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저요, 저요, 저 주세요”

모두 빛 2007. 4. 23. 19:43



  우리 마을은 젊은이들이 많으니 아이들도 많다. 이런저런 일로 어른들이 모이면 아이들도 함께 하니 곧잘 잔치 분위기가 된다. 우리 마을에 오래도록 함께 살았던 한 이웃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가 며칠 전 마을을 들렀다. 저 멀리 진도에 사는 그 이웃이 오면서 굴을 잔뜩 가져왔다. 그이가 예전에 살던 집에는 지금 늘이네가 산다. 늘이네 집 마당에서 굴이나 구워먹자고 가까이 지내던 이웃들을 불렀다. 마당에 불을 지피는데 어른들 따라 아이들도 하나둘 모여든다.

  정인이와 별이는 일곱 살. 둘이서 내가 하는 걸 지켜보더니 불장난 놀이를 한다. 모닥불에 기다란 부지깽이를 밀어넣어 불을 붙인다. 꺼내어 막대기를 빙빙 돌린다. 불은 꺼지지만 부지깽이 끝에 숯덩이는 붉은 빛을 내며 돌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부지깽이 끝에서 솟아난는 하얀 연기는 마치 리본으로 하는 리듬 체조를 떠올리게 한다.

모닥불이 제대로 타자 그 위에 굴을 구울 철망을 얹는다. 이 철망 위에 굴을 얹어 굽는다. 그러고 나자 우리집 아이 규현(13)이가 오고 그 뒤를 이어 현빈(11). 채연(9) 정수(9) 늘이(5)도 모닥불에 둘러앉는다.

생굴은 껍질이 단단한데다가 딱 붙어있기에 이를 벌려 안에 있는 굴을 꺼내는 게 쉽지 않다. 바닷가 사람들은 조세라는 도구를 쓴다. 조세는 나무막대에 쇠꼬챙이를 박은 것으로 호미와 비슷하다. 그러나 굴을 뜨겁게 하면 김이 솔솔 나면서 껍질이 조금 벌어진다. 그럼 속에 잘 구어진 굴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

아이들은 한마디로 신난다. 아이들이 많아서도 좋고, 평소에 안 먹어보던 굴을 먹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여기에다가 모닥불과 굴 굽기. 그 모두가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은 많은 데 굴을 굽는 속도는 느리다. 평소에 바닷가에서 살면서 이런 음식을 자주 먹는다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여기 어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다 초보자 수준이다. 굽는 것도 서툴지만 어느 게 잘 구워진 건지를 아는 것조차 서툴다. 그러니 굴 하나 까서 입에 넣는 과정이 길고도 길다.

모닥불에 둘러앉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굴을 까는 데 열심이다. 아홉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은 나름대로 제법 굴을 굽고 또 까서 먹는다. 그 보다 조금 더 이런 아이들은 가끔 벌어진 굴을 찾아 먹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경쟁에서 밀린다. 형들 오빠들 따라 한다고 하지만 처질 수밖에 없다.

가장 막내인 늘이는 오빠와 언니들 틈에 어림도 없다. 그러니 어른들한테 다가온다. 어른들 가운데 누구 한 사람이 굴을 깠다 싶으면 잽싸게 그리로 간다.
“나, 굴~”

내 입에 넣으려던 굴인데 아이가 달라고 하니 안 줄 수 있나? 하나를 주면 아예 그 다음에는 자리를 떠지도 않고 계속 달라고 한다. 사실 생굴은 바닷물을 머금고 있어 굴만 먹기에는 조금 짠 편이다. 그래도 늘이는 잘 먹는다.

문제는 굴을 굽고 까는 속도가 느린 데 있다. 늘이가 내 어깨에 착 기대어 달라고 할 때는 너무 예쁘다. 그런데 한 두 번이 아니고 아예 떨어지질 않는다. 내 먹성은 사실 아이 못지않다 늘이 엄마는 저녁 준비한다고 바쁘다.
“늘이야, 아저씨도 좀 먹자”

내가 ‘쪼잔한’ 어른이라는 걸 알고 늘이는 다른 어른 곁으로 간다. 아무래도 진도에서 굴을 가져온 이웃이 인기가 좋다. 그이는 바닷가에 사니 굴을 누구보다 잘 깐다. 평소에도 자주 먹으니 여기와서까지 많이 먹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그이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한다. 굴까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선택권이 주어진다.
“굴 먹을 사람?”
그러자 아이들이 벌Ep처럼 나선다.
“저요, 저요, 저 주세요”

손을 드는 아이, 손을 내미는 아이, 아예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아이...
아이들이 나서는 모습을 보니 꼭 제비새끼를 보는 것 같다. 부모 제비가 먹이를 물고 둥지에 앉으면 새끼제비들이 하나 같이 목을 죽 뽑고 입을 한꼍 벌린다. 자기 입에 넣어 달라고. 그럼 부모 제비는 이리저리 보다가 어느 새끼 입에다가 먹이를 넣어준다. 그럼 그 새끼는 한 입에 꿀꺽이다.

아이들에게 굴을 까서 넘기는 어른은 한 사람. 먹는 아이들은 일곱이다. 한 삼십분을 그리 해도 아이들 아우성은 잦아들지 않는다. 나는 이제 먹고 싶은 만큼 먹었다. 나도 진도 이웃을 따라 해 본다. 굴을 깐 다음
“굴 먹을 사람?”
“저요, 저요, 저 주세요”

누굴 주어야 하나? 덩치 크고 목소리 굵은 현빈이가 눈에 띈다. 다음 굴에도 아이들은 똑같이 나선다. 이번에는 현빈이 말고 누굴 주어야 하나? 문득 제비 부모가 떠오른다. 새끼들을 어찌하여 골고루 먹일까? 자신이 이전에 준 놈들을 기억하고 하는 걸까. 아니면 그때그때 표정이나 움직임을 읽고는 선택을 할까?

나는 아무래도 기억에 의존한다. 좀 전에 현빈이니 이번에는 그 곁에 별이. 또 그 다음은 채연이. 내가 아이들을 나누어 준다는 걸 알았는지 내 곁은 떠났던 늘이가 다시 내게로 온다.  

이렇게 글을 쓰고 다시 보니 이 곳 아이들이 먹을 거에 마치 굶주린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요즘 세상은 먹을 게 넘치는 게 문제이지 부족한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기 아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조금 달리 보고 싶다.

한마디로 싱싱하다는 거다. 비가 오면 곡식들이 싱그러워지듯, 아침 햇살을 받으면 곡식들이 춤을 추듯. 사실 굴을 구우면서 껍데기를 까먹는 걸로는 배를 채우기는 어렵다. 한 시간 동안 열심히 해봤자 숟가락으로 치면 두어 술 정도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조금 있다가 늘이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서 밥 한 그릇씩을 뚝딱한다.  

새로운 걸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 아이들 덕에 나도 싱그러워진다. 이 다음에 굴을 잘 까는 사람이 행여나 “굴 먹을 사람?”이라고 소리친다면 이제 나는 어른이라는 체면 접어두고 소리치고 싶다.

“저요, 저요, 저 주세요” ㅋㅋㅋㅋ

(초록마을 기고문 제35호 http://www.hanifoo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