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산돌학교 졸업반 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름 하여 ‘삼인행(三仁行)’, 세 명이 스승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계획하는 데 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럴 때 나는 그냥 흔쾌히 오라 하지 않는다. 미리 오는 아이들 소개와 관심 분야들을 물어본다. 그 이유는 만남을 좀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다.
사실 우리 집을 찾아온다는 것은 나 한 사람을 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삶과 교육이 분리되는 게 아니듯 우리 식구는 삶을 가족이 다 함께 하기에 손님맞이 역시 가족이 다 함께 하게 된다. 그러니 오는 손님도 손님이기 전에 최대한 자신을 열어, 성장의 문을 함께 열어 가야하지 않겠나. 학생들이 메일로 보내온 내용 가운데 그 일부만 인용해본다.
“산돌학교는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고 통합 5년제 학교입니다. 저희는 고등학생 2학년으로 산돌에서는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5년의 교육 과정에는 해외 이동 수업, 인턴쉽 체험, 졸업 작품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이제 산돌 5학년의 마지막 프로젝트 수업으로 ‘삼인행’이라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저를 비롯한 총 세 명의 학생들이 각자 삶의 질문들을 갖고서 스승을 찾아뵙고, 답을 구하려고 합니다. 작은 성찰을 통한 저희의 삶의 질문들입니다. 답을 구하는 것, 그것은 어떠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이번 만남이 좋은 인연으로서 남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민이는 음악을 좋아하며 멋진 뮤지션이 되기를 꿈꾸는 학생입니다.
그리고 도이는 미술활동을 즐기고 사랑합니다. 또한 현정이는 빵 만들기를 좋아하고, 사진 찍기, 글쓰기, 그림그리기 등 깊지 않지만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는 저희가 이번에 ‘필유아연(必有我緣)’이라고 하는 하나의 모둠을 꾸렸습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관심 가져왔던 분야가 아닌, 삶에 본질적인 질문들, 삶에 의미가 되고 힘이 되는 질문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 진정한 사랑은 무엇이며, 사랑으로서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 사람을 이해시키고, 변화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 왜 인간은 아름다움에 끌리는가, 예술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나?
- 가족과 나, 개인적인 존재인가? “
이렇게 메일을 받으니 반갑고 학생들과의 공통분모가 눈에 그려져, 간단히 아래와 같이 답장을 했다.
“성민 군이 음악을 한다니 관련 악기나 작곡을 한 게 있다면 가져오길 바래요. 우리 식구들도 음악을 즐긴답니다.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 작곡...물론 완전 아마추어^^)
그리고 도이 현정이처럼 그림 사진 글쓰기 역시 다 우리 식구들 관심 분야이니까
이 역시 나눌 수 있는 만큼 나누면 좋을 거 같아요.”
우리 식구는 찾아오는 손님에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주고받는 관계, 나누는 관계를 희망한다. 진정한 가르침은 배움에 토대를 두고 있지 않는가. 또한 이 배움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삶의 경험이 다르기에 오는 자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삶에서 꼭 배워야할 것이 있다면 나눔의 자세와 삶의 영감이 아닐까. 그러니 우리 식구는 학생 손님들에게서 기꺼이 배울 자세를 갖는다. 자, 이 정도 메일을 주고받은 것만으로도 서로의 만남이 기다려지지 않는가.
실제 만남은 기다림 이상이었다. 학생 셋이 늦은 저녁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간단히 서로 소개하고는 일단 성민이 음악부터 들었다.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인 젬베(jembe)를 꺼내, 독특한 리듬을 들려주었다. 자신이 손수 작곡한 곡도 들려주었다. 아내와 탱이는 즉석에서 젬베를 성민이한테 배운다. 성민이는 간단히 가르치는 걸 경험하고, 우리 식구들은 새로운 악기를 경험한다.
성민이 연주에 대한 답례를 하기로 했다. 내가 기타, 아내가 피아노를 맡아 둘이서 협연을 했다. 서툴기 짝이 없지만 그 나름 우리 식 삶의 표현이 되며, 손님들과 격의 없는 나눔이 된다.
다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번에는 현정이와 도이의 작품집과 그림을 보았다. 현정이는 제 작품집을 아주 쑥스러워하면서 혼자 있을 때 조용히 봐달란다. 도이 그림은 여럿이 같이 감상을 잘 했다. 우리 식구는 아내가 그린 달력을 보여주며 아이들과 영감을 나누었다.
이야기는 주로 ‘사랑과 관계와 공감’에 대해 나누었다. 요즘 청소년들과 이 정도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좋았다. 언어를 통한 소통은 고사하고 눈빛조차 잘 맞추지 않는 요즘 보통의 아이들에 견주면 얼마나 깊은 만남이자 배움인가. 아마 이 학생들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해서인지, 입시에 찌들지 않아 대화가 물 흐르듯 한 부분도 있지 싶다.
이 학생들 셋은 졸업을 하면 알바를 하면서 여행도 하고 배우고 싶은 걸 계속 배운다 했다.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조언은 이런 거였다. 알바를 하되 돈이 좀 적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알바, 자신을 더 성장 시키는 알바를 해라. 순간마다 자신을 사랑할 때 진정한 사랑, 남과 나눌 수 있는 사랑의 힘도 더 커질 테니까. 자신감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 소소한 일상에서 자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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