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는 초희, 소똥, 하림, 경이가 왔다. 7일에 있을 파파로 모임을 앞당겨, 미리 채연이네로 온 거다. 가만히 보니 이 아이들이 모두 글쓰기 소모임 회원들이다.
오늘 아침에 초희와 통화를 했다.
“어때, 특별한 일정 없으면 나랑 글쓰기 공부 안 해볼래?”
“예, 저는 좋아요.”
“그럼, 아이들과 상의해서 내려와.”
조금 있으니 아이들이 우르르 다 우리 집으로 내려왔다. 오디 효소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을 쓰고는 싶은 데 다들 어렵다고 했잖아? 왜 쓰고 싶은 지 또는 뭐가 어려운 지를 먼저 이야기해보자.”
다들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머뭇한다.
“초희가 먼저 해볼래?”
“글을 쓰려고 하면 뒤죽박죽 되요. 머리 속에 있는 만큼 글이 안 나와요.”
경이는
“그냥 배워보고 싶어요. 뭐든 다.”
소똥이와 하림이는
“머리 속에 생각이 글로는 잘 안 돼요.”
아이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습관이 안 되어 있다. 말은 내키면 언제든 할 수 있지만 글은 미리 종이나 연필 같은 걸 준비해야하니 번거롭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쓰는 거 자체가 자신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경험이 중요하다.
“자, 글쓰기가 어렵다는 데 대해서는 다들 어느 정도 공감이 된 거 같다. 그럼 글쓰기로 들어가지 전에 자신이 가진 생각을 우선 말로 해보자. 글을 쓸려고 할 때 가장 좋은 건 자신에게 가장 인상 깊은 걸 쓰는 거야. 그런 점에서 각자 최근에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자.”
초희.
“얼마 전에 개가 죽었어요. 그동안 잘 놀았는데 막상 죽고 나니 그전처럼 눈물이 나지는 않더라고요. 뜻밖이었어요.”
그리고는 더 이상 이야기가 없다. 글을 쓰려면 좀더 이야기를 끌어내야한다. 다시 내가 물었다.
“그 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볼래? 키운 지 얼마 되었니? 왜 죽었지?”
내 질문에 대해 초희는 다시 또박또박 이야기를 한다. 제법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 정도면 충분히 글 한 편이 나올 만큼.
다음 소똥
“인상 깊었던 건 채연이가 제주 왔을 때 바다에 놀러 간 거요. 놀긴 했는데 어색했어요. 재미있기도 했지만.”
역시 여기서 말이 그친다.
“좀더 자세히 말해봐. 어떻게 놀았는지 왜 낯설었는지.”
역시나 소똥이 역시 생생하게 놀았던 장면과 낯설었던 상황을 되살려 이야기를 해준다.
경이
“그물 침대에서 채연이랑 누워서 노래 부른 거요.”
역시나 더 이상 말이 없다. 내가 다시 묻는다.
“그물 침대가 너희 집 정자에 매단 거 말하는 거지? 거기서 얼마나 놀았니? 노래는 주로 무슨 노래를 했어?”
경이는 다시 조근조곤 이야기한다. 경이 이야기에는 초희까지 끼어든다.
“얼마나 노래를 많이 했는지 목이 다 쉬었더라고요.”
채연이도 한 마디 한다.
“우리가 아는 노래란 노래는 다 부른 거 같아요.”
마지막 하림이 차례.
“사촌 동생을 돌봐주면서 느낀 점이요.”
“오, 그래? 사촌동생이 몇 살인데?”
“올 3월에 태어나 우리 집에 왔는데 지금은 제법 커서 뒤집기도 하고 그래요.”
이어지는 하림이 육아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고, 내용도 참 좋았다. 글이 기대가 된다. 일하는 내용 아닌가.
“자. 다들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이 정도 가지고 글을 쓴다면 가능하겠니?”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아무도 글을 쓸 공책과 연필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다. 내가 쓰던 자투리 노트와 몽당연필을 나누어 주고, 둥근 밥상을 펴서 글을 쓴다. 몰입해서 글 쓰는 아이들 모습이 다들 예쁘다.
얼추 20여분 만에 모두 다 썼다. 집중해서 쓰는 모습이 참 좋았다.
“자, 이제 글을 다듬기다. 부담 가질 건 없고. 우선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보면 어딘가 어색한 곳이 있을 거야. 먼저 그 곳을 고치면 좋아. 그 다음 더 좋은 건 소리 내어 읽어보면 글 흐름이 어색한 곳을 잘 짚어낼 수 있지.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여러 사람 앞에서 소리 내어 읽는 거야. 이러면 본인도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함께 하는 장점이라고 할까.”
각자가 쓴 글을 읽는데 다들 놀라운 발전을 했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제법 길게 썼으며,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비교적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전에는 스스로 애매했던 부분이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을 한 친구도 있다.
다들 글 발표를 듣고 서로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고쳐 쓰는 글은 여기 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대략 시간은 이랬다. 이야기 나누기 10분, 글쓰기 20분, 글 발표 10분, 글 다듬고 고치고 카페에 올리기 20~30분.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이야기하고 집중해서 글을 쓰고 또 발표해준 셈이다. 한 사람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고, 글을 올리는 데 순서를 기다려야 해서 전체 시간은 좀더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피아노를 치거나 책을 보거나 같이 공기놀이를 했다.
홈스쿨러들은 개성 있게 자라는 편이다. 그런 만큼 글 역시 개성이 뚜렷하다. 글은 자기만의 세계가 잘 드러나야 좋은 글이 된다. 남과 비슷한 글이라면 누가 그 글을 읽겠나. 그런 점에서 우리 가정연대 아이들은 이런 개성을 잘 살려 가면 좋겠다. 나 역시 아이들과 즉석에서 함께 한 글쓰기 시간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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