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자신과 식구 모두가 자랑스러운 아이들

모두 빛 2007. 5. 24. 06:27




 

제주도에 사는 경이네를 다녀왔다. 탱이는 빠지고 아내와 상상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경이는 열 살 여자아이다. 아버지 졸졸졸, 어머니 때리아, 언니 란(12), 오빠 성학(15)이랑 한 식구다. 셋 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그렇게 한 지가 일년 남짓. 초기에는 이 집도 고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너무도 달라진 것 같다.  

인터넷으로만 만나다가 이 집 식구들과 이틀을 함께 지내며 느낀 게 참 많다. 가장 먼저 느낀 거라면 아이들이 갖는 안정감이다. 고요하면서도 물 흐르듯 서로가 잘 어울리는 느낌. 밥상을 차린다면 란이와 경이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나르고 성학이는 수저를 놓는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누구 눈치 보는 것도 아니다.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

밥을 먹을 때도 조용한 듯 하면서도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는 분위기. 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어울리는 것도 무척 자연스럽다. 축구를 한다면 성학이와 제 아버지랑 둘이서도 하고, 상상이랑도 어울리며 한다. 또 이를 지켜보던 란이도 하고 싶어 하니까 중간에 편을 다시 갈라 한다. 경이는 끼지 않고 구경을 한다.

우리 식구는 성학이네서 이틀 동안 너무 대접을 잘 받았다. 용눈이 오름에도 오르고, 성학이네가 새로이 터전을 옮기는 선홀도 둘러보았다. 여럿이 같이 움직이다 보면 힘이 약한 사람이 쉽게 표가 난다. 체력은 나와 경이가 비슷했다. 다리가 아프다거나 졸리거나 하는 순간이 거의 같은 때 왔다. 심지어 경이가 하품을 하면 곧바로 내 입에서도 하품이 나오곤 했다. 다만 피로에 대한 회복은 경이가 나랑 견줄 수 없이 빨랐고, 나는 일정을 뒤쫓아 가는 것 만해도 버거웠다. 그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일행 가운데 내가 가장 막내가 되었다. ㅋㅋㅋ

오후에는 바닷가를 갔다. 고둥을 잡아 죽을 끓여먹자고. 제주도에서는 고둥을 ‘보말’이라고 한다. 바닷가 바위는 용암이 굳은 것들이다. 나는 이 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졸졸졸은 자신이 자라온 무대이자, 삶의 한 부분. 바닷물 속에 자맥질을 하면서 보말도 줍고, 성게도 잡고, 미역도 뜯는다. 아직 바닷물에 들어가기는 조금 추운 날씨. 그런데도 거의 두 시간이나 바다 속을 들락거리며 쉼 없이 먹을거리를 건져내 온다.

아버지가 하던 걸 지켜보던 성학이도 조금 지나자 물에 들어간다. 아버지 따라 해 보지만 쉽지 않다. 물에 들어갔다가 금세 올라온다. 란이가 어떠냐고 묻자
“보말을 주우로 들어가잖아? 들어가면 춥다는 느낌밖에 없어. 3초도 안 되어 다시 올라오게 돼”
그리고는 추워서 벌벌 떤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큰 수건으로 몸을 감싼 다음 바위에 몸을 말린다. 그야말로 입술이 파랗다. 몸을 말리면서도 제 아버지가 자맥질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아버지가 얼마나 용감하고도 자랑스러울까! 성학이는 아버지가 하는 일상의 일도 대부분 함께 한다. 그 일이란 보일러를 고치거나 수도를 놓는 설비일. 성학이는 일을 하면 돈을 받는다. 그 돈으로 옷도 사고, 이발도 하고 심지어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들을 자기가 번 돈으로 다 해결한다. 인터넷에서 배우는 검정고시 공부는 제법 비싼 데도 부모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 돈으로 해결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성학이가 어른이란 느낌이 든다.  
“아빠랑 일을 같이 해 보니까요, 돈 달라는 소리를 함부로 못하겠어요. 제가 벌어서 하는 게 더 좋아요”  

아버지에 대한 존재감이 뚜렷한 아이들. 란이는 말로는 표현을 잘 안 하지만 몸짓으로 보여준다. 아이 눈빛에서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걸 느낄 수 있다. 한 번은 해변에서 제 아버지를 업고 싶다 했다. 그러더니 아버지를 엎고 한 오 미터쯤 앞으로 갔다. 60키로도 더 되는 아버지를 12살 여자아이가 거뜬히 업은 거다. 란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딱히 키가 크거나 몸짓이 더 좋은 것도 아니다. 보통 정도다. 그럼에도 란이에게 그런 힘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을 따져보자면 집중과 사랑이 아닐까 싶다. 꼭 업어 주고 싶다는 마음. 사랑한다는 건 집중하는 걸까?

