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나물산나물 쑥 취 냉이/책 소개

질병 판매학, 건강한 사람에게도 약을 파는 무서운 세상

모두 빛 2007. 9. 14. 21:38

나는 책을 읽을 때 머리글을 먼저 읽은 다음 내용이 좋다 싶으면 바로 마무리글을 읽는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핵심이 뭔지가 먼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어찌하다 보니 머리글을 읽고 한참동안 본문을 읽어갔다. 그 이유는 내가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머리글에 이런 말이 있다.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를 이끄는 CEO인 개스덴의 꿈이란다.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약을 만드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한참 헷갈렸다. 약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나 필요한 게 아닌가. 그런데 조금 더 글을 읽다 보면 그 의도를 금방 알게 된다. 환자들에게만 약을 팔아서는 돈벌이가 적다는 거다. 일반 사람들에게도 약을 판다면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바로 여기에 CEO의 고민이 있었던 것이고, 오늘날 그의 꿈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화한다.

가장 단적으로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가 질병으로 둔갑으로 한다. 나이가 들면서 뼈 골밀도가 낮아지는 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게 건강 강박증과 결합되면서 두려움이 되고, 급기야는 광고 마케팅과 결합되면서 질병으로 둔갑한다.

폐경도 그렇다. 여성이 나이가 들면 당연히 생리를 안 하는 거다. 그와 관련된 호르몬도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일부 여성단체에서는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폐경이라는 말 대신 완경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자식을 낳고 키울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완성한 거다. 폐경이라는 말에는 그 자체에 쓸모없음이라는 뜻이 담긴 게 아닌가.

저자가 분석한 질병 판매는 여러 종류다. 높은 콜레스테롤, 고혈압, 과민성대장군, 우울증, 주의력결핍장애...질병은 다 다르지만 이를 판매하고자 하는 다국적 기업의 판매 전략을 비슷비슷했다.

그렇다면 저자가 바라는 결론은 뭘까. 이제 본문을 뛰어넘어 에필로그를 보니 분명한 부분이 있다. 제약회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의학 정보를 장려하자는 거다. 그리고 그러한 독립을 보다 공고히 하는 뜻에서 새로운 주체를 세워야 한다고 본다. 즉 건강이니 질병이니 하는 그 경계를 재단하고 심사하는 일을 대부분 의사들이 하는 데 이 주체를 보다 확대하자는 거다.

그렇게 하자면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할 것이다. 저자의 결론에 공감하면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나머지를 읽었다. 

책 한 권에 모든 걸 담아낼 수는 없지만 아쉬움도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주체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한 장 정도라도 심도 깊게 다루었으면 좋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이 책을 보고 난 뒤, 제약회사 약 광고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거다. 질병을 팔다니...건강한 사람도 약을 먹어야하다니... 한편으로는 재미있고 또 한편으로는 무서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