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노래 그림 중독, 삶의 예술

그림은 관심이자 사랑

모두 빛 2007. 9. 14. 05:05
 

 

우리 집 햇곡식을 그려보고 싶다. 우리 생명을 살려주는 곡식들. 가까이에 무엇이 있나? 포도가 막 익어간다. 호두도 올해 처음으로 달려 몇 개 거두었다. 늦복숭아도 땅콩도 있다. 너무 많으면 그리기도 복잡하고 어려울 테니 이 정도.

 

접시에 놓고 구도를 잡아본다. 삼각형. 책에서 본 대로 약간 변화를 준다. 보통 정물화는 너무 정적이다. 조금이나마 움직임이 살아있게 포도 봉지를 벗긴 상태로 그려보자.  

 

포도 자리 잡고 복숭아 호두 땅콩 차례로 자리를 앉힌다. 조금 자세히 포도부터, 겹치는 부분을 잘 보고 앞부분부터 그린다. 전체와 부분을 함께 보는 훈련이 필요하구나.

 

이제 그림 공부 시작이지만 느낌은 많다. 뭔가를 그린다는 거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포도에 관심이 있고, 포도를 좋아하니까 그린다. 그리고 싶어서 그리니까 그리면서 대상이 더 좋아진다. 자세히 보고 되고, 더 잘 알게 되고, 더 잘 알면 더 좋아하게 되고, 더 사랑하는 감정이 생긴다.

 

나이 들어 그림을 그려서인지 그림 실력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받는 느낌은 점점 강렬하다. 사진이 순간의 예술이라면 그림은 그 순간들이 죽 이어지는 예술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몰입 되는 게 한 시간 정도. 그 다음부터는 집중도가 떨어진다. 포도 봉지에서는 대충 그리다가 말았다. 종이 봉지라는 느낌이 덜 하다.

 

나로서는 그림을 완성하는 거보다 그림을 즐기는 게 더 소중하다. 그림을 그리다가 미치거나, 폐인이 된 사람, 눈이 먼 화가들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면서까지 그림을 그려야 했을까. 자기 삶을 사랑하고 대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겠나.

 

그림을 그림으로써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넓어진다는 것.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대상이 많아진다는 거. 무엇보다 그림을 통해 내 눈이 더 맑아지고 깊이지기를 소망한다. 

 

아내가 그린 만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