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때문에 곶감 비상이다. 하룻밤 사이 두 곳에서 연락을 받을 정도니.
어젯밤 김천 사는 이웃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곶감 이야기가 나왔다.
“여긴 곶감이 엉망이네요. 곰팡이가 피고 감이 물러서 흘러내리고. 걱정입니다.”
“그래요? 우리도 확인해봐야겠는데. 처마 아래 둔 곶감은 괜찮던데. 창고에 둔 것은 어떨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곶감을 둘러보았다. 처마 아래는 날마다 몇 번씩 보는 거라 당연히 괜찮고, 창고도 둘러본다. 슬쩍 보아서인지 문제가 없어보였다. 우리야 기껏 열 접(한 접은 100개) 정도, 많은 양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감을 매다는 것도 드문드문 해서인가?
그리고 나자 곧이어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용건은 역시 곶감 안부다.
“거기는 곶감이 괜찮나? 여기는 곰팡이가 피서 엉망이야.”
“안 그래도 아침에 둘러보니 괜찮던데요.”
“다행이네. 여기는 몇 백만 원도 더 하는 선풍기도 사서 돌리고 하는 데 안 된다네. 지금은 곶감 깎는 일도 다 중지된 상태고. 우리 집에 쓴나(조금) 깎아둔 감도 피었어.”
어머니랑 한참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곶감은 날씨가 아주 중요하다. 기온이 서늘하고 공기가 마르고 바람이 어느 정도 불어 그 공기가 잘 흘러야 한다.
근데 최근 날씨가 어땠나. 삼일을 이어서 여름 무더위에 가깝게 더웠던 데다가 그 뒤에는 비마져 와서 습하다. 이건 곰팡이가 피기에 딱 좋은 날씨. 이런 날은 바람조차 드물다. 게다가 곶감은 말라가면서 점점 당도가 높아지니 곰팡이가 자라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일수밖에.
사실 곶감이 제대로 되면 표면에 흰 가루가 드문드문 핀다. 이는 곶감이 마르면서 수분이 다 빠져나고 나면 당분이 겉으로 나와 결정을 이룬 거다. 이를 한방에서는 '시설(枾雪) 또는 시상(枾霜))'이라 하여 약으로 쓰기도 한다. 근데 한창 곶감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피는 푸른곰팡이는 건조 환경이 잘못되어 나타나는 거다. 지금처럼 늦가을인데도 덥고 습하고 바람이 없을 때.
이 곳은 김천이나 상주보다는 추운 곳이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 아침에 대충 본 곶감을 다시 살펴보았다. 꼼꼼하게 살폈더니 역시나 우리 집 감도 곰팡이가 피고 있는 거다. 창고 깊숙한 곳에 둔 감 일부는 제법 곰팡이가 심하다. 살짝 푸른빛이 돈다. 꼼꼼하게 살피니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것까지 합치면 거의 한 접(100개 단위) 가량 될 듯하다. 처마 아래 것도 다시 자세히 보니 몇 개는 곰팡이가 피고 있다. 어머니한테 괜찮다고 한 게 뻥이 되고 말았다. 얼굴이 뜨거워진다.
아침을 먹고는 아내와 둘이서 곶감 이동 작전을 펼쳤다. 그래봤자 창고 깊숙이 둔 곶감을 햇살이 잘 드는 곳간 앞으로 옮기는 정도다. 곶감을 줄에 매달 때는 그리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는 데 한꺼번에 열 몇 개씩 묶음으로 옮기자니 무겁기도 하거니와 자칫 중간 감이 떨어질 위험도 높아 조심조심. 다 옮기고 나서 이제 막 피는 곰팡이는 깨끗한 휴지로 살짝 닦기도 하고, 곰팡이가 심하다 싶은 몇 개는 겉껍질을 살짝 벗기기도 했다.
오늘도 하루 종일 흐리다가 가끔 빗방울마저 듣는다. 하늘이 무섭다는 걸 새삼 느낀다. 곰팡이는 주어진 환경을 그 어떤 생명보다 먼저 알고 살아난다. 어쩌면 만물의 영장은 곰팡이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균 같은 미생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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