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떠나 산골에 산 지 십년이 훌쩍 넘는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우리 식구는 그 사이 참 많은 걸 겪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아이들 크는 모습이라 해야겠다. 돌이 채 안 되었던 작은 아이는 어느새 사춘기로 접어들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산골로 왔던 큰아이는 20살이 되었다.
큰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시골 와서 달라진 게 무어냐고.
“우리 집 밥상이 달라진 거지요. 서울 살 때와 견줄 수 없이 제철 음식을 그때그때 잘 차려먹는 편이잖아요. 그 다음엔 학교를 그만두면서 달라진 것들이 많지요.”
이야기를 조금 거슬러가자면 큰아이가 시골 와서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 우리 식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이들이 자랄 때는 자연이 좋다고 한다. 그 말이 맞지만 시골학교도 입시교육이라는 바람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자꾸 도시를 따라가려고 한다. 담임선생님조차 아이들에게 간곡히 도시로 나가라 한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무엇이 더 나은 교육 환경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삶을 찾아 서울을 떠나 왔는데 다시 돌아가야 하는가?
그 답은 뜻밖에도 간단했다. 교육 환경이 시골인가 도시인가보다 배우려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다시 한번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입시교육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아이들을 믿고 자연에 더 깊이 다가가느냐. 그렇게 해서 큰아이는 중학교를 두어 달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아이도 이제 ‘도시’에서 자연으로 내려온 셈이다.
산골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지 싶다. 여기서는 몇 가지 뼈대만 추려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호기심이 살아있다. 자연과 호흡하면서 자기다운 세계를 열어간다고 할까. 모든 생명은 그 누구도 자기 삶을 대신 살아줄 수가 없다. 누구나 자기답게 살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믿는다. 배움도 마찬가지. 누군가가 가르쳐줄 수는 있지만 이를 자기 걸로 하는 건 온전히 자신에게 달린 게 아닌가. 호기심이 살아있는 아이들은 배우고 싶은 게 참 많다. 우리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배움을 찾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배운다.
며칠 전에 우리 아이 둘은 ‘수맥 보는 법’을 배워왔다. 우리 아이들이 배우겠다고 찾아간 곳은 저 멀리 화천에서 사는 임락경님의 시골집이다. 임락경님은 본인 자신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학교를 그만두었기에 우리아이들 ‘선배’가 된다. 이 분은 정농회 회장이며, 장애인 이십 여명과 어울려 산다. 이 분은 농사꾼이 기본이지만 못하는 게 없을 정도다. 수맥과 집터, 된장과 발효식품, 글쓰기. 그리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신다. 아이들은 수맥뿐만이 아니라 삶을 두루 배우고 느끼고 왔다.
그 다음으로, 사람과 관계 맺기도 크게 달라진 점이라 해야겠다. 가장 달라진 게 부모와 자식 사이다. 서울 살 때 큰아이는 아내하고만 주로 이야기를 하지, 아버지인 나하고는 서먹했다. 얼굴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식구들이 많은 시간을 함께 하니 서로가 서로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간다. 아이들은 부모 성장 과정, 부모의 친구, 하는 일에 흥미를 가지며, 부모와 함께 하는 걸 좋아 한다. 부모인 우리는 아이들이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를 잘 알고, 아이들 친구와도 친하게 된다. 아이들 친구가 전국에 흩어져있지만 친구들 이름은 물론 뭘 좋아하는 지도 어느 정도 안다. 부모인 우리는 아이들이 집밖에서 배워온 태극권이나 춤 같은 걸 아이들에게서 다시 배운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가 서로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잘 느끼게 된다. 이제 우리 식구 주된 관심사는 학교학력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성장이다.
큰아이는 이제 20살이 되었지만 대학 생각이 절실하지 않다. 대학을 싫어한 게 아니라 지금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으며, 또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어떤 길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더 도움이 되는지를 날마다 선택한다고 할까.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있을 때는 바람처럼 집을 나서곤 한다. 그리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시골 와서 달라진 점이라면 일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처음 시골에 적응할 때는 마치 ‘대통령 시찰하듯’ 논밭을 오곤 했다. 부모 눈치가 보여 안 가볼 수 없는 그런 태도. 그러다가 차츰 아이들이 달라진다. 시골에는 일이 얼마나 많나. 그 많은 일 가운데 자신들이 흥미 있고 재미있는 일들을 하나 둘 하기 시작했다.
점차 일을 태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아이들에게 일은 배움이자, 놀이이며, 성장을 해 가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는 걸 몸으로 알아간다. 이제 아이들은 모내기를 온 식구가 함께 할 정도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자기 존중감, 성취감, 점차 어른이 되어간다는 성장감을 아이들이 갖는다. 그러다 보니 작은 아이는 열세 살 나이이지만 아이 취급 받는 걸 싫어한다. 자신도 당당히 한 사람의 몫을 한다는 자부심이 생긴 거다.
일이란 농사일만이 아니다. 땔감하기도 일이요, 군불지피기도 일이다. 요리도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의 일이겠다. 큰아이는 지지난해부터 요리에 부쩍 관심을 갖고 제철에 나는 요리를 배운다. 직접 요리를 하니 밥이 더 맛있단다. 그리고 요리 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를 글로 써 어린이 월간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연재를 두해 째 이어간다. 원고료가 큰돈은 아니지만 자기 용돈 정도는 꾸준히 번다.
올해 들어 아이들은 농사일에 부쩍 의욕을 가진다. 밭농사도 지난해보다 조금 더 많이 짓고, 산나물을 해서 팔겠다며 산에도 더 열심히 다닌다. 이렇게 하다보면 글 쓰고 싶은 것도 많고, 그림 그리고 싶은 마음도 커진다. 더불어 돈도 더 벌고 싶어 한다. 올해 큰아이 목표는 지난해 번 돈의 배를 버는 거란다.
아이들이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가는 바탕은 아무래도 자연일 것이다. 자연은 우리 생명의 근본 바탕이다. 먹을거리도 일도 돈도 그 바탕에는 자연이 있다. 고사리를 꺾어 데쳐서 먹는 건 요리다. 이를 말렸다가 팔면 돈이 된다. 고사리를 꺾고 말리고 파는 과정을 재미있게 글로 써서 잡지에 싣게 되면 원고료를 받을 수도 있다. 고사리 하나에도 이렇게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 교육은 자나 깨나 남을 이겨야 한다. 반면에 생명 교육은 자신을 먼저 살리고, 넘치는 건 나누는 데 있다고 믿는다. 풍요로움은 자기 몫을 악착같이 챙긴다고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자신이 가진 걸 나눌 때 오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자연은 자신이 가진 걸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산 교육장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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