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자연과 하나 되기

물 얼고, 전기 나가고

모두 빛 2011. 1. 4. 08:53

연초부터 난리를 쳤다. 먼저 물이 얼었다. 늦은 저녁에 내가 닦으려보니 더운 물이 안 나온다. 이날따라 식구들이 목욕하고 빨래를 많이 해서일까. 심야전기 온수니까 ‘밤에는 물이 다시 데워지겠지.’ 쉽게 생각하고 대충 씻고 잤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도 안 나온다. 앞이 캄캄하다. 연휴라 누구에게 수리를 부탁할 수도 없다. 가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부랴부랴 로켓 스토브에 불을 지피고 물을 데운다. 부지런히 불을 떼니 20분쯤 지나서야 물이 따습다. 물 한 통 데워봐야 쓰는 것은 잠깐. 우리가 날마다 쓰는 온수가 얼마나 귀한 지 새삼 깨닫는다.


급한 마음에 제주도 사는, 설비 관련 일을 잘 아는 이웃에게 전화를 했다. 제주도에서는 이렇게 보일러 배관이 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전문가라 전화로 이야기만 듣고도 가볍게 진단을 내린다.


“온수가 전혀 안 나온다면 배관이 얼었을 거예요. 물을 끓여 수건을 적셔서 언 부위를 녹이세요.”

그리고 보니 그 전날 내가 보일러 실 문을 열었다가 제대로 닫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영하 16도까지 내려가는 추위에 말이다. 일단 원인을 알았지만 보일러 배관 구조를 내가 잘 모르니 우리 바로 곁에 사는 이웃을 불렀다. 이 분은 산골 생활에서 물이 얼어, 녹인 경험이 많다.


“물 수평 호스, 물 한 바가지 담은 압력솥, 일회용 가스버너를 가져와요.”

둘이서 좁은 보일러실에 들어갔다. 먼저 온수 탱크로 들어가는 관을 만지니 따뜻하다. 여기는 언 게 아니다. 그렇다면 온수탱크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관은? 보온 덮개를 벗기고 만져보니 얼음장이다.


파이프렌치를 가져와 온수 탱크 입구를 열었다. 집안 온수가 들어가는 관 속으로 물 수평 호스를 집어넣으니 팔뚝 정도 들어가다가 더 이상 안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언 셈이다.

버너에 압력솥 물을 끓인다. 압력솥 추가 칙칙 하면서 김이 나자, 여기에다가 물 수평 호스를 끼운다. 이제 그 호스 반대편을 언 부위를 향해 집어넣는다. 더운 김이 들어가면서 녹으니까 호스가 끄덕 끄덕하듯이 안으로 딸려 들어간다. 한 뼘쯤 녹자, 안에 녹은 물을 따라 버리고 다시 집어넣고. 점점 호스가 깊이 들어간다. 그러기를 한 시간쯤. 드디어 뚫렸다. 얼추 일 미터 이상 얼은 거 같다. 더 많이 얼어, 배관이 터졌다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이제 사는구나 싶은데 좀 있자, 이번에는 전기가 나갔다. 이게 웬일인가. 한전에 부랴부랴 전화를 해서 복구를 요청했다. 한 시간쯤 지나 복구가 되었다. 근데 저녁 무렵에 또 전기가 나갔다. 또 전화를 하고.


추운 밤, 전기마저 안 들어오니 조금 두렵다. 구들방이 있고, 가스가 있으니 당장 어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참 끔찍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눈이 많이 와, 그 눈 무게 때문에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그 가지가 떨어지면서 전깃줄을 덮치면서 정전이 왔단다. 산골은 전봇대 둘레 곳곳이 나무라 이렇게 눈이 많이 온다면 정전이 잦을 수밖에 없겠다. 어두운 밤이라 그런지 수리하는 데 거의 두 시간가량 걸린 것 같다. 그 사이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촛불을 켜고 식구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기가 얼마나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전기가 나가고 나니, 캄캄한 밤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없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나는 기타를 잡고 놀았다. 자꾸 불안해하느니 차라리 이 순간을 즐기자고. 다시 들어온 전깃불은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했다.

                          

눈 폭탄이 남긴 흔적은 길고도 길다. 물과 전기는 해결되었지만 길은 여전히 어렵다. 면사무소로 전화를 했다. 이장을 통해 답을 주겠다고 하더니 아무 답이 없다. 큰 국도 이외 간선도로들도 제대로 눈이 안 치워진 상황이니 이렇게 산골 샛길까지 나라에서 치워주기는 어려운가 보다. 그렇다고 주민들이 다 치우기에는 눈이 너무 많고, 치워야할 길이 너무 길다.


게다가 날은 추워 녹은 눈이 다시 얼기도 하여 차를 몰고 나서자면 그야말로 전쟁 상황이다. 길 곳곳에 눈 무게로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길을 막고 있다. 이웃들과 힘을 합쳐 나뭇가지를 치우긴 했지만 여전히 빙판 길이 많아 택배 차가 들어오지 않는다. 보내야하는 택배는 물론 올 택배조차 계속 늦다. 설 연휴가 지나고 나서, 택배차가 간선도로까지 들어왔다. 내가 보낼 곶감 다섯 상자를 지게에 지고 간선도로까지 나가, 택배를 보냈다. 우편물조차 그러했다. 그나마 연초에 사람들과 특별한 약속을 잡지 않아 다행이었다. 연초부터 자연이 주는 위대함과 두려움을 톡톡히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