이 집 식구 가운데 자신과 식구들이 자랑스럽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이는 막내 경이. 몸짓, 말, 표정 그 모두에서도 자랑스러움이 묻어난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제 아버지가 보말이랑 성게를 한 움큼 잡아서 바위로 나오자, 경이가 큰 소리로 외친다.
“엄마! 아빠가 성게 큰 거 해 와!”
그리고는 오빠 쪽으로 고개를 돌려
“오빠! 성게!”

제 아버지가 잡아온 성게. 이걸 보는 것만으로 짜릿하고 감동이다. 사진에서는 얼굴 옆모습만 나왔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가. 누군가에게 소리쳐 알려주는 게 자신의 일인 것 마냥 경이 목소리가 파도 소리를 삼킬 정도다. 경이 외침을 듣고 아버지 곁으로 언니와 오빠가 몰려온다. 졸졸졸은 성게 하나를 꺼내 반으로 가른다. 안에 노란 속살이 있다. 먹으라고 아이들 준다. 내게도 한쪽을 준다. 아이들은 맛을 보고 또 성게 모양이랑 움직임을 관찰한다. 다시 아버지는 물질하러 들어가자 성학이가 경이에게
“보말, 물에 담가 놔”
“왜?”
“죽을지 모르잖아!”
“어차피 우리가 먹으면 죽잖아?”
“그래도. 그 뭐라고 해야 하나?... 먹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게 좋은 거지”
오빠 말을 이해했는지 경이는 보말을 물에 담근다.

거의 두 시간 가량 물질을 하던 졸졸졸이 밖으로 나오면서
“춥다, 수건 좀?”
란이가 제 아버지에게 수건을 주려고 하자 경이가 나선다.
“내가 할래!”
그러더니 언니에게 수건을 빼앗듯이 받아 쥐고는 제 아버지에게 간다. 바위가 울퉁불퉁 이니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누구 하나 잔소리가 없다. 언니 오빠는 그냥 지켜본다. 경이는 빨리 가지 못하는 대신 먼저 말로서 아버지에게 힘을 준다.
“아빠, 거기 가만히 엎드려 있어. 내가 춥지 않게 해 줄게”

드디어 바위에 엎드린 아버지 등짝 위에 수건을 덮어준다. 내 콧등이 시큰해진다. 경이는 이제 안심이 되는지 혼자서 물가를 살피다가 뭔가를 했나 보다. 소리친다.
“오빠, 내가 미역했어!”
미역을 손에 잡고 만세 부르듯 번쩍 들며 자랑스럽게 외치는 경이. 아이들은 미역을 그 자리에서 맛을 본다. 우거적우거적.
“맛이 어때?”
“짜요. 떫기도 하고”

그런데도 잘만 먹는다. 짜고 떫은 데도 잘만 먹다니…….감추어진 맛이라도 있다는 건가. 나도 아이들한테 전염이 되었는지 미역이 당긴다. 맛을 보니 쌉싸롬하다. 감추어진 맛이란 뿌듯함일까, 자연스러움일까?

어머니 때리아는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키우고 싶어 한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한 줄기 햇살 같다. 억지로 뭔가를 시키려고 하지 않고,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햇살은 누리는 사람 몫일 테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더 많은 걸 배우고, 더 많은 걸 익히는 것 같다.

짜여진 틀 속에서는 쉽게 배울 수 없는 것들. 따스함, 평온함, 자연스러움, 사랑, 더불어 사는 삶……. 자신이 자랑스럽고, 식구 모두를 서로 자랑스러워하는 경이네. 나도 경이네를 알게 된 게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