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솟아나는 글쓰기

월드컵보다 재미있는 일

모두 빛 2010. 6. 19. 05:10


온통 월드컵 이야기다. 신문도 방송도 인터넷 메인화면도. 나는 그 재미를 모르겠다. 내가 까칠한가 아니면 별난가. 그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자라면서 놀이라면 다 좋아했다. 당시에는 축구도 공이 없어 볏짚을 공처럼 돌돌 말아 차기도 했고, 마을에 잔치가 있어 돼지라도 잡는 날이면 돼지 오줌보를 구해서 차곤 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쯤에는 주먹만한 고무공이 나왔는데 밤이 어두워지도록 차고, 심지어 어떤 날은 아이들과 호야 등을 켜고 밤 축구를 한 적도 있다. 어떤 밭은 너무 많이 놀아 이듬해 소 쟁기가 안 들어가 고생한다고 주인한테 쫓겨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보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 몸을 움직여 스스로 경기를 할 때 오는 짜릿함과 충만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야구단이 꽤나 유명했는데 큰 시합이 있다면 공식적으로 수업을 대신해서 응원을 가게 했다. 운동장 응원이란 참말로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내가 방망이를 들고 저 타석에 서고 싶은 열망만이 속에서 일어나곤 했다. 나는 구경꾼이 싫다.

 

그런데 농사를 지으면서는 이마저도 달라졌다. 이젠 승부에 집착하는 운동 경기는 그리 재미가 없다. 이기면 우월감, 지면 좌절감을 겪는다. 둘 다 바람직하지 않는 감정이다.

 

대신에 나는 일이 좋다. 일이 지겨우면 놀이처럼 규칙을 정해서 한다. 스포츠는 다 규칙을 기본으로 해서 만든 것들이다. 일 역시 자기가 규칙을 정하면 뭐든 놀이가 된다. 이를테면 모내기를 한다면 일을 얼른 끝내는 게 목표가 아니다. 허리를 아프게 하면 우선 반칙이라고 정한다. 너무 넓게나 좁게 또는 너무 많게나 적게 심는 것들도 다 반칙이다. 못줄을 안 쓰지만 못줄을 쓴 것 못지않게 하는 잘 할 때 점수를 높게 주는 규칙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일에다가 규칙을 만들고자하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 하나하나가 다 재미다.

 

허리가 안 아프게 하는 것 만해도 얼마나 다양하고 재미난 동작이 많이 나오나 모른다. 요가에 태극권에 탱고에 살사에 온갖 동작을 하면서 모를 심는 거다. 한번 허리 숙여 몇 번 정도 심을 때 허리가 아파오는가를 통계를 내보는 것도 재미다. 물론 이렇게 하자면 모내기는 당장 조금 늦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일하는 과정에서 운동과 예술과 놀이와 배움이 다 어우러진다면 굳이 따로 뭔가를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일은 성취감을 높여준다. 눈앞에 그 결과가 보이니까 자존감도 높아진다.

 

우리나라와 아르헨티나 전이 열리는 날, 어두워질 때까지 논에서 일하다가 올라왔더니 전화가 왔다. 축구를 이웃집에 모여서 같이 보잔다. 거절하기도 그렇고 하여 일거리를 하나 가져갔다. 그 일거리란 바로 내가 쓰고 있는 동시다. 요즘 나는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시를 쓰는 데 푹 빠져 산다. 시간만 나면 메모하고 가다듬고 한다.

 

시가 웬만큼 되었다 싶으면 만나는 아이들마다 보여주곤 한다. 며칠 사이 다섯 편 정도 쓴 걸 프린트해서 올라갔다. 방안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열 사람쯤 모여 시끌벅적하다. 간단히 안부들을 나누고 또 축구이야기다. 모인 사람 가운데 축구에 나처럼 흥미가 없는 사람을 먼저 찾아 따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분은 자폐아를 지도하는 교사다. 참 어려운 일들이 많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삶을 나누는 이야기는 늘 진솔하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니 축구보다 한결 흥미롭다.

 

간간이 함성 소리가 들려서 티브이 화면을 보면 재미있는 순간도 보인다. 하지만 다시보기로 다시 보니 너무 끔직하다. 우선 반칙이 잦다. 일부러 하는 반칙을 볼 때면 사람에게 양심이 있는가를 묻게 된다. 내가 너무 소심하고 까칠한 걸까. 몸싸움하다가 다치는 장면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러니 계속 보기가 어렵다. 아이들 가운데서 축구를 건성으로 보는 아이가 있다. 슬쩍 묻는다.

“내가 동시를 몇 개 쓴 게 있는 데 좀 봐 줄래?”

“좋아요. 고양이 밥 좀 주고요.”

 

시끌벅적한 방을 나와 조용한 거실에서 아이가 내 글을 읽는다.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그냥 이 순간이 나는 좋다. 전반전이 끝나고 쉬는 시간. 축구에 혼이 나간 아이들에게도 내 글을 봐 줄 수 있냐고 했더니 봐 준다. 그 아이가 내 글을 봐 준만큼 나 역시 축구를 본 거 같다.

 

축구가 끝나고 어른들은 내 글을 보고 합평을 해 주었다. 월드컵 축구를 모여서 응원하는 게 좋기는 좋구나. 부족한 내 글을 읽어주는 이웃 어른과 아이들, 모두 모두 고맙다.

 

나처럼 축구를 안 좋아하는 사람, 어디 또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