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흙피리 청년 한태주와 공감(?)

모두 빛 2007. 3. 21. 16:46






‘흙피리 소년’으로 잘 알려진 태주네를 찾았다. 태주네가 사는 곳이 남원 산내면이라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승용차로 한 시간 정도.
그러니까 우리 식구에게 봄바람이 불었나 보다. 사실 태주네랑은 그동안 서로 인사를 주고 받은 적이 없다. 소문으로야 많이 들었고, 우리랑 가끔 보는 청개구리라는 분이 태주에 대한 칭찬을 많이 했다. 그이는 태주 이야기를 <민들레> 잡지에 쓰기도 했다. 청개구리 역시 지금은 태주네 가까이 산다.

그런저런 인연으로 태주네를 갔다. 첫 만남이라 어색했다. 태주는 기타 연습한다고 잠깐 얼굴 비춰 인사하고는 하던 걸 계속 한다. 태주 아버지 한치영님은 음반 작업 막바지란다. 마침 우리 식구가 그 집에 도착한 때가 점심 때라 안주인은 인사가 끝나자 곧 점심을 차린다. 우리 식구는 어색함도 달랠겸 몸도 좀 움직이고자 마당에 있는 농구대에서 농구를 했다. 아내와 내가 한편 탱이와 상상이가 한 편. 그렇게 농구 한 게임이 끝나자 점심을 먹잔다.

집을 둘러보니 태주네는 집을 잘 지었다. 그동안 오랜 세월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이 곳에 집을 지으며 정착을 했다. 집에서 보니 앞으로는 저 멀리 지리산 반야봉이 보이고 집 뒤에는 산이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  

태주네 집은 나무와 흙으로 지은 심벽집이다. 한 눈에 봐도 목수가 대단한 분이라는 느낄 정도로 맵시가 두드러진 집이다. 집이 커지는 않지만 옹골찬 그런 집이다. 집이 두 채다. 하나는 살림집. 그 위로 자그마한 작업실이 따로 있다.

점심을 먹고 태주가 연습하는 방에 들어가 이야기도 조금 나누고 태주가 연습하는 것도 보았다. 태주는 이제 소년이 아니다. 스물한 살 청년이다. 태주는 얼마 전 인도 여행을 다녀왔단다. 혼자 배낭여행으로 넉 달 정도를 지냈다. 그 곳에서 친구도 많이 사귀고 영어에도 귀가 열리고. 인도에서 지낸 시간을 뭐라고 한 마디로 하기는 어렵지만 느낌이 많았던 여행이란다.  

태주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기 빛깔이 분명하고, 주제가 있는 여행이라면 그 나름대로 뜻이 많을 것 같다. 얼핏 봐도 태주는 젊은데다가 음악을 잘 하니 어디 가도 잘 어울리고,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을 것 같다. 내가 직접 태주를 만나보니 사람들 앞에 그리 나서거나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는 편이 아니다. 그냥 수더분한 청년. 한 마디 물으면 가볍게 웃음 지으며 몇 마디 말을 하는 정도다. 탱이와는 가볍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탱이는 자기가 가져간 만화책 ‘토끼밥상’을 태주에게 건네준다.  

다시 작업실로 다 모여 이야기 좀 하다가 오후 세시쯤이 되자 태주 아버지가 식구들에게
“나무할 시간인데, 오늘 손님도 왔으니 건너뛸까?”
그러자 내가 나무를 같이 하자고 했다. 꼭 말을 많이 하는 것만이 사귀는 건 아닐 테다. 상상이는 집에서 태주가 보던 만화보고 나머지 여섯 사람은 우르르 집 옆에 가서 땔감을 끌어내리는 일을 한 시간쯤 했다. 그리고 나니 한치영님이 이제 그만하잖다. 태주는 도끼질을 조금 하더니 혼자 농구를 한다. 그 걸 보고 우리 식구는 우르르 내려가 농구를 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태주와 탱이가 한편 나와 상상이가 한편. 태주는 건장한 청년이 되어 몸놀림이 엄청나다. 잘 훈련된 야생마처럼 날렵하다. 그러면서도 공이 오면 탱이에게 곧잘 기회를 주는 여유와 배려를 한다.

우리가 농구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던 태주네 부모와 아내. 태주가 내려와서 같이 하잖다. 그래서 태주 아버지와 아내 그리고 나. 이렇게 어른 한편 하고 아이들 한편해서 시합을 했다. 그런데 한치영님의 농구 실력도 아들 못지않아 우리가 가까스로 이겼다.

이렇게 땔감하고 또 농구도 같이 하면서 태주네 식구들과 조금 친해졌다. 그렇지만 살아온 내력이 그 나름대로 깊이가 있으니 서로가 좀더 깊이 다가가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기도 하다. 태주네서는 우리 식구들이 자기네 집에서 자고 간다고 알고 있었다. 우리가 잘 방을 마련해 두었으니 편히 지내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내는 첫 만남에서 자고 가기는 그렇다고 정중하게 사양을 했다.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고 가겠다 했다. 다시 작업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치영님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자지 않고 그냥 돌아간다니 마음이 급하다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음악이론부터 연습하는 법들을 길게 설명했다. 조금 지루하기는 했지만 탱이는 열심히 듣는다.

우리가 태주네 온 건 서로 사귀어보자고 온 것인데 생각지도 않게 공부를 단단히 한다. 태주 아버지 한치영님은 혼자 음악을 오래도록 해온 내공이 있어 내가 배울 점 많다. 지금 내게 남아있는 기억은 잘 듣는 훈련 또는 자세다. 음악 하나를 듣더라도 집중해서 온전히 들어야 한다는 거다. 내가 노래를 잘 못하는 이유가 어쩌면 잘 듣지를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노래든 말이든 무엇보다 잘 듣는 노력과 훈련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음악은 말과는 또 다른 ‘받아들임’이지 싶다. 세상과 소통을 주로 언어로 해온 내게 음악이란 익숙하지 않다. 언어와는 달리 음악은 일단 느낌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시간이 많지 않아 한치영님 이야기가 잠깐 끊길 때 우리가 가져간 <아이들은 자연이다>를 건넸다. 우리 소개와 이야기는 이걸로 대신한다고 그리고 태주에게 물어보았다.
“태주 자신에게는 음악이 무언가?”
“자유로움을 주는 거라 봐요.” 자신이 음악을 하기에 자유로울 수 있고, 여행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고 했다. 좀더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해보았다.  
“음악이란 뭐라고 생각하니?”
“사람들과 공감하는 게 아닐까요?”

태주 말에 공감이 간다. 사람 사는 맛이란 사람 사이 공감을 넓혀가는 맛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게 노래든 그림이든 말이든 글이든. 나를 열어둘 때 세상은 참으로 넓고도 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