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는 우리 아이들 말고도 또 한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이름이 박현빈(11)와 채연(9)이 남매다. 현빈이는 학교를 조금 다니다 말았고, 채연이는 아예 학교를 거부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늘어나니 저희들끼리 자주 모여 논다. 그런데 노는 것도 좋지만 너무 논다. 아이들 가운데서도 현빈이가 가장 왕성한 힘을 가진 것 같다. 들과 산 그리고 계곡을 곧장 누비고 다닌다. 결국 두 집 어른들끼리 상의를 했다. 마냥 놀게 둘 수만은 없다고. 현빈이 엄마는 아이 교육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그래서 우선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몇 가지라도 아이들과 함께 해보자 했다. 현빈이 엄마가 읽기와 쓰기를, 현빈이 아빠가 노래를 맡기로 했다. 아내는 자연관찰 그리고 나는 아이들과 수다 떨기. 그런데 아내와 나는 아이들 교육에 큰 애정을 기울이지 못한다. 그럴 능력도 부족하고 이제는 그쪽으로 에너지가 잘 안 간다. 아이들을 앞장서 끌기보다 뒤에서 지켜보며 필요하다 싶은 게 있으면 조금씩 도와주는 정도. 이 모임에서도 기껏 한다는 게 현빈이네 부모가 하는 걸 지켜보며 함께 하는 정도다. 아이들을 앞에서 끌어간다는 건 대단한 에너지라 생각한다. 현빈이 부모님은 정말 열심이고 잘 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빠지지 않고 시간을 낸다. 젊다는 것도 이유일 수 있겠다. 이들 부부는 우리 부부보다 한참 젊다. 우리가 하는 노래 모임은 어른 아이 모두 함께 한다. 현빈 아빠가 노래 가사를 준비해오고 기타로 반주를 하며 노래를 끌어간다. 노래는 아이들도 도움이 되지만 어른들에게도 도움이 많이 된다. 아내와 나도 열심히 노래 모임에 참석해 노래를 부른다. 처음에는 현빈이가 노래모임을 싫어했다. 뭐든 자신이 흔쾌하지 않으면 잘 하지 않는 아이. 함께 노래하자고 둘러앉으면 몸을 비비꼬며 싫다는 내색을 하곤 했다. 그러나 동기 부여에 시간이 걸리지, 하기로 마음먹으면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아이다. 그렇게 두세 달쯤 지나면서 부쩍 아이들이 달라진다. 요즘은 모두가 열심이다. 아이들은 정말 잘 배우고 빨리 익힌다. 가장 더디고 서투른 사람이 바로 나다. 나는 노래가 너무 서툴다. 음정, 박자는 물론 노래 시작조차 반주를 맞추지 못한다. 타고난 음치라기보다 자라면서 음에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배운다. 그리고 늦게나마 이렇게 노래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걸 고맙고 기쁘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노래 모임은 시간이 갈수록 함께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현빈이네와 우리 집 식구를 다 하면 여덟이다. 두 집이 하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현빈이네 가까이 사는 정수(9)도 함께 하고 싶어 한다. 정수는 학교에 다닌다. 그래서 정수를 배려한다고 모임 시간을 늦추었다. 학교가 끝난 오후 세 시로. 정수에게는 동생 정인(7)이가 있다. 정수가 노래 모임에 오니 정인이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정인이는 노래를 함께 하기도 하고 아니면 저대로 놀기도 한다. 이렇게 모임을 하다보니 어느 새 열 사람이다. 그동안 노래 모임을 현빈이네 집에서 하다가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오는데 이번에는 더 늘었다. 그러니까 정인이 또래 별이와 별이 동생 늘이(5)도 왔다. 별이는 우리 집 가까이 산다. 자, 그럼 모두 몇 사람인가? 열둘이다. 늘이는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오빠 언니들 곁에 있는 걸로도 신이 난다. 이제 우리 집 거실이 꽉 찬다. 현빈이 아빠 기타 반주에 맞추어 ‘개구쟁이’를 배우고 부른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다가 가끔 장난도 치지만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다. 적당한 경쟁의식 같은 게 생기고 상승 에너지 같은 게 뚜렷이 느껴진다. 한 가지 노래를 세 번쯤 부르고 나자 “누가 혼자 부를 사람?” “저요”하며 채연이가 나선다. 그리고 다음은? “제가 할래요” 하며 현빈이가 부른다. 그 다음은 아이들이 남자대 여자로 편을 나누자고 한다. 그러면서 시합을 하잖다. 진 사람이 ‘쪼그려 뛰기’를 하자고 한다. 어디서 군대 식 훈련을 본 모양이다. 몇 번 할까를 놓고 한 참을 토론을 했다. 현빈이는 50번. 헉! 나는 겁이 난다. 그렇게 했다가는 나중에 종아리에 알이 박이는 거 아닐까. 아무래도 여자들한테 남자들이 질 텐데...현빈이를 달래고 설득하여 30번으로 뛰기를 하기로 하고 시합을 했다. 노래 분위기가 점점 과열된다. 결과는? 현빈 아빠가 무승부라 했다. 그러니까 아이들 아우성이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확실히 말해요. 누가 이겼어요?” 그러자 내가 나섰다. “솔직히 내가 봐도 남자들이 졌어. 여자들은 한 군데 틀렸는데 남자들은 세 곳 쯤 틀렸잖아!” 그랬더니 남자 녀석들이 군말 없이 어깨동무를 하고는 쪼그려 뛰기를 한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쪼그려 뛰기 열 번이 넘어가니 여자인 채연이도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뛴다. 승부는 승부대로 재미있지만 그렇게 쪼그리고 뛰는 것도 재미있나 보다. 나도 진 편인데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다. 스무 번이 넘어갈 때쯤 나도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뛰었다. 아이들이 모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가속도가 붙는다. 노래 부르기가 끝이 났는데도 다섯 살 늘이는 혼자 흥얼흥얼 한다. 어깨도 들썩이며 흥얼거린다. 그냥 기분이 좋은가 보다. 늘이를 보니 내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들판을 뛰어놀다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던 기억. 나는 현빈이네와 아이들 덕에 노래가 주는 신명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두루두루 고맙다. 갑자기 노래가 하나가 떠오른다.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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