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전여농에서 여는 국제 종자 포럼에 가신다고 한다. 원하면 나도 데려가 줄 수 있다고. 동남/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다는 말에 나도 가보고 싶어졌다. 그치만 나는 아직 어린데 ‘포럼’ 뭐 그런데 가도 될까. 약간 걱정도 하면서 만난 전여농 식구들은 나를 예뻐해 주셨다.
어떤 나라에서들 오나, 이 나라들은 어디 붙어있나 지도도 살펴보고, 그 나라 인사말도 찾아보고, 괜히 영어 공부도 하고, 영어로 우리 집 소개도 쓰면서 며칠을 보냈다. (감수 봐주신 우리 홈피의 이순희님 감사합니다. ^^)
9월 5일 포럼 시작 날 그곳으로 갔다.
어떤 나라를 대표해서 오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도네시아 대표는 무척 어려 보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스물다섯 살이란다. 우와~
자기 나라 말로 발표들을 하고, 따라온 통역이 그걸 영어로 바꿔서 들려주고, 그걸 한국 통역이 다시 한국말로. 아주 여러 다리를 건너야 이야기가 됐다. 나는 영어도 들어보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였는데, 유전자나 다국적 기업, 전문적인 어려운 말도 많이 하는데다가 나라마다 억양이 달라서 어려웠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 가서 서로 섞여 앉았다. 앞에 외국분이 앉아있으니 왠지 두근거리면서 재미가 생긴다. 어떻게 서로 이야기도 나눠가면서 밥을 먹었다. 그날 저녁은 함께 숙소로 갔다. 엄마랑 나를 위해 방을 잡아주셨는데, 우리는 그 방으로 사람들을 불러서 티파티를 열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은 필리핀에서 온 엘비라 뿐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영어를 쓰지 않아 거의 통역들하고만 이야기를 하게 됐다. 유자차랑 뻥튀기를 가지고 좁은 방안에 오그리복작 다들 앉았다. 우리에게 궁금한 게 많은지 집에서 공부하는 거에 대해 여러 가지 물어본다. 한국 사람들이 묻는 거랑 크게 다르진 않다. 내가 영어를 해서 좋다면서, 누가 가르쳐 줬냐고 물어본다. 엄마랑 공부했다고, 혹시 학교 선생님들한테서 콩글리쉬 억양을 배우지 않은 게 도움 된 건 아닐까. 그런 반 농담도 하면서 같이 웃고 먹고 수다를 떨었다. 한국음식, 한국드라마..... 역시 드라마는 가끔 봐줘야 국제적인 대화가 되는 듯(응?) ^^;
다음날 엄마는 간담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시고, 나는 남았다. 처음에는 있어도 괜찮을까 싶었지만, 감사하게도 전여농에서는 함께 있어달라고 해주셨다. 오전에는 살짝 나가서 서울 애들을 만나 같이 미술관에 다녀왔다. 저녁에는 인도네시아 통역인 수산의 생일파티를 했다. 케�을 사가는 중~요한 임무를 내가 맡았다. 기뻐하는 수산에게 노래도 시키고. 이렇게 밥 먹는 자리, 버스 타고 이동할 때. 그런 때 친해지는 것 같다.
큰일들이 있을 때는 통역하시는 분들이 다 하시지만, 숙소에서나, 밥 먹을 때나, 돌아다닐 때 같은 작은 일들이 있을 때는, 어설프나마 내 영어로 통역도 하고, 내가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는 역할을 했다. 칭찬도 듣고, 나 스스로도 무척 뿌듯했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막 엄청 잘하는 건 아닌데. 두 가지가 ‘뽀인트’ 같다. 하나는 집중하기. 내 뇌에서 눈을 통해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말이야 되던 안 되던 뱉어버리면 됐는데, 듣는 건 무지 노력해야 됐다. 또 하나는 저쪽의 도움. 내가 이해 못하면 풀어서 말해준다. 무슨 시험도 아니고,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 나누는 거니까.
우리 엄마 말이, 학교에 가지 않아서 나는 내 영어에 대한 틀이 없는 것 같다 하신다. ‘나는 영어를 못한다.’라는 생각을 배우지 않아서. 넌 틀렸어. 그런 지적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씩씩하게 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단어에 약하다. 잘 못 외우는데, 이번에 들어서 익힌 단어들은 안 잊혀진다. 농민, 단체, 농업, 추수........ 내 삶하고 연결 되어 있는 단어들인데, 이번에 익힌다. 여기 와서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영어공부 할 마음이 막 생긴다.
저녁에는 이경해 열사의 따님도 와서, 함께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나는 이번 포럼에 일본에서 오신 분 있으면 친해져서 여행가볼까, 하는 꿍산으로 따라왔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서는 안 오셨다. 대신 처음에는 크게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여러 가지를 배우고 느꼈다. 이제 막 독립한 동티모르라는 나라, 커다란 기업들은 세계 어디든 삼키려 하고, 그에 맞서고 있는 여러 나라들, 그리고 연대........
