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짧은 하루였다. 부천 유한대학교에서 열리는 연두농부교실을 다녀왔다. 내 딴에 제법 강의준비를 해갔다.
같은 주제를 되풀이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듣는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하는 사람은 재미다 덜하다. 때문에 되도록 강의 때마다 조금은 다르게 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전에 부부가 같이 강의를 하기도 했고, 미리 수강생들의 뜻을 물어보기도 했으며, 강의는 짧게 토론은 길게도 해보았다.
이번 강의는 말 중심보다는 이미지와 글에 무게 중심을 두고자 했다. 구체적으로는 파워포인트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강의안을 짰다. 지난해 한번 해보려고 시도하다가 여의치가 못했던 것.
처음 해본 파워포인트
근데 이번에는 대안교육연대 사무국의 도움을 받아 어렵지 않게 해냈다. 먼저 강의안을 짜고, 여기에 맞게 사진을 고른다. 그 다음 사진을 적절한 크기로 줄이고, 여기에다가 강의 뼈대를 글자로 집어넣는다.
파워포인트는 기능이 아주 다양하지만 내가 이를 다 소화하기는 어렵다. 내가 한 거는 그야말로 맛보기 정도. 일단 처음 짜보는 강의안이라 이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새롭게 짜는 강의안이라 만드는 내내 참 즐거웠다. 내가 마치 10대나 20대 젊은이로 돌아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렇게 강의안을 다 짜고 나니 슬슬 욕심이 난다. 조금 더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강의 중간에 동영상 몇 개도 끼워 넣고 싶다. 먼저 우리 <홈스쿨링 가정연대> 그림쟁이가 작사 작곡 노래하고 탱이가 반주를 한 <쥐가 사과를 먹어>라는 동영상. 지난 여름 우리집 마당에서 했던 작은 음악제 때 영상이다. 나로서는 무척 감동적이었기에 영상으로나마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거 말고도 움직이는 영상이 생생하다 싶은 것들을 더 곁들이고 싶은 거다.
무주에서 첫 차 타고, 서울을 거쳐, 부천 온수역. 걸어서 유한대학교 도서관 2층 강의장에 도착하니 내게 주어진 예정 시간보다 20분 전. 농부교실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진행했던 변현단샘이 그 특유의 화법으로 열강을 하고 있었다.
열강하는 변현단샘
그리고는 쉬는 시간에 인사만 잠깐 나누고 강의 점검. 내가 준비한 파워포인트가 제대로 작동할지 궁금했기에. 집에서 가져간 USB 메모리카드를 진행하시는 분에 넘겨주자 곧이어 화면에 영상이 떴다. 이제 됐구나 싶었다.
역시나 이전 강의와 달리 나로서는 참 편했다. 화면을 하나 새로 띄우고 나면 짬이 난다. 사진을 보는 느낌에다가 사진 속에 요약 글이 들어가 있기에 그렇다. 수강생에게는 잠시나마 생각할 시간을 줌과 동시는 나는 나대로 무슨 이야기로 끌어갈까를 화면을 보면서 생각할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나는 강의를 일방적으로 하는 거는 별로다. 주고받고 오고가는 흐름이 중요하다고 믿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참여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그리고 이날 또 하나 좋았던 건 아이들이 함께 했던 것. 여덟 살 난 어린이와 이제 16개월 된 아기도 있었다. 가족이 함께 하는 모습도 좋지만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두 시간에 걸친 강의 시간동안 크게 지루해하지 않고 함께 해준 건 나로서는 영예롭기까지 하다. 아이들 맑고 빛나는 눈을 마주 본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힘이 난다.
어린 아이도 엄마 곁에서 방실방실^^
질의응답이 끝나고, 내가 가져간 씨앗을 나누고, 뒤풀이. 일차 뒤풀이는 교실에서. 여러 사람이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먹으며 이야기도 나누고 색소폰 연주도 듣고 노래도 하고...이걸로도 아쉬워 이 차는 온수역 가까운 곳에서. 하다보니 밤 열시가 넘어서고 있다.
서로 먹여주고 나누어주고 보살펴주고
이제 자리를 끝내고 싶다. 그런데 변샘은 일어설 줄을 모른다. 곡성에서 먼 길 달려온 여덟 살 어린이 역시 몸을 비틀며 지루해하는 기색이 뚜렷하다. 나 역시 이제는 한계상황. 함께 차를 타고 내려오는 게 어렵다면 나 혼자만이라도 찜질 방에서 자고서 다음날 아침에 내려갈까 했다.
그래서인지 다들 아쉽지만 자리를 일어섰다. 곡성으로 귀농한 분 차를 다섯 사람이 같이 탔다. 타자마자 변샘은 곯아떨어졌다. 나 역시 운전해주는 분한테 미안하기는 했지만 곧이어 잠에 빨려들었다. 아내가 중간에 전화를 주면 덕유산 Ic까지 마중나온다고 했는데 깨고 나니 어느새 덕유산 Ic. 우리 집 가까이까지 차로 나를 바래다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이 때가 새벽 한 시 반.
도깨비에 홀린 거 같았다. 먼 길이었지만 결코 멀지 않았고, 꼬박 하루가 지난 시간이었지만 타임머신을 탄 거 마냥 거꾸로 흐른 시간처럼 느껴졌다. 함께 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뒤풀이를 돌아보는 동영상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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