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몸으로 하는 몸놀이

빛숨 2011. 7. 1. 20:38

 

 

 

어른들이 잘 빠지는 함정이 하나 있다. 아이들 놀이라면 놀이도구(기구)나 동무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무슨 퍼즐이니 레고 같은 게 두뇌발달에 좋다고 잔뜩 사들여 제대로 치우지도 못해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생고생을 감수한다. 아니면 또래 친구가 없다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며 동무 찾기에 나선다.

 

놀이다운 놀이, 놀이의 근본은 그렇지가 않다. 바로 몸 자체다. 먼저 짐승을 보자. 새끼 고양이 자라는 모습을 보노라면 몸 하나면 모든 놀이가 가능하다. 땅을 구르고, 나무를 오르고, 어미랑 뒤엉켜 재주 겨루기를 한다. 가끔은 어미가 물고 온 먹이감인 쥐를 가지고 놀기도 한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키운다면 몸이 근본이 되는 놀이를 곧잘 즐긴다. 내 이웃에 일곱 살 난 평화라는 남자 아이를 보자. 평화를 보노라면 몸을 얼마나 잘 놀리면서 자라는 지, 잃어버렸던 내 어린 시절을 되찾는 거 같은 착각을 하게한다. 나 역시도 저렇게 놀았을 텐데, 기억이 가물가물 하니까.

 

한창 몸을 놀리고 싶은 아이. 거실만 해도 놀 천지다. 앞구르기를 해본다. 처음에는 엉거주춤 조심조심 머리를 바닥에 박고 뒤로 넘어가본다. 점점 자신이 생기니 자신 있게 구른다. 뒤에서 달려와 속도감 있게 구른다. 보는 것만으로 짜릿하다. 이게 웬만큼 되니 옆으로 구르기, 벽에 기대어 물구나무 서기...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논다. 몸을 놀린다.

 

몸으로 하는 놀이는 장점이 많다. 우선 몸과 마음이 조화롭게 발달한다. 몸이 너무 앞선다거나 마음이 너무 앞서지 않는다. 마음 가는 만큼 놀고 몸이 할 수 있는 만큼 논다. 건강하게 성장하는 바탕이 된다. 놀고 싶은 데 제대로 놀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제대로 자라기 어렵다.

 

몸으로 하는 놀이는 치울 게 별로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요즘은 장난감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상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근데 놀잇감보다 장난감이라는 말 자체부터가 뭔가 어색하지 않나. 장난이라. 놀이와 장난은 많이 다르리라. 아이 스스로 만들어 노는 놀잇감은 치우는 것도 놀이가 되지만 돈 주고 산 장난감은 치우는 일이 장난이 아니더라. 돈은 돈대로 들고, 속은 속대로 끓고, 부모는 아이랑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자.

 

몸으로 하는 놀이는 돈 드는 일이 별로 없다. 다만 어른들이 무리하게 앞장 서 놀이를 이끌 때면 다치기도 한다. 혼자 스스로 놀 거리를 찾을 때는 다치는 법이 거의 없다. 무슨 놀이든 아이가 스스로 자신이 설 때 나서기에 그렇다.

 

자연스레 자라는 아이들에게 마당은 마당대로 놀 거리들. 뛰고 잡고 살핀다. 아이들은 뭔가 하나의 목표가 생기면 곧장 그리로 가야한다. 그래서 뛴다. 마음 가는 데 곧장 몸이 가는 거다. 이렇게 뛸 수 있을 때가 청춘인데 대부분의 청춘들이 책상머리에 갇혀 제대로 몸과 마음을 놀리지 못한다.

 

무언가를 살피고 노는 것도 중요한 놀이. 온몸을 이용해서 노는 것은 몸을 고루 발달시키는 거라면 이렇게 한 곳에서 뭔가를 관찰하는 건 눈, 귀, 코 , 혀와 같은 구체적인 감각 기간을 발달시키는 거다. 먹을 수 있는 지 맛을 보고, 벌레 한 마리조차 그 움직임을 살피며, 새소리 바람 소리에 귀를 열며, 어디선가 밀려오는 향기에 코를 집중한다. 부모랑 몸 접촉은 피부 감각을 발달시키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아이들이 나무나 바위를 올라가려 하는 거 역시 좋은 몸놀이. 아이는 자신 없어 하는 데 무리하게 나무를 올라가게 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호기심으로 살피고 자신이 선만큼 올라가고, 두려움을 이겨낸 만큼 올라간다. 나무를 오르자면 신발을 벗는 게 좋다. 맨 몸일수록 제대로 놀게 된다. 우리 손과 발에는 그 어느 부위보다도 많은 땀구멍이 있다. 그 이유는 손과 발로 하는 몸짓이나 일이 많기 때문이다. 뭔가를 잡거나 하자면 손과 발이 절대. 손과 발에서 적당히 땀이 나와 줄 때 부드러우면서도 잽싸게 원하는 걸 잡아챌 수 있다. 사냥이나 채집을 하려고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몸놀림이다.

 

감이나 오디를 따려고 감나무나 뽕나무를 올라가 보면 누구나 당장 느낄 수 있다. 올라가기로 마음먹는 순간 살짝 긴장되면서 손과 발에 땀이 보이지 않게 나오기 시작한다. 양발이나 장갑을 끼었다면 이런 감각은 무디어지고 나무와 몸이 따로 놀게 되며, 위험하기 짝이 없게 된다. 손발에서 땀이 나는 건 대상을 제대로 잘 잡고자 하는 자연스런 몸놀림이다.

 

뭐든 그렇듯이 무리한 몸놀림은 탈이 난다. 일상에서 이렇게 놀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면 몸은 마음을 넘어 무리하게 놀게 된다. 아니, 마음이 흥분하게 되니 몸을 지나치게 움직이게 된다. 몸에 열이 오르거나 심하면 코피가 터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한두 번씩 겪으면서 점점 자신을 키워 가리라.

 

이렇게 몸 놀이를 잘 하면서 자란다면 어쩌다 갖게 되는 도구나 가끔 만나게 되는 동무랑 노는 건 덤이 된다. 크게 어지럽히거나 다치지 않으며, 동무랑도 크게 다투지 않는다. 놀이가 자신을 성장시킬 때 그 뜻이 있지, 자신이 다치거나 동무랑 다툰다면 놀지 않는 건만 못하니까. 다툰다는 건 그게 무엇이든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겠나.

 

그리고 보니 요즘은 몸이 곧잘 마음에 휘둘려 쉽사리 흥분되는 세상이다. 몸 놀이는 아이들한테만 소중한 게 아니다. 몸과 마음의 조화가 절실한 어른들한테도 소중하지 않을까.  자신이 하는 일에 따라 몸을 너무 안 움직이거나 너무 많이 움직이니까.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절실한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