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손님이 왔다. <강아지똥>을 그린 정승각 선생이 부인이랑 함께 우리 집에 왔다. 서울 살 때 아내가 알기 시작했으니 인연이라면 오래된 인연이다. 그렇다고 자주 얼굴 보고 뭐가 오가는 사이는 아니고, 서로 잘 살고 있겠거니 하면서 보이지 않지만 힘을 얻는 사이라고나 할까. 가끔 정말 어쩌다 가끔 무슨 용건이 생기면 통화를 하거나, 두어번 정선생님 댁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우리집을 찾아준 건 처음이다.
아내는 정선생을 좋은 본보기로 삼고 산다. 아는 분은 알겠지만, 정선생은 <강아지똥>을 그린 뒤 그러니까 우리와 비슷한 때 시골로 내려왔다. 맨 처음에는 충주시 어느 면 논 한가운데 있는 시골집을 빌려서 살았고 그 뒤 낡은 시골교회를 사 그리로 이사를 갔다. 교회 사택에서 생활을 하고 교회는 작은 미술관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그때 정선생이 한 말 "외국의 어느 그림책 화가는 자기 소개를 이렇게 하더라구요.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고. 나 역시 이렇게 살고 싶은데....."
몇 년 전에는 우리 식구가 정선생이 작업하는 충주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탱이가 학교를 그만둘지 말지를 고민하던 때였다. 이오덕 선생을 먼저 찾아뵌 길에 마침 시골교회를 사서 이사를 갔다기에 정선생네를 찾은 거다. 탱이가 학교를 그만둔다면 지식 교육은 어찌저찌 길이 보이지만 예술 분야는 너무 먼 이야기였다. 그랬기에 딱히 그림 공부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들러보면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나 보다. 작업실을 둘러본 소감은 ‘참 열심히 하는구나.’ 하지만 나와는 먼 세계로 보였다.
그러나 이번 만남은 여러 모로 달랐다. 얼마 전에 정선생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그림 공부를 한다니까 관심을 가지고 온 거였다. 정선생을 멀리서 바라보던 관계에서 이제는 서로 어깨 걸고 함께 가는 이웃이 된 게 아닐까.
정선생네는 집을 둘러보고 나서 탱이 그림부터 보기 시작. 정선생은 그림을 오래 그렸고, 그림책을 여러 권 낸 사람답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안방 벽에 붙여놓은 탱이 그림을 본 첫 소감.
“그리고 싶은 욕구가 넘치는구나!”
아이 마음을 단박에 읽어낸다. 그림뿐만 아니라 강의도 많이 해서인지,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게 한다. 두어 시간 정도 정선생이 들려준 이야기 요점을 나대로 정리해본다.
‘그림을 그리는 건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한 거다. 그리고 싶은 걸 생각으로만 갖고 있으면 안 된다. 자꾸 그려봄으로써 자기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다. 뭔가가 막 떠오르는 걸 바로 그려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 간단히 스케치와 메모라도 해 두어라.’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자기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대상과 하나 되는 게 중요하다. 느낌을 갖고 그려야 한다. 그래야 화가의 마음, 숨결, 흔적이 전달된다. 어느 정도 그림 실력이 나아지면 ’그림 앉히기‘가 필요하다. 어떻게 그릴지 순서를 정하고 전체 틀을 가지고 그리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다 그린 그림을 잘라내는 불행을 겪기도 한다. 특히 그림 아래는 약간의 여백을 두는 게 좋다. 안 그래도 그림에도 중력의 법칙이 작용해 자꾸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데, 아래 여백이 없으면 액자에 넣든, 그림책으로 편집을 하든 그림이 잘려 안타까운 일이 생기기 쉽다. 부족하더라도 자꾸 그려보아야 한다. 생각만 하고 있으면 발전이 없다. 머리로는 그림이 그려지는 데 막상 손으로 그리고자 하면 안 된다.’
