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씨앗에게 배우는 것들(초록마을 39호)

모두 빛 2007. 12. 11. 06:38
 

 

<밥 한 그릇에 들어있는 쌀알수는?>

 

올 가을걷이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는 10대 청소년들과 함께 했다. 도시에서 온 아이들과 같이 벼도 베고, 들깨도 털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이랑 벼를 베다가 쉴 참에 뜬금없는 질문을 해보았다.

“애들아, 밥 한 그릇에 들어있는 쌀알수가 얼마 정도겠니?”

한참을 갸우뚱하더니 아이들마다 대답이 천차만별이다.

“글쎄요. 100알”

“저는 160알”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고, 부모가 해 주는 밥을 먹기만 하던 아이들이 제대로 답을 할 리가 없다. 물론 나 역시도 농사를 짓기 전에는 꿈에서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다. 그러다가 해마다 모를 내고, 벼를 베며, 나락을 거두는 과정을 거치면서 낟알 하나하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낟알을 다시 보는 가장 큰 갈림길은 아무래도 씨앗을 갈무리할 때다. 곡식을 거둘 때 씨앗으로 쓸 거리들은 따로 챙긴다. 이때 어떤 낟알은 우리가 먹는 밥이 되고, 어떤 낟알은 이 다음해 씨앗으로 남는다. 사람 손끝 하나에 따라 달라지는 씨앗의 운명!

 

씨앗이 음식이 되지 않고 다시 심어진다면 이 씨앗은 다시 많은 자식을 퍼뜨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씨앗 한 알이 얼마나 많은 자식을 낳는가가 궁금할 수밖에. 알고 보니 씨앗마다 아주 다르다. 마늘은 한 알을 심으면 보통 여섯 개 정도 낟알이 달린다. 볍씨는 한 알을 심으면 날씨와 땅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600알 내외. 그럼, 아주 작은 참깨는? 이 곡식은 일일이 세기가 어려울 정도다. 꼬투리를 가지고 대충 셈을 해보면 수천 알을 넘어 수만 알에 이른다.

 

이런 호기심은 나중에 밥에 든 밥알 수로 넘어갔다. 밥 한 술 떠, 알갱이를 헤아려보았다. 밥알이 서로 엉켜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밥을 하기 전에 쌀알로 헤아려보았다. 쌀로 밥을 하면 양이 두 배쯤 늘어난다. 그렇게 해서 얻은 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2000알에서 3000알쯤 된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이 추측한 답과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물론 벼를 베는 자세도 달라지고…….벼베기를 마치고 먹는 밥상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꿀맛이 된다.


<씨앗이 갖는 생명본성>

 

농사 지어 큰돈 벌기는 어렵지만 돈으로 셈할 수없는 마음의 양식만은 푸짐하다. 씨앗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해보자. 씨앗은 알수록 신비한 그 무엇이다. 씨앗에게서 생명력과 자기 자식을 다시 남기고자하는 자연스러운 본성을 여러 군데서 발견하고 확인했다.

 

대부분의 씨앗은 휴면기간을 가진다. 씨앗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곧장 싹이 나는 게 아니다. 가을에 거둔 곡식은 대부분 이듬해 봄까지 잠을 잔다. 땅콩을 보기로 들자면 이를 캐지 않고 그냥 두면 이듬해 봄에 씨앗이 스스로 발아하여 꼬투리를 뚫고 싹을 내민다. 그런데 땅콩을 캐다 보니 휴면기간을 갖지 않고 곧바로 싹이 나는 게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앞뒤를 살펴보니 땅콩 가운데 벌레가 먹거나 하여 씨앗이 조금이라도 훼손된 것들이다. 그렇게 해서 땅 속에서 많이 자란 땅콩은 어느새 떡잎이 벌어질 정도다. 휴면기간이라고 씨앗은 결코 한가하게 잠자지 않는다. 추운 겨울이 오면 설사 얼어 죽을지언정 당대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씨앗에는 씨눈과 씨젖이란 게 있다. 씨눈에서 싹이 트면, 씨젖이 어미젖이 되어 싹이 자라게 된다. 그런데 씨눈까지 파먹은 거는 싹이 날 수는 없다. 하지만 씨눈이 온전하고 씨젖만 먹은 것들은 다 싹을 내미는 거다. 이렇게 씨앗은 경이롭다.

 

그런데 씨앗을 손수 갈무리 하지 않고 종묘상에서 사서 심으면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종묘상에서 파는 씨앗은 보통 F1이라 한다. 이 F1에서 키운 작물은 수량도 많이 나고 모양도 가지런하지만 이 씨앗을 받아 F2를 심으면 아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수량도 적고, 모양도 들쑥날쑥하다. 심지어 발아조차 안 되는 씨앗도 있다. 이럴 때면 농사와 먹을거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람 씨앗이 되자면>

 

그 어떤 곡식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 배를 불리기 위한 욕심만으로 농사를 짓고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생산자든 소비자든 씨앗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함께 고민해야할 것 같다. 씨앗이 다시 자기 씨앗을 잘 맺게 해주는 일이란 길게 보면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곡식에게 얻은 깨달음을 우리네 삶에 적용해본다. 자식 키우는 이야기도 농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이들 교육을 ‘자식 농사’라고도 하지 않는가. 부모 씨앗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다시 사람 씨앗이 된다.

 

요즘 아이들은 나이가 차도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도 늘고 있다. 또한 아이를 갖고 싶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불임부부도 의외로 많다 한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곡식 씨앗을 갈무리하면서 느낀 나로서는 먹을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하루 세 끼만으로는 우리 몸과 마음이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오랜 세월 조금씩 달라지리라 믿는다. 생명 본성이 잘 살아있는 먹을거리가 사람도 살리게 마련이다. 앞으로는 아이들을 사람 씨앗으로 잘 키우는 게 부모가 할 도리가 아닐까 싶다. 제 때 결혼을 하고, 제 때 아이를 낳으며,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는 그런 사람 씨앗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