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솟아나는 글쓰기

[스크랩] 이오덕 선생님이 그리워

모두 빛 2011. 8. 14. 13:03

(오는 8월 25일은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지 8주기입니다. 아래는 선생님을 기리며 쓴 추모 글입니다. 첨부 파일은 이오덕 공부마당 알림)


나는 글 쓰는 게 좋다. 마감에 시달릴 때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그냥 느낌이 올 때면 바로 메모를 하거나 글을 쓰는 편이다. 논밭에서 일하다가, 음식을 하다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쓰고 싶을 때 쓴다. 다 쓰고 나서 그런대로 괜찮다싶으면 인터넷 홈페이지에 바로 올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내가 이렇게 글쓰기를 좋아하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그 예전은 다름 아닌 시골 내려오기 전까지였고,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라고 해야겠다.

 

그러니까 서울 살았던 나는 90년대 초부터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왜 살아야하는지?’를. 괴롭고, 외롭고, 지쳐갔다. 더 이상 도시에서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절망한 상태. 그러다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마음이 있었다. 농사를 한번 지어보고 싶다고. 어린 시절 나를 키워준 흙과 자연이 서러울 만큼 그리웠다.

 

그때만 해도 귀농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 다들 떠나는 농촌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게 무척 두려웠다. 아마 95년도 초쯤이지 싶다. 그 두려움을 이겨보자고 아내와 함께 이오덕 선생님을 만났다. 과천 아파트로. 선생님은 긴 말씀 없이 두어 마디만 하셨다.

 

“도시에 희망이 있습니까? 두 분이 시골 내려가 살면 좋은 글 많이 쓸 겁니다.”

 

그 당시 우리 식구가 시골 가겠다는 걸 대부분 말렸는데 선생님은 새로운 길까지 보여주시는 거 아닌가. 이 때 만해도 내가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용기를 주는 말씀이라고만 여겼다.

 

근데 농사를 지어보니 내 안에 뭔가가 차곡차곡 쌓이는 거다. 점점 쌓여갔다. 이를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일기를 썼다. 일기장이 차곡차곡 쌓였다. 차차 혼자만 보는 글쓰기를 벗어나, 세상과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누가 내 글을 봐줄까. 

 

그 때 이오덕 선생님이 떠올라, 글 한편을 보냈다. 이 글을 선생님은 <한국글쓰기연구회> 회보에 실어주었고, 이 글을 본 어린이 신문 <굴렁쇠>에서 글을 써 달라 했다. 이런 인연으로 <굴렁쇠>에 자그마치 3년을 계속 쓰게 되었다. 농사 이야기를 쓰되, 감동의 순간을 잡아 쓰는 ‘시로 쓰는 농사일기’였다.

 

<굴렁쇠>는 아이들이 보는 신문이라 글이 쉬우면서도 짧으면서도 재미있어야 했다. 그러니 글을 보내기 전에 고치고 다듬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로 이오덕 선생님에게 글을 먼저 보내, 한번 봐 주십사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선생님은 내 글을 차분하게 봐주고 도움말을 주시곤 했다.

 

나는 요즘도 선생님이 쓰신 글쓰기 관련 책을 보곤 한다. 정말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낀다. 이 가운데 읽고 또 읽어도 좋은 부분이라면 이런 거다. ‘글쓰기는 삶을 가꾸는 것이며,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한다’는 말이다. 또한 아이들도 읽을 수 있게 쉬운 우리말로 써야 한다는 말도 좋다.

 

나는 이제 삶을 가꾸는 글쓰기가 뭔지를 뼈저리게 느낀다. 글쓰기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 두려움을 그 뿌리에서 마주하게 한다. 엉킨 실타래를 풀게 해준다. 사랑이 뭔지를 조금씩 알게 한다. 누군가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갖게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식구가 시골에 뿌리내릴 수 있는 데 글쓰기가 큰 힘이 되었다. 

 

그 뒤에도 우리 식구가 다시 한번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중학교를 올라간 큰아이가 ‘학교를 계속 다닐 건가, 말 건가?’를 고민했을 때. 이때 선생님은 충주 무너미에 사셨다. 선생님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잘 자라는 어떤 아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에게 용기를 주셨다. 그 뒤 우리 부부는 아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글로 적어보았다. 그러니 아이 모습이 제대로 보이고, 덩달아 우리 식구가 가야할 길도 점점 또렷이 보이는 거다. 공부를 억지로 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나 일을 하는 게 본인도 좋고 부모도 좋고 덩달아 사회에도 좋을밖에.

 

아이들이 학교를 벗어나자, 어찌 된 셈인지 글 쓸 거리도 넘친다. 새로운 길을 가다 보니 두려움도 적지 않았지만 설렘이나 호기심도 많이 살아나는 게 아닌가. 우리 부부는 이를 묶어, <아이들은 자연이다>라는 책을 내게 되었다. 이 책을 지으면서, 글 한 편 한 편 때로는 문장 하나를 놓고도 식구가 같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나와 아내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가. 글쓰기가 삶을 가꾸어준다는 게 무슨 말인지 깊이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으리라. 어려움이나 두려움을 피하지 않는 거라고. 아내와 관계를 푸는 데도 글쓰기는 큰 힘이 되었다. 이전에는 부부 싸움은 누구나 하는 거라고 믿었다. 근데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이를 글로 찬찬히 써놓고 다시 보니 참 못난 짓이라는 걸 알겠다.

 

이렇게 글쓰기는 삶을 가꾸고, 삶은 다시 글을 풍성하게 한다. 글로써 삶이 가득 차 오를 때면 선생님이 그립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첨부파일 제6회_이오덕_공부_마당_안내.hwp

출처 : 홈스쿨링 가정연대
글쓴이 : 아이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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