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하나가 부러졌다. 왼쪽 위 끝 어금니가 반쪽으로 갈라졌다. 그것도 모르고 이빨이 흔들리는 줄만 알았다. 치과에서 흔들리는 이를 뺐다. 빠진 이를 보니 끔직하다. 길이가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될 만큼 길다. 내 몸을 위해 수십 년 일을 해왔는데...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내 몸에서 한 부분이 사라지는 거다. 이제 다시는 되살릴 수 없는 몸의 한 부분. 흙으로 돌아간다.
젊은 시절, 이념을 앞세워 몸을 혹사한 대가를 치르는가. 아니면 나이 들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몸의 현상인가. 아무래도 젊은 시절의 술과 담배 그리고 무절제한 식생활이 큰 원인이리라.
남은 이빨이라도 잘 간수해야할 텐데. 아득하다. 이빨과 잇몸을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일 테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제대로 아는 것. 이빨을 돌보는 데 들이는 노력은 먹는 데 기울이는 노력에 견주면 너무 적다. 먹는 데 30분이라면 이빨 닦는 데는 3분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요리 책은 자주 보지만 치과 관련 책은 아플 때나 뒤적인다.
찬찬히 살피고 배우고 익히고 싶다. 이럴 때 떠오르는 게 그림이다. 책을 펴고, 인터넷을 뒤져 치아 구조를 찾았다. 다양한 그림과 설명. 샘플이 될만한 그림을 앞에 두고 찬찬히 그려본다. 아주 크게, 본래 이빨에 한 10배쯤은 크게.
그리면서 이름, 구조 그리고 역할을 배운다. 이빨의 맨 위가 법량질. 남자 어금니는 씹는 힘이 평균 60키로그램이 넘는단다. 법량질은 부서지기 쉽다. 그 아래가 상아질. 법량질을 지지하며 탄력성을 준다. 자세히 보면 아주 미세한 구멍이 있단다. 그리고 우리가 잇몸이라 부르는 건 치은이라 한다. 잇몸은 그야말로 이를 둘러싸고 있는 이의 몸체다. 잇몸에 병이 생기면 이빨은 보호막이 제구실을 못하니 쉽게 썩어버린다.
이외에도 어려운 전문 용어가 많다. 치주인대, 치수, 치수강, 치조골...선을 그리고 색칠을 하면서 어려운 용어를 입으로 되새김질. 그 하나하나 아주 소중한 조직이다. 치수강은 치아 한 가운데, 신경과 핏줄로 채워져 있다. 아주 예민한 곳. 이 곳이 손상되면 신경치료를 받게 되고, 그 결과는 영양이 공급되지 못하니 부실하게 되고, 신경이 끊어지니 감각도 사라진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빨은 한결 쉽게 부서지게 되리라. 치주 인대 역시 꼭 알아두어야 부분. 이와 치조골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한다.
이렇게 이빨의 구조를 하나하나 그리고 익히면서 든 생각은 나이다. 보통 이빨은 나이 40이 넘으면서부터 노화가 시작된단다. 그러니 씹는 힘도 적어지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수록 힘껏 씹어서는 안 된다. 그림을 그리면서 구조를 익혀보니 그 자체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법량질은 약화되고, 치주인대의 탄력성은 줄어들 테고, 이빨에 전달되는 영양도 아무래도 적게 마련이다. 이제는 마음대로 씹는 게 아니라 이빨대로 씹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거나 이를 가는 건 절대 금물이란다. 이를 가는 건 150키로그램 넘는 힘이 들어간다. 이빨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다.
이렇게 이를 악물거나 이빨을 가는 건 스트레스와 관련이 많다. 스트레스는 또 다른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긴장-침 분비가 적다-세균 활동이 활발-충치 증가로 나타난단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나 사람 관계에 대해 좀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늘 이렇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다시 한번 다짐을 해 본다. 배움의 깊이는 끝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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