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몸 공부, 마음 이야기

한산도로 떠난 가족여행

모두 빛 2009. 1. 20. 19:50

 

 

 

 

우리 식구는 넷이 늘 붙어지는 것 같지만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만은 쉽지가 않다. 학교나 직장에 매일 일이 없는데도 그럴 기회가 좀체 없다.

돌아보면 한 삼년 전쯤에 경주로 가족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상상이가 경주를 가고 싶다고 해서 학교에 가는 수학여행이라고 치고 갔었다. 그러다가 지난해는 잡지 <나도너도>를 내고나서 이웃이랑 엠티 삼아 바다를 가기로 계획을 잡았다. 그런데 일년이 지나도록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가족여행을 잘 떠나지 않는 데는 내가 가장 중요한 원인 제공자다. 나는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논밭 둘레에서 일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사진 찍는 걸 즐긴다. 여행에 대한 욕구도 적은데다가 여행지에서 먹고 자는 게 불편하다. 돈도 적지 않게 든다.

그런 내가 이번에 다시 큰마음을 먹었다. 그 이유는 식구들이 나를 많이 도와주었기에 그 마음을 나타내고 싶기 때문이다. 식구들은 지난 일년 동안 내가 <피어라, 남자> 책 원고를 고치고, 다듬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글을 보아주고, 고칠 부분을 알려주고, 새로운 주제에 대해서도 적지 않게 영감을 주었다. 사진 역시 이번에는 식구들 도움을 받았다. 사실상 가족 공동 작업이라 해도 좋을 만큼 식구 모두가 힘을 모아준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행을 안 해보던 사람이 하자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것부터 고민이다. 산골에 사니 바다가 기본. 여기서 멀지 않는 바다라면 통영이다. 그러자 아내가 한산도를 가고 싶단다.

일차 목적지가 정해졌으니 가는 길과 구체적으로 어디서 무얼 먹고, 어떤 길을 거치며 무얼 보고, 무얼 할 것인가. 인터넷으로 통영시 지도를 검색하고, 한산도 여행기를 보았다. 하루 쯤 이것저것 알아보았지만 구체적인 코스를 잡기가 어려웠다. 너무 막연하고, 좋다는 여행기는 우리 식구 취향이 아니다.

우리는 보는 여행보다는 몸으로 때우는 여행을 좋아한다. 하루쯤 지나 다시 코스를 확인해가니 조금씩 감이 잡힌다. 한산도 아래 수봉도가 다리로 연결되었단다. 그러자 점심 먹을 곳도 쉽게 정했고, 몸으로 때울 일거리도 대충 감을 잡았다. 상상이에게 농구공을 챙기라고 했다.

한산도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집에서 아침 여덟시 출발.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잠시 인터넷으로 일정을 최종 점검했다. 그 다음 식사 준비. 또 가는 길에 택배 부칠 거리도 챙겼다. 여행을 떠나지만 기본 먹을거리는 준비를 한다. 마실 물과 간식거리로 곶감도 챙겼다, 회를 맛나게 먹기 위해 초장도 집에서 준비.

통영에서 한산도 가는 배가 한 시간 반마다 있다고 했다. 10시 30분 배를 타기로 하고 집에서 여덟시에 출발. 휴게소에 들리지도 않고 곧장 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막상 도착하니 배가 한 시간 간격으로 있단다. 10시 배가 출발하기 일분 전. 아슬아슬하게 탔다. 마치 배가 우리를 태우기 위해 기다려주는 것처럼. 우리 승용차를 배에 싣자마자 바로 출발.

한산도까지 가는 뱃길은 참 아름답다. 한산도 제승당까지 가는 20분 남짓 볼거리가 많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거제도에서 한산도로 가는 길이 배 삯은 훨씬 싸다. 배에서 내려 차로 시속 5키로 남짓 천천히 추봉도로 방향을 잡고 출발.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여 11시쯤에 추봉도에 왔다.

추봉도 봉암해수욕장은 해변이 독특하다. 모래사장 대신에 몽돌 투성이다. 몽돌은 모가 나지 않고 부드럽고 동글납작한 돌이다. 그래서 이곳은 봉암 몽돌해수욕장이라고도 부른다. 겨울철 평일이라 우리 식구 밖에 없다. 고요하니 몽돌이 파도 따라 구르르 소리가 아주 좋다. 수만 수천만 개의 몽돌이 파도가 밀면 밀리면서, 파도가 밀려나면 밀려나면서 소리를 낸다.

