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나물산나물 쑥 취 냉이/책 소개

아이들은 자연이다

모두 빛 2007. 4. 2. 13:40



아이와 함께 크는 교육 이야기
<아이들은 자연이다>
장영란·김광화 글, 박대성 사진 / 돌베개 / 292쪽 / 9,800원 / 2006

병아리 여러 마리가 어미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경이롭다. 미처 먹이를 챙기지 못한 녀석들이 어미를 바라보는 눈빛. 성장하고자 하는 갈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 않은가. 병아리는 내게 잠자던 생명 본성을 일깨웠다. 우리 아이들도 자라는 생명이다. 병아리도 잘 하는데 우리 아이들이라고 못 하란 법이 있겠나. 공부를 하는 이유도 다 잘 살자고 하는 것 아닌가. 잘 살자면 잘 배워야 하리라. 잘 배운다는 건 뭔가. 바로 생명 본성에 충실한 배움이 아닐까. 맑은 눈빛을 촉촉이 적시는 배움. 싱싱한 배움. 아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면서도 절실한 배움. 거기서 새로 시작하자. ― 본문 중에서

21세기 대한민국 학교는 <말죽거리 잔혹사>가 그린 70년대 말의 학교에서 얼마나 진보했을까. 올봄, 대한민국 중·고등학생들의 최대 화두가 된 두발자유화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유독 학교만 수십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21세기 학생들이 다니는 19세기 학교. 2006년에도 여전한 이 기괴한 학교 풍경을 접하노라면 공교육 개혁의 희망을 언제까지 품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공교육 개혁만이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일까? 아무리 공교육을 강화하고 개혁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야를 넓혀 새로운 상상력을 호흡하는 것이 아닐까.
때마침 교육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진지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바로 대안학교와 같이 공교육 안팎에서 다른 교육을 모색하는 이들, 작은 학교, 홈스쿨링 등 기존 교육 체계 밖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외침이다. 교육의 다양성을 인정하면 공교육의 근간이 흔들릴 것처럼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제도 밖에서 대안을 찾는 사람들은 “자기 삶을 바꾸지 않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삶과 교육 문제를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틀 안의 상상력과 틀 밖의 상상력이 만날 때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믿는다. 이 책은 바로 틀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틀 밖의 사람들이 던지는 첫번째 말걸기가 될 것이다.

1. 학교를 떠난 무주 산골 아이들, 집에서 보낸 6년의 기록

장영란·김광화 부부가 딸(88년생)과 아들(95년생)을 데리고 서울을 떠난 지 벌써 10년. 1996년 ‘이민 가는 기분’으로 귀농을 결심한 이들은, 뜻 맞는 젊은이들과 산청에서 간디공동체 생활을 시작했고 2년 후 산청을 떠나 무주에 뿌리를 내려 자급자족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부모를 따라 함께 서울을 떠나온 딸 정현(탱이)이와 아들 규현(상상이)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2001년 봄, 탱이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그리고 아들 상상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본인들의 뜻에 따라 내린 결정이었다.
식구가 함께 공부하고 일하는 지금 하루하루는 평화롭고 자유롭다. 그러나 이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이 저절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주변의 걱정과 학교와의 마찰을 극복하기 위해 고심했던 나날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부모로서 아이들이 잘 커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책임감이 컸다. 부부가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 준 것은 다름 아닌 아이들. 집에서 지낸 지 올해로 6년째 접어든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보고, 배움의 호기심이 생기면 공부하고, 손수 필요한 걸 만들고, 가족과 이웃을 돌볼 줄 아는 전인적인 인격체로 자라나고 있다.
살아온 과정이 달랐고 아이들 키우는 마음도 달랐지만 부부는 생명의 본성을 살리는 교육이 무엇인지, 나아가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이 무엇인지 돌아보고자 함께 이 책을 썼다. 무주 산골 네 식구가 집에서 함께 공부하고 일하며 보낸 6년의 기록인 이 책은, 아이들 스스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성장보고서이기도 하다.

