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몸 공부, 마음 이야기

아프다

모두 빛 2008. 11. 25. 16:43

 


요즘 아프다. 뱃속이 아픈 데 쉽게 낫지를 않는다. 이유는 요즘 책 원고 막바지라 그렇다. 좀더 나은 책을 내고자 하는 산통 비슷하다고 할까. 아내는 내가 준비하는 이번 책에 관심이 많다. 올봄, 처음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할 때도 나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출판사에서 제안한 컨셉은 <남자의 재발견- 한 남성의 자기치유 이야기>였다. 처음에 나는 좀 시큰둥했다. 이게 사회적으로 어떤 뜻이 있는 지 실감나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는 정말 필요한 책이 될 거라 한다. 이 땅의 적지 않는 남자들이 가부장 문화와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짓눌려 힘겹게 산다.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는 커지만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사회적 소통도 쉽지는 않지만 가정에서 역시 세월이 갈수록 점점 구성원에서 밀려나듯 움추려든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자신은 사라지고 몸은 병들어갔다. 삶의 밑바닥을 겪으면서 혹독한 자기치유와 성찰을 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나다운 삶을 산다. 나는 소심하고 나약한 남성이지만 자신을 치유할수록 나를 실현하고 또 내 안의 잠재된 가능성도 자꾸 살려간다. 또한 나약함을 가리지 않고 제법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도 생겼다.

 

아내는 이를 잘 살려보잖다. 듣고 보니 그렇다. 나로서는 일상이 되어 소중함을 자각하지 못한 걸 출판사와 아내가 꼭 집어준 셈이다. 그동안 여러 매체에 썼던 모든 글을 이 주제에 맞추어 다시 써야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참견하고 도움말을 주곤 했다.

 

얼마 전에 출판사로 최종 원고를 넘겼고, 좋다고 오케이까지 한 상태. 그런데 여러 사람의 모니터링을 종합한 결과 다시 욕심이 난다. 아예 전체 중요한 틀까지 새로 좀 바꾸어야했다.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도 함께 보면 좋을 책으로.

 

그러나 생각만 그러할 뿐 그렇게 진행이 잘 안 된다. 봄부터 다듬어 온 원고라 좀 지치기도 한데다가 앞으로 시간도 마냥 늘어질 수가 없다. 머리만 복잡했다. 원고 전체가 완성된 상태에서는 어느 한 부분을 고치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 전체 틀에서 움직여야하기 때문이다. 마치 완성된 집을 마무리해야하는 단계인데 기둥을 옮기는 꼴이 되고 만다.


책도 집과 마찬가지로 지어진다. 큰 주제가 주춧돌이 되고, 이 주춧돌 위에 몇 가지 기둥에 해당하는 부로 나뉜다. 기둥에서 도리와 보 그리고 서까래가 맞물리듯이 각 부에서 다시 작은 갈래로 글쓰기가 나뉜다. 지붕을 씌우고, 벽을 채워 공간을 만들듯이 글을 써, 내용을 채운다.

 

머리가 뒤엉키니 뱃속도 소화가 안 되나 보다. 더부룩했다. 식구들은 밥 때가 되어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는다. 나는 입맛이 없어 먹지 않기로 했다. 식구들은 연신 맛있다면서 먹는 데 전혀 식욕이 돋지 않는다. 이럴 때 억지로 따라 먹으면 더 혼이 난다.

배만 열심히 쓸어주다가 자려고 누웠더니 머리는 복잡하고 뱃속은 거북하여 잠이 안 온다.

“여보, 나 좀 따줄래요.”

 

그러니까 우리 식구는 체했을 때 사혈침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따서 피를 뺀다. 기혈이 막혀서인지 피도 잘 나오지 않는다.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을 찌르고 피를 뽑고 나니 좀 낫다.

자고 나니 머리는 조금 맑아졌다. 그러나 속은 여전히 편하지 않다. 식구들이 맛나게 아침을 차려먹는 데도 밥 생각이 없다. 어제 점심 먹고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20시간 가량 단식이다.

“여보, 미음이라도 좀 끓여줄까요?”

“아니, 좀더 기다려볼래요.”

 

뱃속을 한참 주무르자 뒤가 마려온다. 똥을 조금 누었다. 한결 기분이 좋다. 막힌 게 조금씩 뚫리는 기분이다. 곧이어 일을 했다. 나무를 하고, 훈탄도 만들었다. 몸을 쓰는 일에는 크게 지장이 없다.

 

살살 배가 고파 무국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일을 하는 데 이번에는 금방 배가 고파왔다. 다 나았나 싶어 곶감 하나랑 죽을 먹었다. 그런데 이 게 다시 탈이 났다. 이제는 배가 더부룩한 걸 넘어 아프다. 부위는 배꼽 둘레. 가만히 있어도 약간의 통증이 있지만 배를 만지면 더 아프다.

 

아픈 부위를 만져보면 딱딱한 멍울 같은 게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멍울이 심장 뛰는 것처럼 팔딱팔딱 뛴다. 그럼, 심장은? 살그머니 만져보니 움직임이 미미하다. 추측해보자면 뱃속 어딘가에 뭔가가 단단히 막혔다. 그러니 이를 뚫자면 피를 온몸으로 골고루 보내기보다는 아픈 부위에 집중하고자 하나보다. 아내와 상상이도 나서서 내 배를 주무르고 쑥뜸을 떴다.

 

음식은 아주 허기질 때 숭늉을 조금 마시는 것이 전부. 다시 자고 나니 조금 더 나아지기는 했다.  딱딱한 멍울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배꼽 둘레는 열이 있고, 아프다. 이 때는 앉아있거나 서있으면 아픈 부위가 팔딱거리지 않는다. 그러나 누우면 마찬가지로 팔딱팔딱 뛴다. 그러니 방에서 쉬기보다 자꾸 일을 했다. 몸은 힘이 없어도 일하는 게 편했다.

 

정말 산통이다. 비유를 들자면 아기 머리는 나왔지만 가장 중요한 고비인 어깨부위를 빠져나오는 단계다. 이 단계만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쉽지 않을까.

 

자기만족에 그치는 글쓰기가 아닌, 사회적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가 되다보니, 사회적 아픔을 함께 겪는다. 금융위기에 실물경기 침체, 실업에 대한 압박과 불안한 미래들, 가족 사이 소통부재로 숨죽이는 사람들에 작은 힘이 될 수 있을까.

'살아가는 이야기 > 몸 공부, 마음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앞치마의 힘  (0) 2009.02.23
한산도로 떠난 가족여행  (0) 2009.01.20
딸과 함께 쇼핑을 하면서  (0) 2008.07.13
꼬리에 또 꼬리  (0) 2008.07.11
마음도 좋아지는, 몸을 위한 일  (0) 2008.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