“와르르! 까르르르!”

마치 사람들 웃음소리 같기도 하고, 악기 연주 같기도 하다. 해변에서 가볍게 몸도 풀고, 납작한 몽돌로 수제비 따먹기도 했다. 바위 곁으로 가서는 고둥 줍기와 굴 따먹기. 밀물이 들어와 바위에 붙은 굴을 몇 개만 따먹었다. 자연의 향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이렇게 여행을 와서도 먹을거리를 손수 하는 게 재미있다.

산책 코스도 잘 되어있다. 해수욕장을 한바퀴 돌아 나오니 점심시간. 한산면 소재지에 있는 보리수 식당을 갔다. 인터넷에서 횟집으로 추천 받은 곳이었는데 들어가니 ‘대통령이 다녀간 곳’이란다.

“회를 먹고 싶은 데 추천 좀 해 주세요.”
“요즘은 방어가 제철이에요.”

수족관에서 노니는 큼지막한 방어. 요즘 흔하게 잡히는 생선인데 산골에서 싱싱하게 먹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제철에다가 값도 싸니까 방어회로 결정. 회를 준비하는 동안 면 소재지 우체국으로 달려가 택배를 발송. 방어회는 한 마리 네 식구가 먹어도 푸짐하다. 이어서 매운탕과 밥.

잘 먹고는 농구공을 챙겨 산 중턱에 있는 한산 중학교를 산책 삼아 들렸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안 다니니까 여행지에서 만나는 학교도 우리 식구에게는 소중한 곳이다. 이 학교는 뒤로 산, 앞으로는 바다를 두고 있다. 상상이와 농구공으로 놀이를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골대에 들어간 공이 골 그물망을 빠져나오지 않는 거다. 간신히 공을 뺀 다음 학교를 둘러보는 데 선생님 몇 분이 오신다. 우리 곁에서 같이 점심을 먹던 분들이었다.

탱이가 다가가더니 인사를 한다.

“저기요. 축구공 좀 빌릴 수 없을까요? 농구대 그물망이 고장 나서.”
“어디서 왔나요?”
“무주요.”
“잠깐 기다리세요.”

이렇게 해서 학교 공을 빌려 이번엔 다른 놀이를 했다. 먼저 상상이가 좋아하는 발야구. 나와 아내가 한 편, 탱이와 상상이 한 편. 운동장이 넓으니까 마음껏 공을 차도 좋았다. 그 다음은 족구. 역시 같은 식으로 편을 나누어 한 시간쯤 즐겁게 놀았다. 운전하고 굳은 몸이 완전히 풀리는 기분이다.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 여객 터미널에 도착하니 30분 남았다. 제승당을 둘러볼까 했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바닷가 둘레를 가볍게 산책만 했다. 이 곳 역시나 자연산 굴이 지천이다. 마치 우리 산골에는 먹을 풀이 길가에 지천이듯이 이곳은 굴이 그런가 보다.

배를 타고 통영에 도착, 시장 보기. 여객 터미널 앞에 서호시장이 있다. 시장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여행객이 많아서인지 낮 시간인데도 여전히 활기차다. 한바퀴 둘러보다가 굴과 해삼 그리고 매생이를 좀 샀다. 가다가 휴게소에 가볍게 먹을 충무 김밥도 한 줄 샀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여섯 시가 넘어가며, 어두워진다. 부랴부랴 군불을 지피니 딱 하루가 흘렀다. 식구 모두 만족하는 여행이었단다. 일년에 한번쯤은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도록 내 마음이 좀더 넉넉해져야겠다.

'살아가는 이야기 > 몸 공부, 마음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소년 10명 중 6명 "변비로 고통"(세계일보 링크)  (0) 2009.02.23
앞치마의 힘  (0) 2009.02.23
아프다  (0) 2008.11.25
딸과 함께 쇼핑을 하면서  (0) 2008.07.13
꼬리에 또 꼬리  (0) 2008.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