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농부학교에서 진행하는 예비 귀농자 30여분들과 만남이 있었다. 이들은 일박 이일 일정으로 무주를 거쳐 함양 녹색대학, 산청 간디학교를 둘러보는 전문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대부분 귀농에 대한 이론 교육은 어느 정도 되어 현장을 보고 느끼고 싶어 한다.
무주는 우리 마을로 왔다. 먼저 우리 이웃인 허병섭, 이정진 부부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소는 허선생네 마루. 허선생은 농사를 지으며 녹색대학을 끌어가는 유명한 분이다. 두 분 이야기가 끝나고 그 다음이 내 차례. 오신 분들 표정을 보니 안정감이 느껴진다. 이제 귀농은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사람들이 이제는 충분히 준비를 하면서 시골살이에 접근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강의 중심보다는 대화 식으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모두들 좋다고 했다.
간단히 내 소개가 끝나자 먼저 질문이 들어온다. 시골에 살고자 할 때 궁금한 게 어디 한 둘이랴. “시골 내려오면서 돈을 얼마 들였나요?” “그 질문에는 바로 답하기가 어렵네요. 그렇게 물어보시는 분은 귀농자금으로 얼마를 예상하시나요?” “저는 돈 가진 거 별로 없어요”
말을 그렇게 하시지만 표정이나 연배를 보니 여유가 있으신 분이다. 자신의 경제력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이럴 때는 우리 식구 경험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이웃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고 본다. 단돈 20만원 가지고 내려와 머슴 살다가 자수성가한 이웃, 단돈 백만 원을 들여 집을 지은 이웃 이야기를 해 드렸다. 돈은 선택이라고. 자신이 가진 돈의 범위 내에서 고민은 이루어지는 게 아니겠느냐고. 그리고는 우리 식구 경험도 솔직히 이야기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사람들이 집에 대해 궁금한 게 참 많았다. 너도 나도 집에 대해 물어본다. 흙집이 정말 건강에 좋으냐. 돈을 적게 들이고 짓는 법은 뭐냐. 짧은 시간에 길게 이야기 하기는 어렵고 집이란 수평과 수직만 볼 줄 알면 쉽다고 즉석에서 간단한 실습을 해 보였다.
그리고 집짓기를 배우는 법에는 크게 네 가지쯤 있다고 했다. 하나는 교육비를 들여 배우는 법. 여기 저기 알아보면 전문가 과정이 많다. 그 다음은 일을 하면서 돈을 내지도 받지도 않고 배우는 법. 품앗이나 공동체로 집을 짓는 곳들이다. 세번째는 돈을 벌면서 배우는 법도 있다. 이것 역시 일손이 부족한 곳에 인연을 찾아보면 제법 많다. 물론 그 돈은 큰 돈은 안 된다. 기술이 없을 때는 단순한 일들을 맡기기 때문이다. 나무껍질을 깎는다든가 흙을 채우는 일들을 하면서 틈틈이 집짓기 전체 기술을 익히면 된다.
마지막은 내가 해 본 방식으로 자기 힘껏 해보면 된다. 관련 책을 구해 읽고, 우선 작은 집을 먼저 지어보면 좋다. 개집이나 닭장 또는 뒷간이나 창고 같은 걸 손수 짓는 건 어렵지 않다. 대신 대충 짓는 게 아니라 규모는 아주 작지만 사람이 살 집이라고 생각하고 똑같은 정성으로 지어보면 물리가 자연스럽게 트인다. 이렇게 집짓기를 배우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떤 방식을 택하는가 하는 건 본인 선택이 된다. 집이란 남과 견줄 거 없이 자신이 처한 조건에 맞추면 되지 않겠나.