2. 생명 본성을 되찾아주면 배움은 저절로

뱃속에서부터 영어 교육을 시키고, 서너 살이 되기도 전에 적성을 계발해 ‘떡잎부터 다르게’ 키우려는 시대, 온갖 교육정보를 섭렵해 자식들 명문대학 보내는 게 부모들에게 모범답안으로 제시되는 시대. 더구나 학교를 떠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이 시대에 이들이 내린 결정은, 명문대학으로 가는 새로운 교육 방법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들이 말하는 ‘다른 교육’은 학교를 집으로 옮겨서 부모가 정한 커리큘럼대로 운영하는 홈스쿨링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공교육 현장에서 어쩌면 아주 오래된 농담처럼 취급될지도 모르는 ‘자신을 찾고, 전인全人으로 살아가기’위해서였다.
이들 부부, 거창한 교육 철학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칠 만큼 두루 지식을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중산층의 선택일 뿐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을 만큼 돈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저자들이 믿은 것은, 병아리가 본성적으로 자기 모이를 찾듯, 모든 생명은 자기 삶을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 아이들도 자라는 생명이자 자연이기에 생명 본성을 되찾아주면 자신의 빛깔을 내고 살아나가리라는 믿음이었다.
그러했기에 네 식구의 일상은 일반적인 홈스쿨링 가정과 사뭇 달랐다. 몇 년간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까지 기다려주었고, 기다리는 동안 부모 스스로를 돌아보고 먼저 자신을 치유해갔다. 이제는 산골 생활에 자리가 잡히자 아이들도 부모도 몸이 햇살을 느끼면 그제야 일어나 각자 자기대로 무언가를 하고, 그러다가 함께 밥 먹고 다시 자기 하고픈 대로 시간을 보낸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함께 돌려보고 밥상머리에서 책 이야기를 하고, 부모와 자식이 허물없이 지내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아이에게서 어른이 배우고, 아이와 어른이 친구가 된다.

3. 이 책의 내용

서장 ‘자연스런 부모 노릇’에서는 산골에서 배운 자연스런 부모 역할이 무엇인지, 그 깨달음을 담았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 부모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물음은 ‘아이들과 함께 배울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느냐’일 것이다. 부모 역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픈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는 장이다.
1부 ‘자연으로 한 발 한 발’과 2부 ‘학교에서 벗어나’는 귀농해서 학교를 그만두기까지의 이야기다.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과 두려움 때문에 한동안 집에서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경험, 아이가 늦잠을 자거나 놀면 불안했던 날들에 대한 고백, 그리고 ‘집 학교’마저 놓아버리게 된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3부 ‘굴레에서 놓여나기’에는 부모 자신의 억압과 굴레,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이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4부 ‘아이들이 걱정스러울 때’에서는 아이들이 치유의 시간을 갖고 변화해가는 모습을 담았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부모가 가르치지 않아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어가고 있는 탱이의 이야기는 집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사회성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할 것이다.
5, 6, 7부는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를 극복하고 ‘지금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살고자 하는 네 식구의 모습을 ‘지식 공부’·‘몸 공부’·‘일’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다. 따로 커리큘럼을 두고 공부를 시키지 않지만 스스로 배움을 찾아가고, 자신의 몸이 주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놀듯이 즐겁게 일하면서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유쾌하고 흐뭇하게 그려진다.

4. 무주 산골에서 놀듯이 공부하고 일하며 사는 네 식구

장영란 남편을 따라 귀농을 결심하기까지 도시생활에 잘 적응하고 살았던 서울토박이였다. 1970년대 후반 대학을 다녔고 남편과 결혼 후 노동운동에 몸담았다. 1980년대 말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활동을 했고 1996년 산청으로 내려가 간디공동체를 꾸리기 전까지 사회단체, 여성단체에서 교육 관련 활동을 했다. 어설펐던 음식솜씨도 산골 생활이 10년을 넘기면서 나름대로 손맛을 얻게 되었고, 하루라도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실 정도로 농사꾼이 다 되었다. 도시에 살면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린 지금 ‘엄마’로서 더 행복하다.

김광화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대학 다닐 때부터 서울생활을 해서, 이십 년 가까이 흙과 거리가 먼 도시인으로 살았다. 대학 때부터 ‘인간다운 삶’과 ‘정의로운 사회’를 고민했고 그 신념을 실천하면서 살았지만 결국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되찾기 위해 귀농을 결심했다. 지독한 음치였지만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를 부를 때만은 노래에 도취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귀농은 필연이었나 보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잃어버렸던 아버지 자리를 되찾고 있다. 농사일뿐만 아니라 아들과 수다 떨기, 몸 공부, 그리고 요리하기가 중요한 일상이다.

탱이 김정현. 1988년생. 2001년 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잠시 다닌 뒤 학교생활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얼마 동안 잠을 자고 또 자고,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가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에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차츰 소통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지낸 3년째부터 자기가 먹을 걸 손수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열심히 자기 밭을 일구었다. 그러고는 전국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친구를 사귀고, 수벽치기라는 전통 무예, 또 춤 테라피를 배워 와 식구들에게 전수해주었다. 작년에는 자기가 살 집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 몇 군데 잡지에 글을 연재하면서 돈을 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필요한 걸 스스로 해나가는 탱이는 이미 부모님들에겐 성인이나 다름없다.

