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저, 진통이 시작되었어요. 이슬이 비치고요.”
처음 예정일은 이 달 말. 전날 젖을 돌게 했더니 조금 일찍 아기가 움직이는 거 같단다. 곁에서 전화를 듣는 내 가슴이 다 두근거린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물론 출산이란 얼마나 멀고도 험한 길인가. 청년들 대부분이 맨몸으로 일어서는 건 그나마 다행. 대부분 빚을 안고 사회로 출발해야 하는 현실.
그럼에도 딸과 사위는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결혼식을 올렸다. 친구네가 운영하는 폐교를 빌렸다. 하객들이 각자 먹을 도시락을 싸와, 포트럭 파티를 열었다. 일박이일로 식을 치렀지만 여기에 든 돈은 2백여만 원.
결혼 뒤, 시골에 내려와 사는 것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적게 벌고 소박하게 살려고 한다. 그러면서 일 년 정도를 준비를 한 다음 아기를 가졌다. 태명이 ‘우주’다. 사위가 물리학을 좋아해서 직접 그렇게 지었단다.
출산 역시 공부하고, 몸을 만들고, 먼저 출산한 선배들 경험담을 들으면서 준비해왔다. 집에서 낳겠다고. 다만 처음이니까 조산사의 도움을 받기로. 진통이 일분 단위로 오면 그때 조산사한테 연락을 하란다. 그러면서 중요한 부탁 한 가지.
“출산할 때 남편 이외는 되도록 사람이 없는 게 좋습니다. 친정엄마를 비롯해서 한 사람 더 있을 경우 출산 시간이 두 시간은 더 걸린다고 보면 됩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불안감이 산모와 아기를 더 긴장시키니 그런다고 한다.
아침에 시작된 진통은 저녁이 되면서 빨라지고 커졌다. 조산사가 도착하기 전, 밤 여덟 시쯤 아기가 나오기 시작. 그러다가 멈추었단다. 사위와 둘이서 씨름을 했을 딸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아픔과 불안감. 특히 불안감은 출산 진행을 멈춘단다.
그러다 조산사가 도착. 곁에서 능숙하게 도움을 주었다.
“힘을 빼는 게 정말 어려워요. 연습한다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멀리서 기도하는 것뿐. 아기를 낳았다는 연락이 오면 달려가기로 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자는 둥 마는 둥하다가 새벽 한 시에 깨니 문자가 와있다.
“잘 낳고 첫 젖까지 먹이고 이제 연락해요ㅎ 천천히 오세요!”
나도 아내도 더 이상 누워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아기를 낳고 뒤처리를 한 다음 연락을 한 거니까 밤 열시쯤 우주가 우리 곁으로 온 거다.
날이 밝기도 전에 이것저것 챙겨서 아기를 만나러 나섰다. 방안을 모두 천으로 가려 깜깜한 방. 작고 은은한 led촛불만이 사물을 분간하게 할뿐. 아기에겐 며칠 동안은 자궁 속처럼 어두운 게 좋다고. 딸은 한숨 잤는지 생각보다 더 건강하다. 말도 조근조근 잘 하고.
출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조산사 말씀 가운데 나누고픈 이야기.
“나라 전체로 아기는 줄어들지만 자연분만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자연분만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산원을 선호했는데 최근에 제가 받은 아기는 100% 가정분만이네요.”
예전에는 누구나 하던 가정분만이 이젠 특별한 경험이 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삶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는 세상. 그렇기에 의사한테 무작정 기대기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열어가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리라.
“우주야, 내가 할아버지가 될 수 있게 해주어 고마워.
집에서 태어난 네가 자랑스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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