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

모두 빛 2008. 1. 7. 21:27
 

 

얼마 전, 남쪽 보성에 사는 한내네 식구들이 왔다. 한내는 예전에 ‘우리 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 운동’을 할 때 탱이랑 만난 사이. 탱이보다 한 살 적은 열아홉 살이다. 소중한 인연이고 쉽게 잊을 수 없는 관계다. 남동생 한울이는 열일곱. 오랜만에 보니 한울이는 변성기를 완전히 지나, 웃는 웃음이 ‘허허허’다.

 

한내와 한울이도 중학교부터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한내네 식구가 탄 차가 우리 집 앞에 도착. 마중을 나가니 차에서 하나 둘 내린다. 먼저 운전석 오른쪽에서 한내 아버지. 나는 속으로 생각을 했다. ‘한내 어머니가 운전을 했구나.’

 

근데 한내 어머니는 운전석 뒤에서 내리지 않는가. 곧이어 한울이가 내린다. 마지막으로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한내였다.

“우와! 한내가 운전을 했구나! 너 면허 있어?”

“예. 얼마 전에 땄어요.”

 

한내가 면허 딴 이야기를 들으니 재미있다. 운전면허는 만으로 18살 이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한내는 만 18세 되는 생일날 도로주행을 했단다. 보통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운전면허를 따고 싶어도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기에 면허시험을 미룬다. 그런 점에서 한내는 배우고 싶은 걸 미루지 않는다. 그것도 자기 생일날 처음으로 차를 몰수 있다니…….이거야말로 나이에 따른 성장의 기쁨이 아닐까?

 

운전을 오래 가르친 사람들 이야기에 따르면 운전은 젊어서 배워야 빨리 잘 배운단다. 같은 사람이라면 젊을 때가 두려움이 적고, 운동 신경이 좋으며, 호기심으로 배우게 되니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내 아내는 시골로 내려와 마흔 중반에 면허를 땄다. 그 당시 엄청 많이 망설이고 고민하며 땄다. 그러나 탱이는 지난해 봄 아주 쉽게 한번에 면허를 땄다.

 

운전을 잘 하는 게 자랑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건 삶을 살아가는 기술을 익히는 게 두려움이냐 설렘이냐의 차이가 아닐까. 한내가 면허 딴 이야기를 할 때는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될 정도다.

 

운전면허에는 삶의 다양한 모습이 들어있다. 길 위에 관계라 할까. 기계를 다룰 줄 알아야 하고, 길을 알아야 하며, 교통 법규가 몸에 배야한다. 나 하나만 운전을 잘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방향을 달리는 사람 사이 관계를 풀어야 하며,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에 대한 방어운전까지도 어느 정도 익혀야 한다. 

 

어른이 된 다음 이런 관계들을 익히자면 쉽지가 않다. 운전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라는 아이들은 집중하는 힘이 좋다. 또한 해야 하는 운전이 아닌 하고 싶은 운전이다. 얼핏 보면 이런 관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힘들이 하나씩 쌓여가면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찼으니 어른이 되어야하는 건 고통이다. 반대로 자라는 만큼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 마음은 지극히 자연스런 성장 과정이 아닌가.  

 

한울이의 ‘어른 연습’도 재미있다. 한울이는 얼마 전 돈벌이를 해 보았단다. 집수리 일을 보름 정도 했단다. 한울이 아버지가 묻는다.

“한울이가 일당 얼마 받았을 것 같아요?”

“3만원!”

“5만원!”

 

우리 식구 눈이 점점 둥그레지는 데도 한내내 식구는 웃기만 한다. 우리가 답을 못 맞히니 직접 이야기를 한다.

“7만 5천원!”

 

여기 마을을 보기로 들자면 농사일이라면 남자는 일당이 5만원, 여자는 3만원이다. 집짓기는 일에 따라 다르지만 이건 정말 파격이 아닌가. 처음에 한울이가 일을 시작할 때는 자라는 청소년이라 5만원에 하기로 하고 일을 했단다. 근데 한울이는 자신이 청소년 신분이기를 거절, 어른과 똑같이 먹고 자고 일을 했다. 한울이 일하는 모습에 감동을 하여 대목수가 어른 일당을 처 주었단다.

 

무슨 일이든 일을 해본 사람은 안다. 단순히 일만 열심히 한다고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요령이 있고, 힘과 끈기가 있어야하며, 일머리가 있어야 한다. 나 역시 학교 밖의 아이들과 여러 번 일을 해보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일을 쳐내는 부분보다 새롭게 일거리를 더 만드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단순한 일이라면 그런대로 일이 되지만 조금만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면 아이들에게 맡기는 거 자체가 망설여진다. 한울이는 그동안 부모 따라 이러저런 일을 많이 해 보았기에 다른 어른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셈이다.

 

대신에 한울이는 일 끝나고 한동안 몸살을 단단히 알았단다. 내 생각이라면 일당 5만원만 받고 여유 있게 일을 했으면 좋으련만…….어른 몫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 마음이 짠하게 전해온다.

 

이렇게 싱싱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든 어른 몫을 하고 싶어 한다. 또한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만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걸 싫다거나 두렵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성장이 기쁨이란 걸 잃어버리면서 자라는 아이들이 진정으로 배우는 건 무얼까. 자칫 두려움을 학습하는 건 아닐까. 눈치 교육을 오래 많이 받을수록 자신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나이와 덩치만 어른이지 어른 노릇을 못하는 어른이 얼마나 많나. 어른 연습을 착실히 하는 한내와 한울이가 새삼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