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농사와 사는 이야기

김 매기 요령, 낌새와 기세

모두 빛 2010. 7. 5. 05:50

 

 

 

장마 시작 전에 글을 올린다는 게 어찌 하다 보니 늦었다. 장마와 풀은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비도 구질구질 오고 하니, 자료 정리 삼아 올린다.

 

요즘은 풀을 대하는 자세가 예전과 같지 않다. 참 다양하다. 그 나름 철학들이 깊고 울림이 있다. 여전히 풀과 전쟁하고 씨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풀과 공생을 또 누구는 풀로 식탁을 장식한다고 풀을 일부러 키우기도 한다.

 

농사를 얼마나 짓느냐, 농사를 지은 지 얼마나 되느냐, 왜 농사를 짓느냐, 무경운이냐 경운이냐에 따라 풀을 바라보는 생각도 다 다르리라.

 

아무래도 농사의 기본은 살기 위해서다.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짓던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선택에 따라 농사를 짓는 건 이전 삶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다.

 

농사를 짓고, 풀과 씨름을 하다보면 ‘때’라는 게 있다. 곡식도 심고 거두는 때가 있듯이 풀도 그렇다. 냉이와 개망초가 깨어나는 때와 쇠비름과 명아주가 싹이 나는 때가 다르다.

 

때에는 싹이 나고 씨앗이 맺히는 순간만이 아니라 낌새나 기세라는 때도 있다. 농사를 여러 해 지어보면 그런 낌새와 기세를 어느 정도 알게 된다. 그래서 옛말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생겼다. 호미는 할머니 혼자서도 시나브로 하면 되지만 가래질은 장정 셋이 있어야 제 기능을 할 만큼 힘든 일이다. 사실 장마에 바랭이가 뻗어 가면 가래도 안 통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풀을 다 잡는 건 어리석다. 농사도 기세다. 기세는 사람이 갖는 기운 자체도 있지만 상대방 낌새를 얼마나 잘 아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바랭이나 비름은 6월부터 하나 둘 나기 시작한다. 이 때 감자는 기세가 왕성하다. 감자 밭에 바랭이나 비름은 문제가 크게 안 된다.

 

그러나 비슷하게 심어 자라는 콩은 다르다. 콩이 뿌리를 내리는 것 이상으로 잡초는 그 기세가 무섭다. 장마 전에 하나 둘 깨어나는 놈들이 장마 때 사람이 주춤하는 사이 순식간에 밭을 점령한다. 바랭이란 놈이 번지는 모양을 보노라면 저절로 그 기세에 압도당한다. 중심에서 온 사방으로 뻗어가다가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고 다시 거기서 방사형으로 뻗어간다. 그냥 두면 정말 빈 자리, 빈 틈 하나 없이 바랭이만으로 켜켜이 자란다. 이렇게 땅을 기면서 뻗어가다가도 자기보다 더 큰 키의 곡식이나 풀이 있으면 위로도 솟아나는 게 바랭이다. 햇살과 땅을 장악하고자 하는 바랭이의 전략은 무서울 정도다. 그러다보니 콩밭을 지나다가 바랭이를 보고 그냥 지나치기는 참 어렵다.

 

경운을 하는 땅이라면 초기에 대처하면 아주 쉽다. 평이랑 상태에서 콩을 심고, 바랭이나 비름이 보일 듯 말 듯 싹이 트면 그냥 가볍게 북을 주듯이 한번 슬쩍 긁어준다, 풀이 아주 조금씩 눈이 보일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풀씨도 발아를 해서 막 올라온다고 봐야한다. 싹이 안 난 풀씨는 흙으로 뒤집어도 또 살아나지만 싹이 돋은 풀씨는 대부분 흙이나 다른 걸로 피복을 하면 죽는다. 한 마지기 콩밭 정도는 이런 식으로 김을 매면 한 시간 정도면 된다. 그런 다음 한 보름쯤 지나면 콩은 제법 자란다. 곁가지가 네 개나 다섯 개 정도 나올 때 한번더 북을 주듯이 김을 맨다. 물론 이 때 윗 순도 질러주면서. 이 정도 하면 웬만큼 곡식이 풀을 제압하는 상태가 된다. 곡식은 뿌리를 강하게 뻗고, 잎이 무성하여 그 아래는 그늘이 된다. 풀은 이제 막 깨어나더라도 뿌리 힘도 약하고, 햇살도 적게 받는다.

