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농사와 사는 이야기

벼 직파(11) 직파 벼의 가장 큰 매력

모두 빛 2011. 8. 3. 07:29

벼를 직파하면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여기에서는 가장 큰 매력에 초점을 두면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보통 농사는 그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 수확량이 얼마인가, 수확에 들인 돈은 얼마인가. 수확 뒤 얼마가 남는가. 과정은 이 결과를 내기 위한 들러리 정도다. 현대의 삶이 대부분 그렇듯이 농사 역시 돈으로 셈하는 결과에 치중하게 된다.

 

농사든 무엇이든 결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특히나 벼는 모든 걸 떠나 우리네 밥상이 되는 것이요, 우리네 생명이기에 더 그렇다. 수확이 많을수록 삶은 안정되고,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거리는 많아진다.

 

그런데 이런 결과에만 매여 일을 할 수는 없다. 아니, 과정을 소홀히 하고 결과가 좋기를 바라는 것도 어쩌면 도둑놈 심보인지도 모른다. 과정이 좋다면 결과도 대부분 좋기 마련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벼 자신도 자신이 자라는 과정을 즐기면 좋지 않겠나. 벼가 자라는 과정이 즐거울 때 사람 역시 농사를 짓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또한 과정을 즐겼다면 그 결과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덜 실망하게 된다.

 

벼 직파는 벼가 자라는 과정을 충실하게 한다. 어떤 점에서는 사람 욕심과 충돌하면서까지.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벼는 자라면서 가지치기를 한다. 전문 용어로 분얼이라고 한다. 교과서에 따른 이론대로라면 벼 한 포기가 환경이 좋다면 40개가량 가지를 뻗는다고 한다.

 

하지만 날씨가 들쑥날쑥한 산간 지대 같은 곳에서는 어림도 없다. 기껏 한 포기 일곱 여덟 개 정도다. 가끔 열 개를 넘어가기도 한다.

 

근데 이것만 해도 굉장한 매력이다. 이를 제대로 이야기하자면 그 어떤 기준이 필요하리라.  먼저 사진을 보자. 위 사진은 기계로 모내기를 한 경우다. 한 번에 모를 일곱 여덟 개 정도씩 꼽게 된다. 그럼 벼는 가지치기를 하기보다 위로 자라게 된다. 가치치기는 잘 해야 한둘 이다. 관행 농업으로 이앙을 한 벼 개수를 헤아려본 적이 있는데 얼추 10개가량 꼽히는 경우도 있더라. 이렇게 한 곳에 벼를 여러 개 꽂으면 가지치기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 좁은 곳에서 서로 부대낀다고 할까. 하나나 둘 정도만 가지치기를 하고 이삭 팰 준비를 한다.

 

위 사진에서 왼쪽은 모를 심고 남은 모판 상자 모다. 모를 다 심고, 버리기 아까워 논 가까이 둔 것이다. 둘 사이 차이가 느껴지는가. 그렇다. 벼를 줄맞추어 옮겨 심은 벼는 거름을 골고루 받아 푸른 잎을 띄고 있다. 근데 모판 상자에 남은 모는 노란 빛깔을 띈다. 빼곡하게 심어놓은 상태이기에 거름이 절대 부족하다. 물론 잘 자랄 땅도 부족하고 햇살도 부족하다. 이 경우는 웃자라기만 하고 나중에 벼 이삭조차 제대로 패기가 어렵다. 당연히 벼꽃도 제대로 피울 수 없고, 나락으로 영글기도 어렵다.

 

여기 견주어 기계로나마 간격에 맞추어 옮겨 심은 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가지를 뻗고 이삭이 패어 열매를 거둔다. 이 때 이 열매는 사람이 거두게 좋게 영근다. 사람들은 보통 한꺼번에 일하는 걸 좋아한다. 모내기 하루, 타작 하루...이런 식이다. 기계 힘을 빌리는 일일수록 빨리 한꺼번에 끝내려고 한다. 

 

그러나 직파 벼는 조금 다르다. 한 곳에 볍씨 한 알이 기본이다. 그러다 보니 벼는 가지치기를 마음껏 한다. 중심 뿌리가 땅에 자리를 제대로 잡으면 가지치기를 시작한다. 일주일에 하나 꼴로 한다.

 

한 곳에 여러 씨앗이 묻힌 게 아니기에 자기 생명 그대로 가지를 뻗는다. 이앙벼는 주로 위로만 자란다면 직파벼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위로 자라면서 부챗살처럼 펴진다. 햇살을 한 줌이라도 더 받으려고, 되도록 벼 잎들끼리 서로 그늘지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다. 볍씨 한 알이 자라는 모양새가 대견하지 않는가.

이렇게 차례차례 가지를 뻗다 보면 이삭이 패는 것도 차례차례요, 벼가 영그는 것도 그렇다. 한꺼번에 영글지 않고 한 달 가량 시나브로 영글어 간다. 사람 처지에서는 벼가 한꺼번에 영글어 후다닥 가을걷이를 하는 게 쉽다. 심지어 직파 벼는 무효분얼을 하는 가지도 제법 된다. 이건 가지치기를 하지만 너무 늦게 되어, 벼 이삭이 패지 않는 걸 말한다. 벼가 자신의 생존을 이어가는 진화의 한 방식이다. 사람이 씨앗을 거두어주고 사람이 씨를 뿌려주어야 되는 게 아니라, 벼 스스로 씨앗을 남기고 다시 벼로 싹이 터 자라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자연환경에도 살아남아야 하기에 그렇다. 가지치기를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한꺼번에 하기보다 되도록 차례차례 하면서 자연에 적응해 온 것이다.

 

자, 이제 이를 볍씨 하나를 기준으로 다시 견주어 보자. 전체 수확의 결과만이 아니라 벼 한 포기만의 삶을 먼저 제대로 봐야하지 않겠나. 벼 품종과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올벼를 기준으로 벼 이삭 하나에 달리는 낟알은 보통 100개 남짓이다. 한 곳에 여러 포기 심은 이앙벼는 벼 한 포기를 기준으로 하여 가지치기를 하나 정도 했다고 치면 한 포기에 이삭이 두 개가 되니까, 200 알 정도 자손을 남긴다. 여기 견주어 직파 벼는 볍씨 하나가 가지치기를 6~7개 남짓했다고 보면 벼 한 포기가 600~700 알 정도 자손을 남기는 셈이다.

 

 

벼 직파를 하면 이렇게 벼가 자라는 과정 하나하나가 다 배움거리다. 딱 벌어지게 가지를 뻗는 직파 벼의 모습. 당당하고 아름답다.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을 제 멋을 살려가며 넉넉하게 자란다. 햇살과 바람도 넉넉히 받는 만큼 여기서 거둔 벼와 쌀도 그만큼 옹골차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