상상이 김규현. 1995년생. 누나를 따라 잠시 어린이집에 다녔고, 2001년 초등학교에 안 다니기로 결정한 후부터 집에서 놀듯이 공부하고, 놀듯이 일하고 있다. 초등학교를 모범생으로 다닌 누나와 달리 처음부터 집에서 지낸 상상이가 공부하고 일하고 노는 모습은 늘 새롭다.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초밥을 만들고 『식객』을 보고 막걸리를 빚는 아이. 바둑에 관심을 가지면 한동안 바둑에 푹 빠져서 바둑 책만 보고, 마음이 내키면 한달음에 수학책 한 권을 다 풀지만, 내키지 않으면 절대 보지 않는다. 심심해하다가 스스로 놀거리를 만들어 놀고, 몸이 약한 걸 깨닫고 운동을 시작했다. 몸이 약할 때는 사뭇 방어적이던 상상이, 몸이 튼튼해지니 식구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지 마음씀씀이가 달라졌다. 어린 병아리가 본능적으로 모이를 찾듯이, 상상이가 무얼 배워나가는 과정은 생명이 지닌 배움의 본성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5. 부모와 아이들을 함께 살리는 길
이 책에서 말하는 부모와 아이들을 함께 살리는 길, 몇 가지를 살펴보자.

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자
아침마다 장을 시원하게 비우고 학교에 가기 어디 쉽나. ‘내 몸이 바로 자연’인데, 몸을 수단으로 생각하고 함부로 부리니,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몸이 엉망이다.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하면 몸이 달라지고, 몸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여유로워진다.

② 쫓기는 전문가보다 행복한 전인이 좋다
전문가가 되라고 요구하는 시대지만 반쪽짜리 전문가가 되기보다 ‘자기에게 필요한 걸 두루 자급할 수 있는 전인’이 되기를 바란다. 전인은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서 풍요로운 영감을 얻고 필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리라.

③ 아이에게도 혼자 지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혼자’ 또래집단이 아니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말한다. 아이에게 중요한 관계는 먼저 부모와의 관계. 부모와 관계가 원만하고 자기 중심을 잘 잡고 있다면 사회성은 걱정없다.

④ 앞장서 끌지 말고 아이가 원하면 그때
‘아이는 또 다른 영혼이다. 그러니 내 안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머리로 다짐을 해도 현실에서는 자기 안에 가두려 하는 것이 부모들의 문제. 아이들에게 좋다는 온갖 정보를 놓치지 않고 찾고 아이에게 온갖 경험을 시켜주고자 하는 부모, 먼저 끌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원할 때까지 기다리자.

⑤ 잔소리는 아이를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부모의 큰소리마저 아이를 어둡게 만드는데 하물며 잔소리야 말해 뭣하리. 아이들이 자랄수록 아이 권리도 커지고 아이도 똑같은 인격체다. 심부름을 시킬 때도 정중하게 부탁하자.

⑥ 부부가 싸우면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아이들은 부모 싸움을 힘들어한다. 식구가 함께 지내는 시간을 즐기고, 소중하게 생각하면 부부 역시 부부 싸움을 덜하게 되리라. 부모가 사이좋게 지내면 아이들도 편안해한다.

⑦ 아이들도 하고 싶은 일을 할 권리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일이란 돈벌이로서의 일이 아니라 생명으로서의 일이다. 일은 배움과 마찬가지로 아이의 성장에 필요하다.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을 실현해나간다. 아이도 마찬가지리라.

⑧ 자기 손으로 밥 해 먹는 기쁨을 누리자
배가 고프면 스스로 요리를 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자신과 남을 위한 요리를 하면서 자기 존중감을 키워간다.


6. 이 책의 저자들

■ 장영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남
1977년 서강대학교 문과계열 입학
1980년 민주화운동 관련 무기 정학
1982년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
1996년 서울을 떠나 간디공동체를 구성
1997년 간디청소년학교 교사
1998년 무주로 귀농, 논밭을 마련해 자급농사.

도서출판 들녘 『자연달력 제철밥상』
현재 월간 『개똥이네놀이터』 ‘자연달력’ 연재
월간 『생활과 성서』 자연밥상 연재
홈페이지 www.nat-cal.net 한글이름 ‘자연달력’ 운영
이메일 odong174@hanmail.net

■ 김광화
195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남
1977년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1980년 민주화운동 관련 제적 뒤 강제 징집
1984년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졸
청소년노동자를 위한 부천실업고등학교 교사를 함
1996년 서울을 떠나 간디공동체를 꾸림.
1998년 무주로 귀농. 논밭을 마련해 자급농사.

<정농회> 회원
어린이신문 『굴렁쇠』에 산골에서 쓰는 농사일기 연재.
월간 『신동아』 「몸 공부 마음 이야기」 연재.
이메일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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