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우리 집에 음악이 넘친다. 얼마 전에 디지털 피아노를 마련하고 나서 피아노를 자주 친다. 맨 처음은 탱이가 시작했다. 올 봄 탱이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더니 피아노는 다시 배우겠다는 거다. 탱이는 서울 살 때 (유치원 다닐 때 피아노학원을 두세 달 다녔나?) 잠깐 피아노를 배우다가 말았다. 선생이 진도를 무리하게 나가면서 아이는 흥미가 잃어버렸다.
그리고는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가 다시 배우고 싶다니, 그 말을 듣고 나는 긴가민가했다. 자연에 살면서 자연의 소리도 많은 데 굳이 사람이 만든 음악을 배울 필요가 있나. 이번에 탱이가 배우겠다는 뜻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자신이 주도하면서 배워갈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거.
아내와 상의를 하더니 싼 값으로 디지털 피아노를 장만했다. 그리고는 연일 피아노를 연습한다. 캠프를 다녀와서는 다른 아이들한테 배우기도 하고 자극도 받아 또 열심이다. 그러더니 동네 노래 모임에서 한 두곡씩 반주를 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누나가 그렇게 하니 상상이도 차츰 피아노에 관심을 갖는다. 하나 둘 누나 따라 해본다. 그러더니 금세 캐논 변주곡이랑 고양이 춤을 연주를 한다. 곁에서 보니 참 신기하다. 어찌 그리 열 손가락이 음반 위를 왔다 갔다 하는 지가. 아이들이 아침을 먹기 전에 치는 피아노 소리가 가장 듣기가 좋다.
얼마 전부터는 아내마저 피아노를 배운다고 달라붙는다. 캐논 변주곡을 둥당거리더니 조금씩 한다. 가끔 중간에 리듬이 엉기기도 하지만 내가 보았을 때는 놀랄만한 발전이다. 그리고는 에델바이스도 친다.
시간이 갈수록 나만 처진 듯하다. 마치 음악 세계에서 고립되어 있는 듯, 나 자신이 초라하다. 불쌍한 내 영혼이여. 나도 할 수 있을까. 자랄 때 학교 선생님들이 풍금을 두들기면 그 신기한 악기는 나와는 영영 거리가 멀다고만 느꼈다. 피아노는 고사하고 아버지가 잘 치시던 기타마저 먼발치에서 보고만 지났다.
지금은 후회가 된다. 어릴 때 뭐든 악기 하나쯤 배워두면 어딜 가나 조금은 당당할 텐데. 자기표현까지는 안 되더라도 가끔 노래 하나쯤 연주할 줄 안다면 얼마나 근사한가.
우리 식구끼리 자주 한 이야기가 있다. ‘한 곡 피아니스트’. 보통 피아니스트 하면 거의 전문가 수준을 말한다. 하지만 한 곡만 계속 연습을 하면 그 곡에 대해서만은 피아니스트라고 우겨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테다.
초보가 처음 시작하는 데는 한 곡 피아니스트가 아주 매력적이다. 이제 나이 들어 전문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닐 테다. 다만 피아노가 어찌 연주되는지를 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발전이 되지 않겠나.
오늘 처음으로 에델바이스를 배운다. “누구, 나 좀 가르쳐줄 사람?” 그러자 아내가 선뜻 나서준다.
“처음에는 우선 오른 손으로만 숫자를 따라 처 봐요. 여기 악보대로 ” ‘에’는 음이 미이고, 첫째 손가락. 그 다음 ‘델’은 음이 솔이고 둘째, ‘바이스’는 훌쩍 건너 음이 레이고, 다섯째 손가락이다. 몇 번 음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어렵다, 어려워. 오른손만 하는 데도 이리 어려운데 아이들은 열 손가락을 장난하듯이 치니 믿기가 어렵다.
내가 손수 해보지 않을 때는 전혀 감이 안 오던 피아노 건반. 연습을 한번이라도 해 보니 내가 음악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다. 나도 열 손가락을 다 움직이는 날이 올까. 한곡 피아니스트조차 무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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