과 마늘 까기는 물론 설거지도 땔감도 한다. 무슨 일이든 힘들다 하지 않고 깔깔 수다를 떨며 즐겁게 한다. 피아도도 곧잘 친다. 그러다가도 잠깐씩 짬을 내어 그림을 그린다. 속도가 늦지만 아직 시간이 많은지 아이는 느긋하다. 우리 집에서 얼추 열흘 정도 머물 모양이다.

 

우리 부부 역시 딸처럼 명지를 대한다. 일도 시키고 심부름도 시킨다. 그림책을 구상하는 아내는 책에 대한 명지 의견도 묻는다. 또 조금 있으면 우리 잡지를 하나 만들 계획인데 명지에게 원고 청탁도 하니 흔쾌히 들어준다. 여기다가 명지는 원더걸스가 추는 ‘텔미 댄스’를 우리 식구에게 가르쳐주기도 한다.  

 

또 명지는 영화를 아주 좋아하여 안 본 영화가 드물 정도. 그래서인지 세상과 사건 흐름을 잘 읽어내는 힘이 있다. 영화배우 조니뎁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하여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아이. 먹성도 엄청 좋다. 가리는 게 별로 없고, 맛을 즐기며 천천히 먹는 아이. 글을 정리하다보니 다 좋은 거만 적었다. 눈에 거슬리는 거는 없나? 음, 일부러 찾아보니 두어 가지 있다. 명지는 아직 비염이 완전히 낫지는 않았다. 또 하나는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 역시 시간 흐름 속에서 본다면 많이 나아지는 과정이라 본다.

 

아이가 성장해왔듯이 앞으로도 어떻게 얼마나 성장할지 기대 되는 아이. 성장하자면 무엇보다 열려있어야 한다. 명지는 먹는 것처럼, 영화처럼 세상과 사람에 대해서도 두루 열려있는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