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의 역사가 깊어지는 만큼 그 지평도 넓어지는 게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산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겠나. 근데 그 지평이 어디 근사한 그 무엇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 그 하나의 보기를 들자면 이렇다.
우리 큰 아이가 자라면서 대학에 대한 고민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아이는 고민 끝에 대학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대학을 다닌다면 잃어버릴 게 더 많을 거 같아 가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개인의 결정이 초기에는 알게 모르게 흔들린다. 가까이 둘레에서 함께 홈스쿨링을 했던 동생뻘 아이들이 고등학교 과정까지는 잘 하다가 대학 앞에서 주춤하거나 대학교를 가려고 준비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우리에게 대학이 멀리 있을 때는 그 회오리가 실감나지 않았다. 근데 막상 우리 앞에 닥치자, 그 바람은 더 차갑게 느껴졌고,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싶었다. 누구나 독불장군일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서 자유롭고 자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 모임을 해보면 어떠냐고 제안을 해보았다. 대학 문제를 놓고 흔들리던 몇몇 젊은이들이 흔쾌히 가세를 했고, 모임은 활기를 띄었다.
첫 모임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가운데서 대학 이야기가 단연 많았다. 대학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과 대안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내게 인상 깊었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젊은이 누군가가 전체 참가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가진 자산이 뭘까?"
보통 자산이라고 하면 통장에 돈이나 부동산 따위를 떠올린다. 아니면 학벌. 근데 이 친구가 생각하는 자산은 바로 부모였다. 이 이야기를 곁에서 듣던 나 역시 머리가 뻥 뚫리는 걸 느꼈다.
그렇다. 아이에게 일차적인 자산은 바로 부모다. 그리고 보니 홈스쿨러가 아니라도 아이에게 부모란 가장 소중하고 자주 되새겨 보아야 할 자산이 아닌가.
왜, 무엇이 그러한가?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부모가 갖는 사회 역할 또는 사회성이 자산이 된다. 홈스쿨러들은 부모가 하는 사회 역할에 대해 아주 일찍 눈을 뜬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거의 다 꿰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엄마가 요리를 하면 아이는 일찍이 요리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해보고자 한다. 부모가 교사면 아이는 가르친다는 것에 즐거움과 고뇌를 알게 되고, 가르치는 방법이나 심지어 잔소리까지 알게 모르게 몸에 익히게 된다. 컴퓨터를 많이 하는 부모를 둔 아이는 자연히 컴퓨터에 익숙하게 된다. 농사를 짓는 부모를 둔 홈스쿨러들은 일찍이 농사를 알게 되고, 그 일을 하게 된다.
이럴 때 부모가 하는 일이 과연 사회는 물론이고 부모 자신에게 의미 있고 보람 있으며 행복한 일인가를 자주 되묻게 된다. 부모가 단순히 돈벌이를 위한 직장으로서 일을 한다면 아이가 배우는 사회 역할이나 사회성은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모가 하는 일과 역할이 사회를 유익하게 함은 물론 본인에게도 자아실현이 된다면 아이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부모 일을 배우게 된다. 이 때도 아이들은 부모 역할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부모 역할에 대해 비판적이라면 이를 넘어서고자 하며, 부모 역할이 긍정적이라도 거기에 매몰되어 머물지는 않는다.
부모가 자산이 되는 두 번째는 인맥이다. 아이들이 집을 중심으로 생활하기에 부모 인맥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시시콜콜 다 알게 된다. 심지어 부모 자라던 어린 시절 친구 이야기까지 듣고 알게 된다. 부모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자연히 이야기도 함께 나누니 부모 인맥이 아이에게 이어진다. 물론 이 때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근데 부모 인맥들은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홈스쿨러들은 대개 특별한 길을 가니까 그 자체가 흥밋거리기도 하고 약간의 우려 섞인 기대 같은 걸 갖는다. 하다못해 안부 전화라도 주고받으면 꼭 아이들 근황을 물어볼 정도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 인맥을 선택적으로 취한다. 그림을 배우고 싶다면 그림 쪽 사람을 찾아가게 되고, 출판 쪽 인맥이 필요하다면 그 인맥을 취한다. 우리 사회는 적어도 배우려고 하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열려있다. 아이들 인맥은 부모 인맥을 자산으로 해서 점차 자신들만의 인맥으로 뻗어간다. 이제 우리 부부는 거꾸로 자식들 인맥 덕을 가끔 본다.