탱이 그림을 웬만큼 보자, 이번에는 상상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도 칭찬을 해 준다. 상상이 그림에 대해서는 우리 식구 사이에서는 별로였다. 아이는 게임만화에서 이어진 자기나름의 만화를 그리겠다고 주인공 캐렉터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정선생은 상상이 그림이 일단 재미있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보여주는 원시예술에 가까운 숨결이 느껴진다고 했다.
“네가 그린 그림을 꼭 만화라고 생각할 거는 없어. 너 자신을 나타낸 거니까. 자기 마음을 잘 살리면 되는 거야”
상상이는 신이 났다. 집에 어른 손님이 오면 대부분 상상이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정선생 이야기를 거의 다 귀담아 듣는다. 내가 봐도 신기할 정도다. 눈으로 뚫어지고 보고, 귀는 활짝 열어둔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한결 애정이 가나보다. 그러더니 한다는 말.
“저는 그동안 고정관념이 있었거든요. 그림을 못 그린다. 나는 그냥 만화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에 매일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어요”
아내가 매실차를 내오자, 상상이가 건배를 제안한다. 모두가 당황하며 컵을 들자, 아이가
“자, 그림을 위하여 건배!”
모두 웃으며 건배를 했다. 그러면서 그림책 출판과 유통 구조가 급변하고 있다며 어려운 점도 이야기 했다. 그림책을 워낙 많이 낸 사람이라 웬만한 출판사는 다 상대를 해 본 경험이 있다. 인터넷 홈쇼핑이 발전하면서 출판사들은 끼워 팔기, 덤핑판매를 일삼는단다. 그 과정에서 작가와 상의 한마디 없다는 거다. 그래서 작가들도 출판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성이네 그림책과 우리가 낸 책 <꽃 한 다발 밥 한 그릇>이 아주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독립된 출판과 예술이 앞으로 큰 몫을 할 거라 했다.
요 몇 년 돌아보면 우리에게는 참 소중한 인연이 늘어간다. 정선생네도 그렇고 민성이네도 그렇다. 그리고 보니 또 한 분 더 있다. <짱뚱이> 만화를 그린 신영식 선생. 몇 해 전에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탱이 성장에 무척 애정을 기울어주셨다. 신선생과 탱이는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 할 때 만났다. 그림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었다.
이렇게 유명한 화가들을 알게 되고 또 그 만남이 깊어지는 원인을 꼽자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단 하나만 들자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서 뻗어가는 인연들이 아닐까 싶다. 정선생은 학교를 그만둘 무렵, 신선생은 탱이가 학교 그만두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걷기 운동할 때, 민성이네는 산골에 뿌리 내리면서부터다.
만일 탱이가 대학을 다니면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는 한, 언제 이렇게 화가를 만날 수 있겠나. 설사 전공으로 미술을 선택하더라도 ‘재야 미술가’를 만나는 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 적을 두면 학교가 요구하는 그림이 있고, 화가가 있기 마련이다.
정선생은 대학 가기 위해 공부하는 미술을 ‘입시미술’이라고 했다. 그마나 오늘의 자신이 있었던 건 입시미술을 하지 않고, 고3 때부터 시작한 자기만의 그림 공부였단다. 내면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를 그 당시 선생 한 분이 알아봐 주신거란다.
민성이 역시 부모와 함께 그림을 그리다가 초등학교를 며칠 다녔는데 그림이 영 잘못되어 갔단다. 학교에서 선생이 가르쳐주는 대로 하니까 아이가 갖는 고유한 개성이 사리지는 걸 느꼈단다.
아이가 학교를 벗어나면서 만나게 되는 소중한 인연들. 그 덕분에 우리 부부도 그림에 대해 공부를 하고 많은 걸 배우게 된다. 우리 부부가 그린 그림은 꺼내지도 못하고, 시간이 흘러버렸다. 상상이도 정선생과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울 정도란다.
나는 아이들이 화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살아가다가 자신을 표현하고 싶을 때 이를 주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글이든 말이든 아니면 그림이든 음악이든 또는 농사든 집짓기든... 아이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그러고 싶다. 그 과정에서 두루 만나는 사람들이 다 고맙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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