 

이렇게 곡식 기세가 강해지면 김매는 일조차 조심해야한다. 즉 풀 한 포기조차 용남을 못한다고 계속 김을 매는 것은 곡식한테도 좋지 않다. 콩 같은 경우는 뿌리가 옆으로 많이 뻗는 편이기에 콩 꽃이 필 무렵에는 특히나 밭에다가 손을 안 되는 게 좋다. 풀 잡는다고 땅을 건드렸다가 콩 뿌리를 건드리게 된다. 꽃이 필 때는 산모들처럼 곡식도 예민하다. 도와주진 못할망정 망쳐서야 되겠나. 풀이 너무 많이 자란다 싶으면 낫으로 베어서 콩 곁에 깔아주는 게 좋다.

 

무경운 밭은 김 맬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무경운은 그 자체로 이미 기세다. 땅을 갈지 않고도 농사를 짓겠다는 건 그만큼 준비된 게 많다는 뜻이다. 흙에 대한 믿음, 피복 효과에 대한 경험, 곡식과 풀에 대한 이해.

 

땅을 갈고 화학비료를 주고 제초제를 치는 땅은 땅이 메말라 딱딱하다. 그러나 갈지 않으면 땅은 그 속에 수많은 생명들이 제 스스로 길을 내면서 땅을 살린다. 대신에 피복이 중요하다. 농업 부산물이나 풀들로 땅을 덮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어려운 점은 웬만큼 덮어주어서는 표가 잘 안 난다는 점이다. 대규모로 하기는 어렵다.

 

내 같은 경우는 밭 대부분을 무경운으로 하지만 집중해서 피복을 하는 땅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집은 마늘 양파 밭이 무경운을 하기에 참 좋은 환경이다. 밭 둘레에 갈대가 왕성하게 자라니 이를 활용할 수 있다. 갈대는 얼마나 키가 크고 거름진 풀인가. 팥과 쥐눈이 콩을 거둔 뒤 갈대로 피복을 하고 마늘과 양파를 심는다. 겨우내 틈틈이 피복을 계속 해도 좋다. 풀로 하는 피복은 겨울이 마디다. 여름풀은 낫으로 베어서 덮는 순간은 좋지만 마르면 한줌 밖에 안 된다. 겨울 풀은 말라있기에 깐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갈대는 거친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는다.

 

피복을 넉넉히 하면 풀은 맥을 못 쓴다. 우선 발아가 어렵다. 땅을 갈지 않으면 풀씨는 제 스스로 땅 위에서만 싹이 나야한다. 그러자면 휴면이 끝난 시점에 비가 어느 정도 와서 곧바로 물을 머금고 뿌리를 내려야한다. 여기 견주어 경운은 땅 위 풀씨를 땅 속에다가 심는 셈이 된다. 그것도 골고루.

 

무경운에서는 풀이 어렵게 뿌리를 내려도 자라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슬쩍만 잡아도 잘 뽑힌다. 또한 비온 뒤에도 일이 가능한 곳이 무경운 피복 밭이다. 그러니까 경운한 땅은 비 온 뒤에는 땅이 질척한데다가 풀을 뽑더라도 그 풀을 어디다 두기가 어렵다. 밭 한 쪽에 던져두면 다시 쉽게 뿌리를 내리니까. 반면에 피복밭은 웬만큼 비가 와도 질척이지 않는다. 듬성듬성 보이는 풀은 보이는 대로 뽑아 피복 위에다가 던져두기만 하면 된다. 뿌리가 제 스스로 땅을 찾기에는 피복이라는 환경이 이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무경운 피복은 좋은 점이 참 많으나 어려운 점을 두 가지 더 말하자면 나무와 거세미다. 땅을 갈지 않으니 밭 둘레 나무 가운데 뿌리로 뻗어가는 것들이 야금야금 밭으로 파고들어 올라온다. 겨울에 밭 둘레 나무들을 정리해주는 게 좋다. 거세미는 경운한 밭에는 거의 없다. 먹을 게 없기도 하고, 겨울나기가 부적합하며, 어쩌다 있더라도 경운시 로터리 날에 의해 죽기 쉽다. 무경운 피복 밭은 이 모두가 반대다. 먹을 게 많고, 겨울나기 안성맞춤이다. 거세미가 특히나 좋아하는 곡식(고추, 참깨, 콩, 옥수수들)을 심을 밭에는 양을 넉넉히 심는다. 거세미가 솎는다 여기고. 그리고 거세미는 보이는 족족 잡아주는 수밖에 없다.

 

풀을 기세로 대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이웃이다. 거름 되고, 반찬 되고, 약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