그 다음 질문은 아이들 문제. “저희 부부는 시골로 오기로 합의를 했는데 아이가 반대하는 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이가 몇 학년인가요?” “육학년이에요” “그 정도 아이라면 이미 자기 세계와 영역이 있다고 봅니다. 친구 관계도 그렇고 자기 질서가 있잖아요? 이를 존중하면서 아이랑 대화를 충분히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아이가 시골 생활을 체험할 수 있게 캠프 같은 걸 이용해보는 것도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캠프는 어떻게 알아보나요?” “요즘은 시골을 배경을 하는 캠프들이 참 많아요. 계절에 따른 체험학교도 있고, 팜스테이 식으로 하는 곳도 많고, 산골학교나 산촌유학을 운영하는 곳도 요즘은 많이 생기고 있거든요. 이런 것도 여의치 않다면 아이랑 저희 집을 한 번 오시든가요”
또 한 분은 “부부가 간디학교를 함께 세우고는 왜 그만 두었느나요?” “대안 학교가 필요한 아이들도 있기는 해요, 그렇지만 막상 해 보니까 대안 교육이랍시고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고, 건물 짓고, 회의한다고 밤늦고.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부모를 떨어지고.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싶더라고요. 그 보다는 부모가 먼저 잘 사는 게 자녀교육의 시작이 아닐까 해서 그곳을 떠나온 거지요”
또 다른 분은 가족만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게 이기주의가 아닌가. 시골에서도 공동체로 뭔가 뜻있는 일을 할 수는 없겠느냐고 했다. 나로서는 처음부터 그게 쉽지는 않았지만 자리잡아가면서 충분히 그런 일들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질문이 잠시 뜸 하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했다. 오신 분들 연령층이 워낙 다양하니 집짓기나 자녀교육은 주제가 제한적이다. 그래서 공통된 주제다 싶어 내게 얼핏 떠오른 내용은 부부 연애. 이 주제는 요즘 내가 <웰빙 라이프>지에 연재하는 내용들이다. 시골 살면서 부부 사이 싸움도 많이 했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많으니 싸움보다는 연애를 하는 쪽으로 관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시골은 부부가 연애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밤낮없이 같이 지내고, 논밭에서 일하면서도 얼마든지 연애가 가능하고, 고사리 꺾거나 버섯을 따면서도 연애가 된다.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기분을 내면서 연애를 할 수 있다. 남여가 다르다는 게 싸움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되고, 서로가 설레고 끌려야 하는 게 아니냐. 뭐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듣는 분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다들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 자신이 재미있으면 듣는 분들도 재미있게 마련이다.(여전한 나의 자뻑^^)
그래서인지 우리 집 전화와 홈페이지를 묻는 분들이 많았다. 마침 이것도 기회다 싶다. “제가 그럴 줄 알고, 이 기회에 장사를 좀 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너스레를 떨면서 내가 최근에 낸 시집 <<꽃 한 다발 밥 한 그릇>>을 꺼내들었다. 여기에 우리 집 홈페이지랑 전화번호가 있다고. 이 시집은 서점에서는 팔지 않고 홈피회원들과 연줄이 닿는 사람들에게만 파는 거라고. 그리고 여기서 ‘꽃 한 다발’은 무슨 꽃인지 알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참석한 사람들 사이 이런 저런 말들이 오고가다가 결국 한 분이 맞추었다. 벼꽃이라고. 내가 보충 설명을 해드렸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은 벼꽃이 한 다발 피었다 지는 거라고.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참 신기하다. 요즘은 내 얼굴이 많이 두꺼워진 것이다. 예전에는 남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숙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책을 들고 마치 외판 사원처럼 외치는 내 모습이 참 낯설고 신기하다. 어찌 말이 그리도 술술 나오는 지? 영업이면서도 ‘막무가내 식 영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소중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탈바꿈하고 있으니 ㅋㅋㅋ
농부학교를 이끄는 맹주형님이 “모두 다 사실 거지요?”그러자 부인들 몇 분이 앞으로 나선다. “부부가 함께 온 사람은 한 권씩만 해요”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고 우리 아래채를 구경한다고 우르르 우리 집으로 왔다. 집을 둘러보며 벽돌집과 심벽집 그리고 귀틀집의 차이를 설명해주었다. 한 분은 시골에 빈집을 사 두었는데 이를 리모델링해야 한다면서 짬짬이 내게 자문을 요청했다. 그 사이 간사는 시집 판매를 다 해주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 서로 고맙다고 인사를 나누었다. 30여분과 바람처럼 만나고, 바람처럼 헤어졌다. 강사료도 두둑이 받고, 시집도 왕창 팔고, 고민들도 함께 나누어 주어 저희 집에 오신 분들이 참으로 고맙다. 새삼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이웃이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시골 어디에 사시든 자리를 잘 잡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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