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솟아나는 글쓰기

다시 시와 만나며, <동시마중>을 읽다가

모두 빛 2010. 5. 25. 11:38

 

 

<동시마중>이라는 잡지가 창간되었다. 어린이 문학을 다루는 잡지가 몇 권 있기는 하지만 동시를 전문으로 하는 잡지는 처음이다.

 

내게 동시는 좀 낯설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 마음을 어느 어른 못지않게 많이 이해하고자 하는 편이다. 그 동기는 바로 우리 아이들부터다. 산골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또 아이들과 늘 가까이 지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 많은 느낌을 받곤 했다. 보통 교사들이 수많은 아이들을 만난다면 나와 아내는 적은 아이들이지만 아주 깊이 있는 만남을 가져왔다.

 

농사 역시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작물을 키우지만 작물은 말이 없다. 잘 자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병들거나 잘 안 자라면 작물과 대화를 하고자 노력을 한다. 말이 없는 작물과 잘 통하자면 작물이 자라는 모습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어야한다. 단순히 먹을 욕심이나 돈을 벌 욕심만으로는 농사가 안 된다. 관심과 애정을 가져도 답을 못 찾을 때면 작물 앞에 무릎을 꿇고 빌기도 했다.

 

말 없는 작물과 수 없이 만나는 동안 말을 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아프면 아프다, 좋으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 곡식 농사에 견주면 자식 농사는 참 쉬운 편이라는 걸 알았다.

 

이렇게 곡식 농사 자식 농사로 경험이 쌓이자, 차츰 글 농사도 짓게 되었다. 글은 삶에서 나온다. 삶을 가꾸는 만큼 글 농사 역시 푸짐하리라. 삶이 메마르면 글 농사 역시 흉작이 된다. 삶이 풍성하다는 건 감동이 많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다.

 

그렇게 감동이 조금씩 쌓여갈 무렵, 어린이 신문 <굴렁쇠>를 만났다. 2003년부터인가, 그 신문에 글을 쓰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그냥 농사를 이야기 하자면 이게 참 어렵다. 글쓴이도 어렵지만 요즘 아이들이 시험과 학원에 짓눌려 좀 힘든가. 그런 아이들에게 낯설기만 한 농사 이야기를 또 보탠다는 게 썩 내키지를 않았다. 고민하던 끝에 농사 이야기를 하되 삶의 느낌이 있던 그 어느 순간을 잡아 쓰기로 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3년이나 계속 썼다.

 

곡식도 씨를 뿌리고 가꾸면 거두듯이 글도 그렇다. 아내가 먼저 <자연달력 제철밥상>이라는 책을 내고, 그 뒤를 이어 우리 부부가 함께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인 <아이들은 자연이다>라는 책을 냈다. 부모 삶이 바로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지, 큰 아이 역시 어린 나이에 <개똥이네 놀이터>에 요리이야기를 연재하다가 이를 묶어 <열두 달 토끼 밥상>이라는 어린이 요리책을 냈다. 

 

나는 <굴렁쇠>에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묶으려다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아직 책으로 거두기에는 감동이 부족하리라. 그러던 차에 <동시마중>을 만났다. 창간호에 김찬곤님이 쓴 ‘동시는 왜 있나’에 과분하게도 내 이름과 시가 한 편 올라있는 게 아닌가. 다시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물론 나는 요 몇 해, 틈틈이 감동의 순간을 잡아서 메모를 해 두기는 했다. 하지만 다듬지 않은 날 것 그대로다. <동시마중>을 보면서 든 생각은 ‘감동’이다. ‘감동이란 무엇이고, 어디서 나오며, 어떻게 나눌 수 있나’를 생각하게 한다. 안에서 감동이 차올라 토해내는 것도 있고, 별 감동이 없으니까 이리저리 쥐어짜는 것도 보인다. 자기 안에 갇힌 감동도 있고, 정작 자신은 빠진 ‘껍데기 감동’도 얼핏 느껴진다.

 

잡지를 다 본 또 하나의 느낌은 돈 이야기다. <동시마중>은 광고비나 후원금을 받지 않고 구독료와 편집위원들 회비로만 내겠단다. 돈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마음이 잘 느껴진다. 감동이 돈에 휘둘릴 수는 없는 일. 십시일반으로 감동을 모아간다면 돈은 감동을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

 

동시에도 여러 빛깔이 있겠지만 나는 '어린이를 위한 동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른 자신의 자기 성장과 감동이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려고만 드는 어른을 나는 성장이 멈춘 사람이라고 본다. 반면에 어른 스스로 성장하고 감동하되, 그 감동이 크다면 그이가 쓴 글이 덜 매끄럽더라도 누구나 공감하지 않겠나.

 

내게 동시란 바로 그 지점이다. 시를 쓰되 아이들도 공감할 수 있는 시라면 좋겠다. 만일 이게 잘 안 된다면 아이들에게 많이 배우려고 한다. 아이 안에는 어른을 일깨우는 지혜가 얼마나 많나. 어른이 한 번 웃을 때 아이들은 열 번 웃으며, 어른이 한 번 감동할 때 아이들은 열 번 감동한다. 성장은 감동과 한 길에서 만나는 게 아닐까.

 

다시 시를 만나며, 삶을 돌아본다. 이제부터 나는 줄글보다 시를 더 많이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