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배우면 엄청 창의적이고 재미있다. 그러나 혼자 배웠다면 남에게 가르쳐주는 데는 아무래도 서툴다. 또한 잘못 배웠다면 나중에 다시 고치기가 참 어렵다.
요즘 기타를 배우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떠올라, 한번 이를 정리해본다. 그러니까 내 어린 시절은 많은 걸 대부분 혼자 배우다 시피 했다. 이를테면 수영이 그렇다. 동무들과 여름이면 마을 저수지에서 놀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도 수영을 할 수 있었다. 비록 개헤엄이지만.^^ 개헤엄이란 머리를 늘 물 위로 내어놓고, 두 팔과 두 다리를 마구 저어가는 수영이다. 이런 헤엄은 개뿐만이 아니다. 네 다리를 가진 짐승을 물에 집어넣으면 다 이렇게 헤엄을 친다. 소도 쥐도...
이런 식으로 수영을 익히는 동안, 수영이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냥 물에서 잠수도 하고, 물싸움도 하면서 이래저래 재미로 놀다보니 저절로 몸이 물에서 뜨게 된 거니까. 그리고 이런 식 수영은 그야말로 자연의 헤엄이자, 생존에 알맞은 수영이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자연에서 헤엄을 쳐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바위가 많은 계곡이나 소용돌이가 센 곳을 헤엄으로 건너자면 앞을 잘 보면서 가야 한다. 앞뒤 좌우를 늘 살펴야 하는 게 자연의 삶이지 않는가.
그러다가 서울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한번은 수영장을 찾았다. 근데 수영장에서 본 아이들 수영 모습은 놀라웠다. 거의 물개 수준이었다. 뭍에 사는 개가 헤엄치는 속도와 물에 사는 물개가 나가는 속도는 하늘과 땅 차이. 나도 언제 기회가 되면 수영을 제대로 배워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다 나이 서른이 넘어, 그 기회가 왔다. 배운 지 한 달 만에 정말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강습이 끝날 무렵에는 개헤엄보다 두 배 정도는 빠르게 나갈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예전에는 여러 사람들과 수영을 하다보면 나보고 수영을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참 난간했다. 내가 줄 수 있는 답.
“그냥 팔 다리 저으면 돼요.” ㅎㅎ
그러나 헤엄치는 몸짓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물은 두려움 자체다. 팔 다리를 놀릴수록 몸이 더 가라앉는 기분이다. 그러다가 내가 수영을 한 달 정도라도 배운 뒤로는 조금이나마 가르쳐줄 수 있다. 물에서 뜨는 법, 팔 다리를 젓는 법, 호흡법들을.
나는 혼자 배운 게 수영만이 아니다. 탁구도 그렇다. 시골 평상이 탁구대가 되고, 작은 송판 같은 걸 탁구배트로 하여 공 하나만 있으면 즐겁게 놀면서 탁구를 익혔다. 누군가에게 배우기보다 남이 하는 걸 눈으로 보고, 그냥 몸 가는 대로 따라 하면서 그냥 하게 되었다. 근데 이게 나중에는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버릇이 잘못 되어 내가 넘기는 공은 내 뜻과 상관없이 무조건 회전을 하는 거다. 그러니 상대방은 재미없다 하고, 나는 수영처럼 기초가 안 되어 있어, 더 이상 발전이 없었다.
최근에 내가 틈틈이 익히는 기타만 해도 그렇다. 혼자서 책 보고, 내가 좋아하는 곡을 집중적으로 치면서 코드를 익혀나갔다. 이렇게 한 지, 두 달 정도 되었는데 점점 갈수록 벽에 부딪힌다.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도 묻고 이웃들한테도 조금씩 배우기는 하지만 체계적이지 못하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동영상으로 기타를 배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덕에 내가 해온 자세가 얼마나 잘못인지를 요즈음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초보자들이 잡기 힘든 코드 가운데 하나가 F 코드. 책에는 자세한 설명이 없이, 이 코드를 짚을 수 있다면 기타 연주의 절반은 한 거나 다름없으니 부지런히 반복 연습하라는 말 밖에. 비록 잘못된 방식이지만 손끝에 굳은살이 박이면서까지 연습을 하여, 소리는 서툴지만 손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인데 이제 다시 바꾸어야 했다.
F 코드를 잘 잡는 가장 핵심 요령은 왼손 엄지를 넥 뒤로 넘겨서 짚어야하는 거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지금쯤 안정된 소리를 낼 수 있을 텐데. 이제 다시 걸음마로 돌아간다는 게 서글프다. 그동안 내가 흥에 겨워, 쳐본 곡들이 서너 곡은 되는 데 다 다시 시작해야한다니!
뭔가를 제대로 배운다는 게 참 어렵다. 수영처럼 물에서 살아남기 위한 헤엄이라면 아무 방식이나 사실 크게 상관이 없다. 내 한 목숨만 잘 지키면 그만이다. 근데 연주는 가까이 누군가의 귀에 들린다는 사실이다. 부족한 연주라도 애정을 갖고 한두 번은 들어줄 수 있으리라. 근데 반복해서 틀리거나 어떤 부분이 계속 해서 버벅 댄다면 소음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러니 다시 하기가 귀찮기는 하지만 기초부터 다시 배우려한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게 어딘가 싶다. 아마 전문가들이 하는 식으로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야했다면 끈기가 부족한 나로서는 지금만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뭐든 전문가에게 배우다보면 재미보다는 기초를 지나치게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그렇게, 지루한 반복 연습에 질려서 중간에 포기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혼자 배우다보면 적어도 악기가 싫지는 않다. 악기 가지고 장난감처럼 이래도 해보고 저래도 해볼 수 있으니까. 수영처럼 놀다가 익히듯이 악기도 놀다가 익히게 된다. 그 덕에 어쨌든 기타가 이젠 두렵지는 않다.
누구나 자신이 배운 대로 다시 가르치기 마련이다. 배우는 과정이 지겨웠던 사람은 남을 가르칠 마음조차 내기 어렵다. 심지어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즐겁게 배운 사람은 즐겁게 가르칠 수 있다. 기쁘게 배운 사람은 가르치는 것도 기쁘게 할 수 있다. 혼자 배웠다면 누구나 혼자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뭐든 재미있으면서도 제대로 배우는 법,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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