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진안군 뿌리협회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우리 식구는 서울 살다가 96년 봄에 시골로 내려왔다. 피폐한 도시 삶을 접고 새롭게 살아보자고. 돌아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가장 큰 변화라면 아이들이 일찍이 학교를 그만둔 거라고 해야겠다. 큰 아이는 중학교를,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를 조금 다니다 그만 두었다.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는 데는 자연이 주는 가르침이 컸다. 농사를 짓다보면 땅에 빈틈이란 없다. 곡식이든 풀이든 빈틈을 두지 않는다. 바랭이라는 풀 한 포기가 뻗어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방팔방 똬리 틀듯이 야금야금 빈틈없이 땅을 차지하려 한다. 곡식들도 그렇다. 수수는 하늘 높이 솟고, 고구마와 호박은 땅 바닥을 뒤덮는다.
짐승은 또 어떤가. 병아리가 자라는 모습을 보노라면 힘이 절로 난다. 어미 닭이 물어주는 먹이도 잽싸게 받아먹지만 틈만 나면 스스로 모이를 찾아 발길질을 해댄다. 이들을 지켜보다보면 아이들 교육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게 된다. 풀도 곡식도 짐승도 다 생명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누가 뭐라 하기 전에 스스로 잘 살고 싶어 한다. 사람도 생명이요, 아이들도 자라는 생명이다. 누구나 꽉 찬 삶을 원하지 않는가.
혼자 심심하다 보니
큰아이는 어느새 대학조차 가지 않고 어른이 되었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작은애는 열일곱 청소년이다. 그동안 우리 아이들 일상을 돌아보면 학교 식 공부와는 참 달랐다. 교과서니 계획표니 이런 거 없다. 잠시 해보기도 했지만 몇 달 가지 못했다. 그냥 아이 자신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한다. 시골 삶이란 처음에는 어떤 점에서 단조롭기 짝이 없다. 도시처럼 자극하는 게 많지 않다. 마을에 또래 아이들이 없어 가끔은 심심하기까지 하다.
근데 이 심심함이 보약이 되는 게 아닌가. 자신이 무얼 좋아하고, 무얼 하고 싶은 지를 자주 돌아보게 됐다. 놀고 싶다면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길을 찾더라.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힘은 둘이나 여럿이 어울릴 때도 그 빛을 발휘한다. 같이 놀다가 다툴 기미가 보이면 혼자 놀던 그 힘이 나와 슬그머니 물러난다.
또한 심심하다 보니 잃어버렸던 호기심도 많이 살아난다. 고양이와 친구처럼 지낸다. 벌레들도 곧잘 관찰하고, 죽은 새를 땅에 묻어주기도 한다. 시간이 많으니 자연스레 책을 많이 읽는다. 한동안은 책을 너무 많이 봐서 골치였다. ‘책 좀 그만 보고 운동 좀 해라.’고 하는 말이 내가 아이들에 가장 많이 한 잔소리였을 정도로.
그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일에 부쩍 관심을 갖는다. 성가실 만큼……. 이를 보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울 뿐만이 아니라 일하면서도 배우고 자란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때로는 놀이처럼 시작하는 일이지만 이를 존중해주면 자랄수록 일하는 힘도 늘어난다.
아마 작은 아이가 일곱 살 무렵쯤이었을까. 부모가 벼를 베고 있으면 아이는 그 곁에서 메뚜기를 잡곤 했다. 그 다음해는 부모 따라 벼 베기를 해보겠다고 다가선다. 그렇다고 낫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가위를 가져와 줄기를 하나씩 베는 게 아닌가. 그러던 아이가 열 살쯤 되자, 드디어 낫을 잡고 벼를 벤다. 첫 해는 두 어단. 그 다음해는 열 단. 곧이어 아이가 일년 먹을 양식을 베었다. 청소년이 된 지금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밥벌이는 스스로 하는 편이다. 책을 산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캠프를 가고 싶다면 자신이 모은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아내가 좀 도와주겠다고 하니 정중하게 거절한다. 그 이유가 그럴 듯하다.
“엄마 도움 받으면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하거든요. 내가 보고 싶은 책보다 엄마가 원하는 책을 사야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보다 엄마가 원하는 곳이어야 하거든요.”
자식 밥그릇을 어른들이 함부로 깨지 말아야
일은 이렇게 사람을 당당하게 만든다.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지만 그 틈이 있게 마련이다. 꽉 찬 삶으로 나아가자면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아이들은 이를 본성으로 느끼는 거 같다.
요즘 우리 식구는 하루 두 끼를 먹는다. 아내와 내가 함께 한 끼를 차리고, 또 한 끼는 아이들 둘이서 차린다. 집안 청소도 식구마다 정해진 구역이 있어 일상으로 한다. 농사 역시 마찬가지. 자신이 맡은 영역이 있고, 모내기나 고추 심기 같은 큰일은 식구가 함께 한다. 시골살이에 큰일 가운데 하나인 손님맞이도 식구가 함께 한다. 손님이 집으로 찾아오고 함께 밥을 먹다보면 어른 손님 아이 손님 구분이 없다.
이렇게 아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가장 큰 소득이라면 부모로서 아이들 성장을 자주 확인하게 된다는 거다. 우리가 아이 성장을 확인하는 건 시험이나 성적이 아니다.
아이 성장을 가장 도드라지게 확인하는 건 역시나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하며,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해가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일은 아이들에게도 무척 소중하다. 아이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아이가 자람에 따라 하고 싶은 일도 늘어난다. 호기심으로 하다가 식구 한 사람 몫을 하기 위해서도 하며 능력이 되는 만큼 이 사회에 쓸모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적지 않는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이 다음에 큰 인물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앞날을 위해 곧장 책상머리 경쟁으로 몰아간다. 언젠가 아주 큰 밥그릇을 가지길 바라면서. 근데 이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가.
사람은 자기답게 자라고 또 자신에게 넘치는 걸 나눌 때 행복을 느낀다. 제 밥그릇을 놓아두고 자꾸 남 따라 그릇을 키우려고 할 때 제 그릇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책상머리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점점 자신을 잃어버리는 아이들. 일류대 들어가고 나서도 경쟁이 버거워 자살하는 아이들. 대학을 나오고도 마땅한 일자리와 일거리를 못 찾아 헤매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를 반증하지 않는가.
우리 부부는 일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배고프면 밥 차려먹는 일부터 소중한 일이지 않는가. 이 일이 소중하다면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풋고추를 딴다거나 상추를 뜯어오는 일 역시 소중하다. 덩달아 심고 가꾸는 일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소중한 일들을 소중하게 익히며 자라다보면 하고 싶은 일들도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마치 잡초가 둘레 빈틈을 차곡차곡 메워가듯이.
아이들은 자라고, 부모는 늙어간다. 아이들은 점점 일을 많이 하고, 부모는 점점 일을 줄여가야 하는 게 자연의 이치리라.
김광화 : 전북 무주에서 농사일 틈틈이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다. 학교를 벗어나 자유롭게 성장하고자 하는 여러 가정들과 함께 <홈스쿨링 가정연대>라는 모임도 꾸린다. 아내와 함께『아이들은 자연이다』『자연 그대로 먹어라』그리고『피어라, 남자』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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