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사람 공부, 이웃 이야기

손님이 이어지는 날, 그 어떤 조화?

모두 빛 2009. 3. 18. 06:16

 

 

 

산골 살다 보니 사람이 유난히 꼬이는 날이 있다. 어제도 그랬다. 모 잡지에서 인터뷰한다고 두 사람이 우리 집에 도착했다.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 데 집 뒤란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고양인가?”

 

자꾸 소리가 나기에 돌아가 보니 전화국에서 수리 차 나오신 분이 집 뒤 전화선을 자르고 계신다.

“찬 한 잔 하고 하세요.”

 

지난번에 벼락을 맞고 나서 부랴부랴 연결한 전화선이 감이 떨어져 통화가 어려웠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이 시간에 고치려 오신 것이다.

 

서울 손님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감자를 심었다. 감자 심고 돌아오자, 이번에는 탱이 친구가 둘 왔다.

 

훤칠하게 자라, 어른이 다 된 친구들. 보는 것만으로 힘이 솟는다. 집안이 다시 시끌벅적. 이 친구들은 우리 집, 저희 집이 따로 없다. 탱이하고는 10년 지기인데다가 둘 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 내 자식이나 다름없다. 두 손을 척척 걷어붙이더니 저녁을 준비한다. 집 안팎을 들락날락. 익숙하게 밥상을 차려냈다. 며느리 사위 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마을 갔던 상상이까지 돌아와, 대화에 끼어든다.

 

그런데 난데없이 또 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다시마 사려!”

 

위에 탱이 친구들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만남이었다. 그런데 저녁녘에 나타난 이는 우리 이웃에 살다가 저 멀리 진도로 이사를 간 친구다. 고운 정 미운 정이 골고루 들었던 이웃. 일년에 한번씩 마을 인사삼아 미역이나 다시마 또는 소금을 싣고 와서 여기 이웃들에게 다닌다. 해마다 겨울 무렵에 다녀가곤 했는데 올해는 봄에 왔다.

 

반가움에 서로 끌어안고 안부를 묻고 서로의 성장을 기뻐하며 수다를 떤다. 반가움도 잠시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다. 

“다른 집에 들러볼게요.”

“저녁 먹고 가요.”

“나중에 돌아갈 때 다시 들릴 게요.”

“그려, 편안대로 하구려.”

 

진도 친구는 떠나고, 탱이 친구들이랑 시끌벅적 저녁을 먹는다. 밤 아홉시, 일찍 잠자기는 글렀다. 그런데 졸린다. 졸리면 세상없어도 자야지. 오전에는 닭장 정리하면서 퇴비 만들기를 했고, 오후에는 감자를 심었다. 게다가 손님을 하루 동안 얼마나 치렀는지.

 

이런 날이면 그 어떤 조화를 느낀다. 사람이 유난히 꼬이는 날. 언젠가 한번은 전혀 예상치도 않게 한꺼번에 30여명을 치룬 적도 있었다. 이번엔 지역적으로 위아래 골고루 치룬 날이다. 그러니까 서울서 내려온 손님과 남쪽에서 올라온 손님. 남쪽은 보성과 진도에서 올라왔다. 서울손님은 사람 소식 전해주고, 남쪽 손님은 바다소식, 꽃 소식을 전해준다.

 

이곳은 산수유가 활짝 피기 시작했고, 초여름 날씨에 가까워서인지 집안에서 겨울잠을 자던 무당벌레들이 다 깨어나, 온 집안 밖을 기어 다닌다.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하루였다. 노자는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를 안다 했다. 어쩌다 보니 그 노자도 우리 집을 방문한 것 같다. 내 마음의 손님까지 다녀가니 정말 분주한 하루였다. 그 어떤 조화인가?(2009.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