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스크랩] 홈스쿨러 사회성(4) 제 눈으로 세상 보기

모두 빛 2011. 2. 20. 22:00

드라마 <시크릿 가든> 그 이야기 한 토막을 먼저 해보자. 주인공 현빈은 도도한 사장. 그 아래 상무나 비서 그리고 직원들은 현빈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기껏 곁눈질로 흘낏 보다가 현빈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화들짝 놀란다.

 

이런 현빈에게 당당하게 눈을 똑바로 뜨고 마주 볼 수 있는 여주인공이 바로 길라임이다. 이 드라마는 이미 여기서부터 그 시작과 끝을 거의 다 보여준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눈과 눈빛 그리고 눈 마주보기는 아주 중요하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아이들의 사회성을 제대로 키워주기 위한 하나의 길로, 눈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해볼까 한다. 사람이 가진 다양한 감각기관 가운데 눈이란 세상과 만나는 첫 관문이지 않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받아들이는 정보란 대부분 눈으로부터 얻는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 눈을 보면 위에 드라마처럼 많은 걸 읽어낼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 눈을 어디로 두는가. 마주 보는가. 흘낏 보는가, 아예 내리까는가. 심지어 초점 자체를 잃어버려 흐리멍덩한 건 아닌가.

 

상대방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하나만 단순하게 말하자면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의 눈빛이란 거의 사냥감을 쫒는 사냥꾼의 눈빛에 가깝기에 그렇다. 현빈이 아래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빛. 누가 일 잘 하나, 누가 회사를 나쁘게 하지는 않나? 반대로 직원들은 사장에게 찍히지 않으려고 쩔쩔매고 되도록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지 않나. 사장 눈에 딱 들게 평생 일하는 직원은 전 세계를 다 뒤져봐도 거의 없으리라. 그러니 사장과 눈을 마주치는 게 두렵게 된다.

 

길라임 역시 현빈하고는 눈을 마주 보지만 자기네 회사 대표 눈은 제대로 보지를 못한다. 또한 자신이 흠모하는 연예인 역시 제대로 보지 못한다. 자신의 눈을 가리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다. 그런 만큼 현빈과 연애도 울고불고 야단이다. 눈치를 주고 눈치를 보는 관계가 일상이 된다.

 

나는 요즘 청소년 아이들한테서도 종종 이를 느낀다. 어쩌다 그 부모 따라 함께 만난 청소년들 가운데 적지 않는 아이들이 어른들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부모가 인사를 시키면 힐끗 보고는 마지못해 고개 한 번 숙이고는 끝이다. 더 이상 관계 맺고 싶지 않다는 표시다. 어른들과 괜히 눈을 마주 해봐야 질문 공세를 받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른들 눈빛이란 현빈이 직원들 바라보듯이 사냥감을 쫒는 눈빛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아이에게 작은 틈만 보이면 잔소리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자꾸 터져 나온다는 걸 아이는 본능으로 체득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러니 아이는 당장 상대방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게 아니라면 무시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게 최선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무한 경쟁에 휘둘리며 자라다 보면 자연히 눈치가 늘게 마련이다. 당당한 제 눈으로 보지를 못한다. 뭔가를 본다는 건 제 눈으로, 제 눈빛으로 볼 때 제대로 보는 것이다. 제 눈빛은 접어두고 남 눈으로 보는 것들은 그마나 남아있던 제 내 눈빛마저 사라지게 한다.

 

자기 눈에서 나는 빛으로 세상을 볼 때만이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불일치가 사라진다. 이게 조금 어려운 말일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은 서로 선순환해야 한다. 무언가를 본다는 건  그 봄에서 내 삶에 유익한 그 무엇을 얻기 위함이다. 유익한 그 무엇이 보일 때 사람들은 그 무엇을 좀더 깊이 애정을 갖고 본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무언가가 새로 보인다. 이렇게 애정을 갖고 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아름다움, 경이로움, 조화로움, 자연스러움...

 

문제는 선순환하지 못하고 악순환하는 데 있다. 보기 싫은 데도 ‘보아야 하는 당위의 눈’은 악순환으로 빠져드는 지름길이다. 보기 싫은 것들을 볼 때 우리 눈은 자신도 모르게 가늘게 떠지거나 외면하거나 눈을 감고자 한다. 가능하다면 아예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이런 아이들 몸짓을 이해 못하는 어른들은 아이만 탓한다. 아이가 산만하다고...

 

누구나 살다보면 보기 싫어도 보아야할 때가 있긴 하다. 세상이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하는 한 불가피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눈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 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곳을 지속적으로 오래도록 보다 보면 제 눈빛이 사라진다. 눈치만 남고 흐리멍덩하게 된다. 그도 아니면 눈에 핏발 서, 자기 눈만 있고 세상이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런 눈빛은 폭력이 나오기 직전에 가깝다. 참고 참아 더 이상 참기 어려울 때 우리 눈은 핏발이 서니까.

 

어른들에게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아이들만은 되도록 자신에게 소중하고 절실한 것들, 보고 싶은 것들을 더 많이 보고 자라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찍 감치 제 눈빛이 사라진다. 남 따라 살다보면 남는 건 눈치 밖에 없다. 내 삶이 아니라 남 삶이다. 남이 어디 대학 갔다더라, 남이 돈을 얼마 벌었다더라, 무슨 차 굴린다더라...

 

자, 이쯤에서 정리를 하자. 결론은 제 눈으로 세상을 보며, 그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을 때, 밝고 아름다운 사회가 된다는 사실이다. 문학이니 예술이니 이 모든 것도 깊이 따져보면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제 눈으로 세상 보기’라는 하나의 영역에 불과하지 않겠나.

출처 : 홈스쿨링 가정연대
글쓴이 : 아이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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