동남아에서 오신 분들은 쌀쌀한 저녁 날씨에 추워하신다. 추우세요? 뭐 그런 대화는 서로 안 되니까 그냥 안아주는 전여농분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따신 분위기가 돈다. 같은 목표를 두고 함께 투쟁하는 사이라서 일까. 식구 같다.
국회에도 가고, 기자회견도 하고, 남대문도 가고. 드디어 우리 집에 가는 날이 왔다.
주말이라 고속도로가 막혀서 괜히 혼자 마음 쓰고, 우리 집에 대해 물어보는 게 있으면 대답도 하고, 통역하시는 분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러면서 도착했다. 버스는 아래 대놓고 작은 길을 걸어서 조금 올라갔다. 며칠 동안 날이 흐리다가 오늘은 쨍쨍하니 날씨가 좋다. 사람들도 자연 속으로 들어오니까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 식구들을 소개하고, 우리 이웃도 소개하고, 엄마는 사람들에게 우리집 설명을 한다. 우리집 화장실, 나로서는 친구 오라고 말하기 좀 그렇고 불편했는데, 이번엔 우리 집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버려야 하면 안 좋은 거고, 쓰레기인데, 그걸 거름으로 삼으면 다 좋지 않냐고. 아 훌륭하다.
세계 농민분들은 고추나 옥수수 말리는 것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씨앗을 가져가고 싶어 하신다. 여기서 통역 분들하고 농사짓는 분들이 갈리는구나.
함께 점심을 먹는데 우리 옥수수를 쪄 내 놓으신다. 사람들이 찰기가 있다고 맛있단다. 오늘 계속 기분이 뜬다~ 밥 먹고 앉아서는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놀다가 갔다.
이번에 새로운 세계를 만나서 기쁘고, 함께 하는 동안 정말 좋았다.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혹시나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명지, 자원이, 둥실이 같이 나처럼 집에서 농사도 거들고 지내는 아이들에게 같이 가자고 해볼까. 이번에 만나보니 딱딱하지 않고 식구처럼 받아주시니, 원한다면 함께 가도 좋을 것 같다.
어떤 나라에서들 오나, 이 나라들은 어디 붙어있나 지도도 살펴보고, 그 나라 인사말도 찾아보고, 괜히 영어 공부도 하고, 영어로 우리 집 소개도 쓰면서 며칠을 보냈다. (감수 봐주신 우리 홈피의 이순희님 감사합니다. ^^)
9월 5일 포럼 시작 날 그곳으로 갔다.
어떤 나라를 대표해서 오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도네시아 대표는 무척 어려 보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스물다섯 살이란다. 우와~
자기 나라 말로 발표들을 하고, 따라온 통역이 그걸 영어로 바꿔서 들려주고, 그걸 한국 통역이 다시 한국말로. 아주 여러 다리를 건너야 이야기가 됐다. 나는 영어도 들어보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였는데, 유전자나 다국적 기업, 전문적인 어려운 말도 많이 하는데다가 나라마다 억양이 달라서 어려웠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 가서 서로 섞여 앉았다. 앞에 외국분이 앉아있으니 왠지 두근거리면서 재미가 생긴다. 어떻게 서로 이야기도 나눠가면서 밥을 먹었다. 그날 저녁은 함께 숙소로 갔다. 엄마랑 나를 위해 방을 잡아주셨는데, 우리는 그 방으로 사람들을 불러서 티파티를 열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은 필리핀에서 온 엘비라 뿐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영어를 쓰지 않아 거의 통역들하고만 이야기를 하게 됐다. 유자차랑 뻥튀기를 가지고 좁은 방안에 오그리복작 다들 앉았다. 우리에게 궁금한 게 많은지 집에서 공부하는 거에 대해 여러 가지 물어본다. 한국 사람들이 묻는 거랑 크게 다르진 않다. 내가 영어를 해서 좋다면서, 누가 가르쳐 줬냐고 물어본다. 엄마랑 공부했다고, 혹시 학교 선생님들한테서 콩글리쉬 억양을 배우지 않은 게 도움 된 건 아닐까. 그런 반 농담도 하면서 같이 웃고 먹고 수다를 떨었다. 한국음식, 한국드라마..... 역시 드라마는 가끔 봐줘야 국제적인 대화가 되는 듯(응?) ^^;
다음날 엄마는 간담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시고, 나는 남았다. 처음에는 있어도 괜찮을까 싶었지만, 감사하게도 전여농에서는 함께 있어달라고 해주셨다. 오전에는 살짝 나가서 서울 애들을 만나 같이 미술관에 다녀왔다. 저녁에는 인도네시아 통역인 수산의 생일파티를 했다. 케�을 사가는 중~요한 임무를 내가 맡았다. 기뻐하는 수산에게 노래도 시키고. 이렇게 밥 먹는 자리, 버스 타고 이동할 때. 그런 때 친해지는 것 같다.
