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스크랩] 놀이를 일로, 예련이가 그린 숨은 그림 찾기를 보면서

모두 빛 2011. 8. 20. 13:55

 

예련이 가족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도시 직장을 떠나, 대안적인 삶을 찾고자.

예련이는 여섯 살. 언니인 자련이는 아홉 살, 대안학교를 잠깐 다니다가 그만두었단다. 홈스쿨러다.

 

어른들끼리 이야기하는 사이 아이 둘은 만화를 본다. 예련이는 아직 글자를 몰라, 만화로 그림을 본다. 이희재가 지은 ‘아이코 악동이’.

만화를 다 보더니 아빠에게 온다.

“아빠, 심심해. 나랑 그림 그리자.”

“아빠는 이야기해야하는데. 혼자 그리면 안 될까?”

 

아이가 고개를 흔든다.

“내가 먼저 그리면 그 다음 아빠가 한번 그리는 걸로 하자.”

 

내가 곁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그 방식이 새롭다 싶어 내가 나섰다. 나야 꼭 이야기를 안 하더라도 곁에서 아내가 하기에 빠져도 되겠다 싶어서다.

“예련이 아저씨랑 그릴까?”

 

아이는 좋다며 먼저 그린다. 하트 모양을 그렸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아이가 그린 그림에다가 화살을 그려 넣었다. 그 다음 아이는 공주를 그린다. 나는 오이를 그리고.

“아저씨, 우리 이제 숨은 그림 찾기 할까요? 내가 먼저 그릴 테니 찾아보세요.”

 

나는 부쩍 호기심이 생긴다. 아이 자신이 숨은 그림 찾기를 그려낸다니. 아이가 어찌 하나 보니

“아저씨 아직 보지 마세요.”

 

아하, 미리 보면 안 되는구나. 아이는 열심히 그리더니 내게 주문을 한다.

“이 그림에서 코끼리 코와 가지를 찾아보세요.”

 

아이가 내게 건네준 그림은 여섯 살이 그렸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무엇보다 가지 그림이 좋다. 머리 모양이랑 제법 닮았다.

 

예련이가 대견해서 나는 이 그림을 다른 여러 어른들에게 보여주고 나서 숨은 그림을 맞추어 보라고 했다. 다들 재미있어했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소중한 보기를 얻는다. 아이 그림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으리라. 그림 그 자체를 놓고, 놀이라는 점에서, 그림과 시에 대해서, 교육이란 점에서, 아이 세계관에 대해서...나는 여기서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간단히 짚어볼까 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놀이가 일이 된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놀이 삼아 했지만 내가 볼 때 이건 일이다. 보통 어른들은 아이들이라면 일단 배워야한다고만 생각한다. 아이가 일을 만들어내고, 일을 하리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근데 다른 눈으로 아이를 본다면 매우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위 그림으로 다시 이야기를 확대해보자. 보통 아이들은 어린이 신문이나 잡지가 오면 숨은 그림 찾기를 즐긴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를 맞추는 즐거움이 클 테다. 근데 남이 낸 문제를 맞히는 재미도 좋지만 이보다 더 높은 성취감은 없을까.

아이들은 바로 그 답을 알고 있다. 예련이처럼 스스로 그런 문제를 내는 거다. 이제 여섯 살에 불과한 아이가 이런 문제를 내리라고 누가 생각을 하겠는가. 이 아이가 그림에 탁월하게 재주가 있어서도 아니요, 문제를 잘 내는 천재여서도 아니다.

 

내가 볼 때는 보통 아이들 누구나 이렇게 일이 담긴 놀이를 한다는 거다. 그만큼 일은 놀이보다, 배움보다 성취감을 높여준다는 걸 아이는 본능을 안다. 어른들이 이런 아이 욕구를 잘 살려줄 때 아이는 부쩍 성장하고, 당당하게 자라며, 일머리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일로써 그림을 그릴 때 그림 실력이 빨리 늘게 되고, 덩달아 새로운 문제를 자꾸 생각하면서 일머리도 점점 좋아지게 되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모인 어른들이 아이 그림에 관심을 갖자 즉석에서 하나 더 문제를 냈다. 이번 그림에는 남자 어른 한 사람을 그렸는데 숨은 그림이 딸기와 바늘이었다. 나는 넥타이를 바늘로 그린 그림이 재미있었다. 이 정도 아이 실력이라면 가족신문 같은 걸 만들 때 이를 잘 살려 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아이는 그림 그리기도 시큰둥하다. 아이가 재미 삼아 또는 심심함을 이겨내기 위해 하는 것이 또 있다. 엄마 아빠에게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겠단다. 이 부분 역시 일이란 눈으로 보면 참 근사하다. 보통은 부모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가 이야기를 듣는 관계다. 근데 이건 아무래도 아이가 수동적이다. 한두 번이야 재미있지만 더 재미있는 건 아이 자신이 같은 내용을 어른이나 그 누구에게 들려주는 거다.

 

이 역시 일이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자기 식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들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같이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상상력을 연결해서 자유롭게,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해주면 된다.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일로 한다는 건 다른 말로 하자면 아이가 주인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남 이야기를 듣는 것과 달리 아이 자신이 이야기를  해주자면 아이 나름 머릿속으로 그림을 구상하게 되고, 이를 눈에 보여주듯이 표현하게 되며, 때로는 무섭거나 기쁜 표정에서는 연기까지 해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역동적이고 즐겁겠는가. 주인 되는 삶은 먼 미래에 있지 않다. 아이들은 순간마다 이렇게 주인으로 자라고 싶어 한다.

 

그렇다. 아이들에겐 놀이와 일의 구분이 없다. 이런 보기는 무궁무진할 테다. 근데 정작 어려운 건 어른들이 아이한테 충분히 애정을 기울이지 못하는 환경이다. 그러다보면 아이들은 놀이 기구에 의존하게 된다. 자신이 놀이를 만들고 놀이를 일로 발전시키는 대신, 누군가 대신 만들어둔 게임에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 가만히 있어도 자극과 유혹이 넘치는 세상이 아닌가. 다른 분들의 경험은 어떠신지?

출처 : 홈스쿨링 가정연대
글쓴이 : 아이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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