부모가 자산이 되는 세 번째는 지적 자산이다. 부모가 대학을 나왔다면 굳이 아이가 대학을 나올 필요를 덜 느끼게 된다. 부모를 통해 대학에 대한 장단점을 충분히 들으면서 판단을 한다. 우리 부부가 대학 다니면서 좋았던 건 동아리나 학회활동이었다. 뜻 맞는 친구들과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토론하는 자리를 자주 가졌던 것. 우리는 이 경험을 살려 한동안 가족 내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주제는 그때그때 본인들이 하고 싶은 주제를 정해 각자 발제를 하고 함께 토론을 하는 식으로 했다.
근데 이렇게 해보니 아이들이 부모에게 받을 수 있는 지적 자산이란 일찍이 그 바닥이 드러난다. 부모 경험이란 이미 지난 시절의 것이었고, 몇 십 년이 지난 뒤인 오늘날의 사회적인 지적 자산은 엄청나게 늘었기 때문이다. 부모를 넘어서는 건 아이 자신들 몫이다. 아이들은 이를 살려 친구들과도 세미나를 하면서 대학이 주는 내용을 한동안 채운 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문화적 자산이다. 경제적 자신이라고 할 때 부모가 돈이 많으냐 적으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빚이 있느냐 없느냐다. 빚이 있어 돈에 쪼들린다면 아이에게 그늘을 안겨줄 가능성도 높다. 빚이 없다면 그 자체만으로 경제적 자산은 든든하다. 학교에서는 부모 직업이나 재산을 서로 견주는 분위기가 은연중에 강하지만 가정을 중심으로 배울 때는 아이들은 제 부모를 다른 부모와 여간해서 견주지 않는다. 이것만 해도 홈스쿨링은 그 지평이 무한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부모가 어렵다면 한 푼이라도 부모를 돕고자 한다. 부모가 아프다면 정성을 다해 돌본다. 부모가 솔직하기만 하면 아이들은 언제나 힘을 보탤 준비가 되어있다. 아이 자신의 행복은 부모 행복과 분리되는 게 아니라는 걸 몸으로 알기 때문이다.
문화적 자산이란 의외로 간단하다. 부모가 영화를 좋아하면 아이도 그렇고, 부모가 기타를 즐겨 치면 아이 역시 자연히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부모의 문화적 자산에만 맴돌지는 않는다. 우리 부부는 전혀 피아노를 칠 줄 모르지만 아이들은 제 친구들 영향을 받아 피아노를 즐긴다. 다만 이를 자산으로 이야기하는 건 문화적 갈증을 푸는 실마리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많은 걸 골고루 접해도 그것이 자기 것으로 소화되지 않으면 갈증이 된다. 반대로 자신과 가족이 가진 문화적 자산을 충분히 수용한다면 그 갈증은 현저히 줄어든다. 여기서도 조금 더 나아간다면 문화를 소비하는 흐름에서 벗어나 창조하는 쪽으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부모가 가진 일차 자산에 대해 우리들이 너무 무지하거나 무시해 왔다는 점이다.
홈스쿨러들의 연대라는 것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바로 부모와 자식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 그게 바로 연대의 시작이자 어떤 점에서는 전부일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이보다 더 시급한 건 부모와 자식 사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홈스쿨링을 안 해도 좋다. 다만 모두가 너무나 소중한 자산을 곁에 두고도 모르는 홈맹(Home盲) 만은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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