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에 사는 향유네를 다녀왔다. 향유는 일곱 살 여자 아이. 유치원에 다닌다. 향유네 마당 한 귀퉁이에 작은 돌멩이가 옹기종기 놓여있다.
지나다 보니 향유가 놀 던 흔적이라는 걸 쉽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무슨 놀이를 했을까? 얼핏 보아서는 모르겠다. 그런데도 뭔가가 있는 그런 모습. 무질서한 듯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떤 질서가 느껴진다.
향유한테 물어볼 생각으로 즉석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리고는 사진 상태가 어떤 지 알아보려고 LCD창을 켜고, 조금 전에 찍은 사진을 다시 본다. 아, 뭔가 있다. 그 무엇이 또렷이 보인다. 마당에서 넓게 보았을 때는 희미하던 모습이 작은 LCD창에 집약되어 나타나니 향유가 무얼 했는지를 읽을 수 있다.
글씨 놀이를 한 거다. 세 사람 이름을 쓴 것인데 가운데 두 글자는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박. 종이다. 그러고 보니 향유 아빠 이름이 박종관. 그럼 가운데 맨 뒤에 글자는 관이다. 얼른 사진 찍는 자세를 바꾸었다. 글자를 바로 볼 수 있게 서자, 글자가 조금 눈에 들어온다.
다시 사진을 찍었다. LCD창으로 다시 보기를 하니 분명하게 드러난다. 맨 위 글자는 박향유, 중간이 박종관, 아래가 김현이다. 그러니까 맨 위가 자신, 아래로 아빠와 엄마 이름을 차례로 쓴 거다.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어쩌면 무슨 동굴 벽화에 나오는 알 듯 모를 듯 원시 기호를 다시 보는 느낌이랄까. 현대인들 기준으로 보기에는 엉성하고 조악한 기호이지만 그 당시 상황을 가정하면 많은 해석이 가능하지 않겠나. 그렇기에 그 나름대로 예술적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그런 기분으로 나 역시 향유 글씨를 어린이가 그린 ‘원시예술’로 보고 나 나름대로 해석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식구 가운데 맨 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거는 자기 존재감이 뚜렷이 드러난 거라 믿는다. 가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다 보면 아이 심리를 일부나마 읽을 수 있다. 엄마를 지나치게 크게 그리고 자신은 아주 작게, 그리고 아빠는 아예 그림에서 빠지는 그림을 본 적도 있다. 이런 경우 집안에서 엄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이로서 지나치게 크게 느낀다는 걸 말해준다. 그건 엄마에 대한 두려움일 경우가 많다. 억압적이거나 잔소리가 심하다면 아이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빠지는 건 이른 아침 집을 나가 늦은 밤에 들어오니 존재 자체가 희미하기 때문일 게다.
그런 각도에서 ‘향유 작품’을 보자면 향유만의 당당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아빠 이름이 엄마보다 먼저이고 그 글씨도 한결 또렷하고 크다. 부모 두 사람을 굳이 견줄 필요는 없지만 여기서는 내 해석을 확장해본다. 보통 음악은 시간 예술이고, 그림이나 조각은 공간예술이라 한다. 그렇지만 향유가 그린 작품은 시간과 공간이 같이 함축되어 있지 않나. 공간을 또렷이 차지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음미하다 보면 시간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아이가 아래 엄마 이름부터 쓰면서 위로 올라갔다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위에서 아래가 자연스럽지 않겠나. 자신을 먼저 쓰고 그 다음 아빠 마지막으로 엄마. 글자란 시간이란 순서를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여기 작품에서만은 적어도 엄마보다 아빠를 더 뚜렷하게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해석하는 근거를 나대로 대자면 이렇다. 나는 향유네를 자주 보는 편이다. 향유네는 맨몸으로 터를 일구어 온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식구가 함께 하는 부분이 많고, 또 환경이 시골이다 보니 아빠가 차지하는 비중이 클 수밖에 없을 테다. 그동안 향유네는 땅을 일구고 집을 여러 번 옮기며 수리하는 과정을 거쳐 왔다. 그 과정에서 향유 엄마 몫도 컸겠지만 아빠 모습은 한결 더 크게 보였으리라. 무엇보다 이 곳은 자신들의 땅을 마련했고, 그 땅에 처음으로 자신들의 창고 집을 지은 거다. 집짓는 과정을 지켜본 향유로서는 아빠라는 존재감이 얼마나 크게 보였을까.
이를 잘 보여주는 건 돌 이름 바로 곁에 향유가 지은 건물이다. 이것 역시 향유가 놀이삼아 지은 건물이다. 창고 집을 짓다가 남은 벽돌을 가지고 집짓기 놀이를 한 거다. 레고 블록처럼 쌓아올린 건물. 사진에서 보듯이 맨 아래 벽돌은 세웠다. 나로서는 이게 기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빠가 창고 집을 지을 때 뼈대를 세우고 지붕을 씌우는 걸 보며 향유도 어깨너머로 배운 거지 싶다.
놀이삼아 자신도 집을 지어보면서 얼마나 흐뭇했을까. 아빠가 집을 지었듯이 자신도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뿌듯함. 지금 자신이 지은 집은 작지만 자신이 자라 어른이 되면 아빠처럼 큰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지 않았을까.
여기까지는 향유가 남긴 흔적을 보고 나대로 느낀 해석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조금 다르게 느낄 수도 있을 테다. 또 향유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보다 정확하게 아이 마음을 읽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작가의 작품은 작가 손을 떠나면 이미 그건 작가의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는 사람 몫이라고.
아이들은 어른들 삶에서 많은 걸 보고 배운다. 말로 하지 않아도, 억지로 가르치지 않아도…….그리고 그걸 표현하고 싶어 한다. 말이든, 그림이든, 조각이든, 노래든, 몸이든…….향유 작품 덕분에 즐거운 감상을 했다. 여러분은 어떠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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