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농사와 사는 이야기

살구에 대한 예의

모두 빛 2017. 6. 27. 21:16

 

 

요즘은 살구가 귀하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또는 집집마다 마당에 한 두 그루 심어 꽃도 보고 열매도 심심찮게 먹었는데 말이다.

 

근데 점점 밀려난다. 살구 맛이 요즘 유행하는 입맛과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은 웬만한 과일은 대부분 단맛을 중요하게 다룬다. 수박이나 참외 같이 본래 단맛이 나는 것들은 더 달게. 새콤한 딸기조차 단맛을 더 많이 내게끔 노력을 기울인다. 이렇게 과일은 우선 달아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그런 점에는 살구는? 신맛과 단맛이 뒤섞여 있는 데 그런 맛조차 그리 튀지 않는다. 때문에 과일 맛을 깊이 음미하면서 먹지 않는 한 밀려나는 과일이다. 하지만 나는 푸근하면서도 구수하다고 느낀다. 살구는 내게 숭늉 같은 과일이다.

 

근데 이 살구는 주인장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처음 심고 나서 10년쯤 과일이 서너 알 열리기 시작할 무렵, 나무를 옮겨야했다. 뿌리가 새로운 땅에서 몸살을 하길 다시 10. 올해 10알 남짓 다시 열렸다.

 

살구는 맛도 좋지만 과육을 씨앗으로부터 떼어내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과육 양쪽을 잡고 슬그머니 힘을 주면 과육이 씨앗으로부터 고스란히 떼어진다. 그러니까 과육의 상태가 적당하다는 말이다. 복숭아처럼 너무 무르지도 않고, 사과처럼 딱딱하지도 않고.

 

이렇게 살구를 맛나게 먹다보니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든다. 게다가 빠져나온 씨앗은 또 얼마나 예쁜가. 그냥 버릴 수가 없다. 땅에 잘 묻어 싹이 나게끔 해주고 싶다. 살구를 잘 먹은 값에 대한 예의라고 여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