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그린 내 얼굴 그림에 크게 만족을 했다. 그 다음은 무얼 그릴까.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식구 누구를 그려볼까. 내 그림 실력이 부족한 지 흔쾌히 모델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가 그림 모임에서 채연(9)이가 모델을 한다고 하기에 채연이를 그렸다. 채연이는 그림을 그리기가 싫어 모델을 선택했단다. 그러니 진득하니 앉아있기가 어렵다.
아이가 자꾸 움직인다. 아이에게 오래 참으라고 하는 거는 한계가 있다. 짧은 시간에 그림을 그렸다. 내 그림은 영 아니다. 나는 구도 잡는 것조차 제대로 못하고 끝났다. 여러 사람 가운데 채연이 엄마가 그나마 아이 분위기를 살려냈다. 그림 실력보다 잘 아는 사람이, 애정이 많은 사람이 더 잘 그린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나는 아이가 자꾸 움직이기에 사진을 찍어서 그림을 그렸다. 생각처럼 잘 안 된다. 집에 돌아와 시간을 가지고 다시 그렸다. 차분하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오늘은 눈발이 간간히 날리는 날. 식구들은 도서관에 간다고 집을 나선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집에 남았다.
채연이 모습을 종이로 인쇄한 다음 그리기 시작. 연필로 비율을 맞추어가며 그린다고 그렸지만 영 분위기가 아니다. 아홉 살 어린이가 아니라 사춘기 소녀처럼 되었다. 무엇이 잘못일까. 이리저리 따져보아도 잘 모르겠다.
참 난감하다. 대상이 바로 앞에 있는 데도 비슷하게 그려내지 못하다니...절망감 비슷한 생각이 스친다. 신문 만평을 보면 똑같이 그리지 않고도 그게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던데. 사람만의 분위기가 중요하겠지? 채연이만의 특징이 무얼까. 이리저리 궁리를 해 보아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더 이상 안 되겠다. 마지막이다 싶어 다시 연필로 비례를 더듬어 보니 턱이 너무 긴 게 아닌가. 일 센티 가까이. 그만큼을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그리자, 한결 분위기가 살아난다. 얼굴에 작은 선 하나, 조그마한 비례 하나에도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진다.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사춘기 소녀 대신 아홉 살 정도 아이가 내 앞에 서있다. 덩달아 나도 젊어지는 듯. 이 당시 아이 표정은 모델이 하기 싫어 몸을 비트니까, 어른들이 조금만 참으라고 하자, 살짝 눈웃음을 짓는 그런 모습이다.
내가 그릴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시계를 보니 그 사이 두 시간이 흘렀다. 그림은 시간을 잡아먹는 하마다. 좀 있다가 탱이가 돌아오자 내 그림에 대한 감수와 조언을 부탁했다.
“잘 그렸어요. 아홉 살 어린이네요. 음, 콧잔등에 역광이 부족하고, 또 아랫입술이 너무 올라갔네요. 콧구멍이 있는 곳은 굳이 선을 안 그리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아요. 그리고 왼쪽 목선이 없는데 살려주시고... ”
탱이는 이제 확실히 내 선생이 되었다. 무엇이 잘못인지를 잡아준다. 그림을 조금 더 손을 보았다. 점점 그림에 빨려들고 채연이가 좋다. 이제는 눈을 감아도 아이 모습이 또렷이 떠오른다. 채연이는 왼쪽 눈매가 참 곱다. 얼굴선은 곱고 둥글어 귀엽다. 위아래 입술도 적당하다. 콧등은 조금 큰 편. 머릿결이 참 고운데 내 그림에서는 이를 살리지 못했다. 그리면서 새롭게 안 건 두 콧구멍 크기도 차이가 많다는 거다. 사람마다 자세히 얼굴을 보면 정확하게 대칭인 얼굴은 없단다.
사람을 그리면서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 참 놀랍고 신기하다. 선 하나에도 표정과 분위기가 달라지는 그림. 그만큼 우리네 일상에서 우리가 짓는 표정 하나하나에도 많은 느낌을 주고받겠지. 밝은 얼굴, 좋은 분위기로 삶을 살아간다는 게 정말 소중하지 싶다. 당분간 이 그림을 책상 앞에 걸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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