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사람 공부, 이웃 이야기

장모님 장모님 우리 장모님

모두 빛 2008. 8. 14. 11:16
 

 

 

장모님이 오랜만에 오셨다. 연세가 많으시다. 팔순이 넘어 귀가 잘 안 들린다. 큰소리로 말해야한다. 우리 집을 둘러보시면서 감회가 새로운가 보다.

“앞에 나무가 많이 컸네.”

아래채를 보더니 감탄을 하신다.

“집을 잘 지었구나!”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연신 감탄이다. 음식마다 한 말씀을 하신다.

“토마토가 빨갛고 맛있네. 장에서 산 거는 맛이 없어. 오이소박이도 맛있고.”

 

기분이 좋다. 우리 식구가 처음 시골 간다니까 그렇게나 못마땅하게 여기고 반대를 하시더니. 오랜만에 다시 온 지금 모든 게 새롭게 보이나 보다. 답답한 서울 아파트에 갇혀 살아서인지 이곳에서는 얼굴이 잘 펴진다.

심지어 반찬하려고 뜯어온 부추마저 날 것 그대로 맛을 본다.

“맛있네.”

 

팔순이 넘은 노인네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호기심도 많고 혀가 느끼는 감각도 살아있다. 아침에는 밥도 한 그릇 하고 좀더 드실 정도로 의욕이 살아나시나 보다.

 

내가 아는 장모님은 평소에도 그렇지만 잠시도 몸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얼마 전 팔을 다쳐 한손이 불편하다. 그럼에도 일을 손에서 놓지를 않는다. 오늘 아침에도 집 앞 밭에서 따온 부추랑 들깻잎을 다듬는다. 한 손으로만 다듬는 모습. 손가락 두 개로 손톱을 이용하여 쉼 없이 일을 한다.

 

아침을 먹고는 또 다시 마당에서 꽈리를 딴다. 붉게 익은 꽈리.

“그건 뭐하게요?”

“응, 이게 약이 된데.”

“그래요. 어디에 좋은데요?”

“그건 모르겠는데. 예전에 꽈리가 익으면 실로 잘 묶어서 매달아 말리곤 했거든.”

 

당신이 딴 꽈리를 이번에는 탱이에게 바늘과 실로 꿰라고 한다. 손녀 탱이랑 마주 앉아 이것저것 요령을 알려준다. 실에 다 묶은 꽈리를 탱이가 안방에 거니 방안이 환하다.

 

나는 이렇게 장모님처럼 몸 놀리는 걸 좋아한다. 어쩌면 내 내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늙어죽을 때까지 자신을 돌보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남이 차려주는 밥상보다 손수 차리는 밥상이 여러모로 좋다.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를 가지고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해서 먹는 맛. 노년에 할일이 없어 빈둥빈둥 거리면 시간도 잘 안가고 성인병에다가 노인병만 깊어질 뿐이다. 몸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시나브로 하는 일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지름길이라 나는 믿는다.

 

장모님이 다시 서울로 떠나셨다. “장모님”하고 혼자 불러본다. 느낌이 참 좋다. 장모(丈母)를 사전에 찾아보니 장(丈)은 어른 장이다. 그러니까 장모는 ‘어른엄마’가 된다. 내가 어른이 된 다음에 어머니가 되는 분.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또 다른 어머니.

 

장모님, 장모님, 우리 장모님. 먼 길 저희 집을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