큰일들이 있을 때는 통역하시는 분들이 다 하시지만, 숙소에서나, 밥 먹을 때나, 돌아다닐 때 같은 작은 일들이 있을 때는, 어설프나마 내 영어로 통역도 하고, 내가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는 역할을 했다. 칭찬도 듣고, 나 스스로도 무척 뿌듯했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막 엄청 잘하는 건 아닌데. 두 가지가 ‘뽀인트’ 같다. 하나는 집중하기. 내 뇌에서 눈을 통해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말이야 되던 안 되던 뱉어버리면 됐는데, 듣는 건 무지 노력해야 됐다. 또 하나는 저쪽의 도움. 내가 이해 못하면 풀어서 말해준다. 무슨 시험도 아니고,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 나누는 거니까.
우리 엄마 말이, 학교에 가지 않아서 나는 내 영어에 대한 틀이 없는 것 같다 하신다. ‘나는 영어를 못한다.’라는 생각을 배우지 않아서. 넌 틀렸어. 그런 지적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씩씩하게 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단어에 약하다. 잘 못 외우는데, 이번에 들어서 익힌 단어들은 안 잊혀진다. 농민, 단체, 농업, 추수........ 내 삶하고 연결 되어 있는 단어들인데, 이번에 익힌다. 여기 와서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영어공부 할 마음이 막 생긴다.
저녁에는 이경해 열사의 따님도 와서, 함께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나는 이번 포럼에 일본에서 오신 분 있으면 친해져서 여행가볼까, 하는 꿍산으로 따라왔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서는 안 오셨다. 대신 처음에는 크게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여러 가지를 배우고 느꼈다. 이제 막 독립한 동티모르라는 나라, 커다란 기업들은 세계 어디든 삼키려 하고, 그에 맞서고 있는 여러 나라들, 그리고 연대........
동남아에서 오신 분들은 쌀쌀한 저녁 날씨에 추워하신다. 추우세요? 뭐 그런 대화는 서로 안 되니까 그냥 안아주는 전여농분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따신 분위기가 돈다. 같은 목표를 두고 함께 투쟁하는 사이라서 일까. 식구 같다.
국회에도 가고, 기자회견도 하고, 남대문도 가고. 드디어 우리 집에 가는 날이 왔다.
주말이라 고속도로가 막혀서 괜히 혼자 마음 쓰고, 우리 집에 대해 물어보는 게 있으면 대답도 하고, 통역하시는 분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러면서 도착했다. 버스는 아래 대놓고 작은 길을 걸어서 조금 올라갔다. 며칠 동안 날이 흐리다가 오늘은 쨍쨍하니 날씨가 좋다. 사람들도 자연 속으로 들어오니까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 식구들을 소개하고, 우리 이웃도 소개하고, 엄마는 사람들에게 우리집 설명을 한다. 우리집 화장실, 나로서는 친구 오라고 말하기 좀 그렇고 불편했는데, 이번엔 우리 집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버려야 하면 안 좋은 거고, 쓰레기인데, 그걸 거름으로 삼으면 다 좋지 않냐고. 아 훌륭하다.
세계 농민분들은 고추나 옥수수 말리는 것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씨앗을 가져가고 싶어 하신다. 여기서 통역 분들하고 농사짓는 분들이 갈리는구나.
함께 점심을 먹는데 우리 옥수수를 쪄 내 놓으신다. 사람들이 찰기가 있다고 맛있단다. 오늘 계속 기분이 뜬다~ 밥 먹고 앉아서는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놀다가 갔다.
이번에 새로운 세계를 만나서 기쁘고, 함께 하는 동안 정말 좋았다.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혹시나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명지, 자원이, 둥실이 같이 나처럼 집에서 농사도 거들고 지내는 아이들에게 같이 가자고 해볼까. 이번에 만나보니 딱딱하지 않고 식구처럼 받아주시니, 원한다면 함께 가도 좋을 것 같다.
'살아가는 이야기 > 아이들은 자연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홈스쿨링 3년차(풀꽃처럼 김자원 글 펌) (0) | 2007.09.30 |
---|---|
아이들도 보살피는 걸 좋아한다 1 ( 초록마을 38호) (0) | 2007.09.26 |
인연이 따라주는 그림 공부 (0) | 2007.09.10 |
이게 뭘까요? 일곱 살 향유 작품 (0) | 2007.08.29 |
최소한의 관심 (0) | 2007.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