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경남생태귀농학교를 탱이랑 다녀왔다. 강의를 끝내고 질의응답 시간에 참으로 다양한 질문이 올랐다. 그 가운데 좀 색다르게 받은 질문 한 가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면 학연이라든가 이런 게 없지 않는가. 우리 사회는 어쩔 수 없이 학연이나 지연을 많이 따지지 않는가?” 이 질문을 받자마자 이러저런 인연이 막 떠오르면서 조금 흥분하듯이 답을 했다. 결코 학연이 없는 게 아니라 그 어떤 학연보다 끈끈하고 깊다고. 내가 이야기한 학연은 굳이 검정고시를 통한 사회진출을 뜻하지는 않는다. 비록 적지만 지금 이루어지는 이러저런 인연들만으로도 충분한 학연이 된다고 믿는다. 일단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 다닐 생각을 하면 먼저 찾게 되는 게 그 선배다. 어떤 과정을 거쳐 학교를 그만두었으며, 그만 둔 이후에는 어찌 자기 관리를 해 가는 지를 알아보게 된다. 학교라는 집단 속에서는 어떤 정보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는 게 많다. 어떻게 해서 공부를 잘 하는 지, 무슨 과목을, 누구 과외를 하는 지를 잘 알려주지 않는다. 경쟁 관계가 치열한데다가 굳이 그런 과외를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 밖의 아이들은 조금 다르다. 비슷한 아이들이 운영하는 카페나 사이클럽 같은 곳에서는 누군가 고민을 올리면 다른 아이들이 성심껏 답변을 하고 용기를 준다. 먼저 겪은 마음고생을 잘 아는데다가 학교 밖이라는 또 다른 동질감이 서로를 가깝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아이들이 나누는 고민은 아주 다양하다. 하루 일과를 어찌 하는지, 부모와 관계는 어떻게 푸는 지,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바람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제법 깊은 철학적인 고민까지 나누기도 한다. 때로는 소소한 필기도구라든가 다 본 책들을 아낌없이 물려주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들만이 갖는 인연을 쌓아간다. 인연이라고 말을 할 때 가장 근본이 개방성이 아닐까 싶다. 인연을 맺고 이어가자면 서로가 자신을 열어야한다. 단순히 학교나 배움 과정에서 스치는 인연이 아니라 삶이 이어질수록 깊어지자면 자신을 얼마나 열어두느냐에 있다. 친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존재라는 단순한 이기심만으로는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 서로가 서로를 채워가는 존재로서,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고 성장시키는 존재로서 거듭나야한다. 자신의 삶을 개방한다는 점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집집이 조금 다른 것 같다. 봉화 명지네는 새 집을 짓자마자 필요에 따라 집을 개방하겠다고 인터넷으로 알렸다. 인제 양손이네도 이러저러하게 집을 개방하여 아이들에게 체험과 배움의 기회를 주곤 한다. 얼마 전에는 우리 집에서는 모내기 캠프를 했고, 강원도 양구에 둥실이네는 호박순집기 캠프를 열었다. 산청 산골예술학교 아이들은 예술공연팀을 꾸려 이곳저곳에 공연을 다니며 자신들을 원하는 곳이면 형편껏 삶과 철학을 나누고자 세상에 자신들을 열어둔다. 이외에도 내가 모르는 많은 부분에서 삶을 개방하고 배움을 나누어간다고 믿는다. 도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 믿는다. 비록 공간이 협소해서 많은 아이들을 받기가 어렵더라도 이러저러한 모임을 꾸리며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배움을 나누어 간다. 그러니까 학교를 벗어난 아이들이 갖는 학연은 누구와 견줄 필요도 없이 넓고도 깊다고 본다. 삶이 교육이고, 세상이 다 학교가 되기 때문에 그에 따른 학연은 당연히 넓고 깊다. 학교 밖의 아이들 사이에도 선후배라는 말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한두 살 나이 차이를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학연을 쌓아가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아이들 끼리 나누는 대화를 얼핏 들으면 형 누나 또는 오빠 언니라는 말을 자주 쓴다. 선배 후배라면 조금 딱딱한 느낌이 들지만 형이나 언니는 가족 개념이 된다. 한 집안의 홈스쿨링이 아니라 거대한 가족이 된다. 그렇다고 옛날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그런 질서는 아니다. 서로 필요한 만큼 형편껏 서로를 채워주면 된다. 학교 밖 아이들이 학연을 새롭게 꾸려가는 데 문제가 있다면 자기 개방성이 아닐까 싶다. 자신은 열어두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열고 다가오기를 바라는 이들이 가끔 있다. 사실 깊이 따져보면 이 부분은 학교 안이냐 밖이냐에 차이가 있는 건 아닐 테다. 사람 관계 모두에 해당하지 않겠나. 배움은 자신을 열어두는 데 있다. 관계도 마찬가지. 자신을 열어두는 만큼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연은 많게 된다. 그런 점에서 강제로 짜여진 어떤 틀을 깬다는 건 사람 관계를 맺어가는 데 있어 그 주도권을 자신이 갖는다는 걸 뜻한다. 나는 이러한 학연을 좀더 의식적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이를테면 학교 밖 아이들이 결혼을 계획한다면 둘레 아이들이 우르르 함께 도와주는 거다. 신혼살림을 꾸릴 작은 집을 짓는다면 청소년들 대여섯만 달라붙으면 작은 집 하나 정도는 공부삼아 지어도 두세 달이면 지을 수 있다. 결혼식도 그렇다. 몇 해 전에 충북 괴산에 사는 새암과 흐름이 결혼식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이미 탱이 둘레 아이들이 우르르 가서 준비에서 뒷정리까지를 도맡아서 한 적이 있다. 해강, 해성, 한내, 한울, 탱이...역할을 나누어 착착 일을 진행했다. 음식 만들고, 손님을 안내하고, 식이 진행되면서 신랑신부 그림자가 되어 뒷수발을 다 했다. 식이 끝나고는 흥겹게 연주도 하고, 음식을 나르고, 손님이 돌아가고 난 다음에는 그 많은 설거지를 몇 몇 아이들이 다 했다. 이 결혼식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학연은 단순한 인연이 아니라 삶을 함께 하는 전연(全緣)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 힘으로 집을 짓고, 아이들 힘으로 결혼식을 꾸리고, 아이들 힘으로 배움을 주고받고, 아이들 힘으로 삶을 온전하게 나누어가는 그런 관계들. 그런 인연들이 거미줄처럼 엉킬 때, 어른인 우리들은 무얼 하면 좋을까? http://nat-cal.net/index.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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