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배움의 일관성>

모두 빛 2010. 11. 10. 05:56

 

 

 

홈스쿨링 초기에 겪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시간 관리와 배움의 일관성이다. 이게 장점이 되어야 하는데 길들여진 교육의 잔상 또는 습관이 남아있어 그 그늘을 한꺼번에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니까 학교를 벗어나는 순간, 아이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누린다. 등하교 시간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 부모 역시 종종거리며 아이를 학교 보내지 않아도 된다. 근데 이렇게 왕창 주어진 시간을 마음껏 활용하자면 치유(독을 빼는 시간)가 필요하다.

 

그 첫째 이유는 시간의 주인으로 살아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등교시간은 물론 수업시간들이 다 누군가에 의해 짜여진 생활을 해 본 아이들은 자신 앞에 널린 시간에 당황해한다. 특히 부모들은 안절부절 못하기 쉽다.

 

그렇다고 학교처럼 빡세게 일정을 잡고 시도해 보지만 한 달 지속하기가 어렵다. 심한 혼란에 빠진다. 남들은 이 시간에 엄청 열심히 하고 있을 텐데. 나는 뭐지. 이런 갈등 속에서도 뭔가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길들여진 시간과 먼 미래를 보고 달려온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자 혼돈이다. 자, 이럴 때일수록 좀더 근원을 볼 필요가 있다. 시간은 자연이 준 선물이다. 시계는 인간이 사회화 과정에서 만들어낸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까 시계는 자연이 준 선물을 마음껏 잘 쓰자고 만든 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엎치락뒤치락 하던 홈스쿨링이 자리 잡으면서 나타나는 가장 긍정적인 변하는 아이들이 순간에 몰입한다는 데 있다. 몰입, 시간을 잊는다. 몰입은 엄청난 능력과 창조와 자아실현을 가져온다. 하기 싫은 공부 열 시간 하는 것보다 몰입하여 하는 10분짜리 배움이 더 오래가고 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수학 공부를 3년 동안 방치하다 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몇 달 사이에 3년 치를 끝내기도 하며, 그냥 내친 김에 계속 가기도 하는 홈스쿨링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럼, 어떻게 몰입을 할 것인가. 그 방법은 가정과 아이 조건에 따라 많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요리다. 이 부분은 내가 책에서도 언급했기에 생략한다. 한 가지만 강조하자면 요리 하나만 해도 그 안에는 생물학 물리 화학 문학 철학 사회학 모든 학문이 들어있다는 점이다.(참고 하나, 초등 홈스쿨러라면 <열두 달 토끼밥상>이 좋은 교재가 되리라 믿는다)

 

몰입을 하자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만화는 쉽게 몰입을 가져다주는 한시적인 교재가 된다. 요즘은 학습 만화뿐만이 아니라 수준 높은 만화들이 많다. 영화나 드라마 역시 좋다. 노래도 아이가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이다. 이렇게 하다가 아이가 영어나 일어를 줄줄 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역사 같은 경우는 부모 살아온 이야기가 의외로 아이들에게 흥밋거리가 된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가 자기 나이 때 어떠했는지에 관심이 많다. 어려서부터 이 부분에 대해서 부모가 아이와 공감을 나눈다면 역사에 대한 접근 역시 발전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소통이듯이 아이와 수다는 부모와 자식의 또 다른 소통을 가져온다.

 

사실 이 글에서 중심으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배움과 일을 하나로 살펴보는 데 있다. 아이들은 배움을 일로 연결하고 싶어 한다. 이 부분에 대해 먼저 부모가 아이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호기심이 살아있는 아이들은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가르치고 싶어 한다는 말이다. 배움과 가르침은 동전의 양면이 아닌가. 게다가 배움은 일이 되기 어렵지만 가르침은 바로 일이 된다. 일은 배움보다 한결 깊은 성장과 기쁨과 자아실현을 가져다준다. 일은 종합적인 교육이자, 성장이 눈에 보이는 교육이다.

 

이런 점에서 학교 교육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주로 듣기 위주 교육이 아닌가. 아이마다 한마디씩만 하게 해도 주어진 수업 시간이 다 지나간다. 부모가 아이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려하기보다 아이가 배운 걸 다시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가르쳐주고 싶어 할 때 들어줄 수 있는 느긋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소박하게나마 가족 세미나를 해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신기하게 준비하는지 느낄 것이다. 수다는 홈스쿨링식 국어교육이며 맺힌 마음을 푸는 치유의 교육이기도 하다.

 

배움이 일이 되는 또 다른 보기로 그림을 보자. 그림을 주어진 교과서대로 그리는 것은 별다른 동기부여가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로서 그린다면 달라진다. 사진 위에 있는 게 바로 아이가 그린 지난해 9월 달력이다.

 

이런 그림은 잘 그려야 맛이 아니다. 그냥 우리 집만의 달력 또는 나만의 달력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살려 그리는 거다. 이 달에는 무얼 그리지? 그렇게 구상하면서 사물을 새롭게 보게 되고, 그림을 그리면서 몰입하게 된다. 다 그리고 나서 그림이 부족하면 어떤가. 남과 견줄 필요가 없으니 부족하다는 느낌조차 쓸데없는 감정의 잉여가 된다.

 

달력이 완성되면 한 달 내내 그 달력을 보게 된다. 자신의 감정과 에너지와 혼이 담긴 달력. 달마다 새롭게 그려내는 과정에서 그림 공부가 많이 된다. 지난 한 해 아이는 일년을 그렸고, 이 달력을 본 이웃들이 달력을 구하고 싶어 했다. 하나 밖에 없는 달력을!

 

그런데 올해는 아내가 달력을 그리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아이가 하던 걸 본 아내가 자극을 받은 것이다. 아마 그림 공부로 했다면 몇 달 하다가 그만 두었을지 모른다. 근데 일로서 그리니까 그림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고 점점 사람이 달라져 보인다. 이 사람이 정말 내 아내가 맞나 싶다. 

 

그럼, 나도 그려볼 수 있을까? 아이도 아내도 했는데…….나도 내년에 한번 해봐? 아무래도 아직 난 내년까지는 자신이 없다. 나는 요리를 통해 배우는 게 아직은 재미있고 배울 게 많기 때문에 내겐 시간이 더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배움의 일관성은 일상성과 뗄 수 없는 관계다. 배움이 일이 되면 일관성은 물론 재미와 역동성과 성취감이 배가 된다. 그만큼 삶은 풍요로워지고, 배움은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