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교육대학교 학생들 질문과 그 답변. 홈스쿨링과 생명교육

모두 빛 2009. 11. 28. 14:53

아래는 한창 교사의 꿈을 키우고 있는  **교육대학교 학생들 질문에 대한  답변인데 글이 조금 기네요. 학생들 질문도 함께 넣는 게 더 실감이 날듯해서 그대로 옮깁니다... 


감사합니다  ^ ^

인터뷰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어떠한 내용을 인터뷰하면 좋을지, 토론 끝에 5가지 정도의 내용으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저희 주제가 '공교육, 무엇이 잘못되었나? 그리고 나아가야할 방향은?' 이다보니

'홈스쿨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형태', '그의 장점과 단점',

'공교육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홈스쿨링에서는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에 연구의 초점이 정해졌습니다.

때문에 인터뷰 질문이 두 분의 '홈스쿨링' 경험에 대해서 묻는 것이 많답니다.


@우선 인터뷰 전체를 보면서 준비를 꼼꼼히 한 점에 대해 박수를 보냅니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인터뷰를 해 보았지만 <아이들은 자연이다>를 이렇게 성실하게 읽고 또 탐구하는 자세로 임하는 경우는 없는 듯해요. 학생들 덕에 새삼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탱이 상상이게 존칭을 붙인 것도 신선하고 좋네요. 탱이는 이미 어른이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만^^

아래 답변이 제한된 지면에서 하다보니 아무래도 ‘근본’에 가까운 부분이 많으니 연구와 토론에 참고하면 좋겠어요.


첫 번째 인터뷰 질문 :


- 귀농을 하게 되신 계기와 그 과정에 있었던 교육에 대한 고민들을 책에서 읽고, 공감하였습니다. 또한 두 분의 교육관과 교육방법이 비록 공교육의 형태와는 다르지만 분명 의미있는 '교육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틀리지 않은, '다른' 교육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의문인 것은, 책의 날짜가 2006년 기준이고, 현재는 2009년, 곧 2010년입니다. 귀농을 결심하시고, 탱이님과 상상이님(존칭을 붙이고 싶었는데, 책을 읽을 때 너무 정감있게 읽어서 그런지 존칭을 붙이는 것이 왠지 낯선것 같네요. ^ ^)의 홈스쿨링을 생각하셨을 때와 지금의 교육관과 생각은 차이가 없으신지요? 혹시나 교육을 하던 과정에서 변하게 되신 생각이 있으시다면 여쭤보고 싶습니다.


@첫 답변입니다. 학생들이 본 대로 책을 낸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렸지요? 그런 만큼 달라진 게 없다면 이 역시 뭔가 잘못이겠지요. 우리네 생각도 삶도 교육도 달라진 면이 많아요. 이를 다 다루자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겁니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단 하나만 들자면, 솔직히 ‘자식 덕 보기’입니다.^^ 의외인가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자연이다>에서는 배움의 본성이랄까, 생명 교육에 대한 우리 식구 경험을 밝힌 거지요? 이 때만 해도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무한 경쟁으로 몰아가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네 교육 방식과 그 방향이 옳은가. 그러다 보니 우리가 겪은 일 위주로 책을 쓰게 되고, 이때는 되도록 주장을 삼갔지요.

 

하지만 책을 낸 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 철학이나 방식이 바르다는 확신이 깊어지면서 이제는 우리가 좀더 솔직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커진 거지요. 그건 이래요. 부모 처지에서 자녀교육을 이야기 한다면 자식 이전에 먼저 부모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한다고 봐요. 그 첫 질문은 ‘왜 자식을 낳는가?’ 입니다. 교육에 대한 접근과 답은 대부분 이 질문으로 녹아든다고 봐요. 그 답은 부모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맞나요? 그럼, 다시 질문이 이어지지요. ‘자식으로 인해서 부모가 어떻게 행복하게 되는가?’로.

 

보통 부모들은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자식 뒷바라지를 해요. 때로는 희생을 감수하면서. 그러나 이런 방식은 부모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겁니다. 아기를 낳는 게 행복이듯이 키우는 과정 역시 행복해야하는 거지요.

 

보통 부모들도 다 느끼는 이야기이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부모는 많지 않는 듯해요. 자, 보세요. 아기를 갖는 순간부터 부모는 자식 덕을 보는 겁니다. 갓난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위로와 힘을 얻나요? 아기가 커가면서 보여주는 성장의 힘은 또 얼마나 놀라운가요?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부모로서 그 기쁨을 충분히 누리는 겁니다. 아이가 말을 배우면 이 역시 큰 기쁨이요, 손을 움직여 뭔가를 만들어낼 때는 또 얼마나 기쁜가요? 아이를 이런 눈으로 바라보면 아이 성장 자체는 그야말로 경외감을 줄 정도지요. 심심함을 이겨내면서 스스로 놀이를 창출하는 모습. 세상에 대한 다양한 호기심, 부모 일에 참견하며 거들려고 하는 모습, 하나를 알면 이를 알려주고 싶어 말을 재잘재잘하는 발랄함. 부모가 힘들다면 어깨라도 주물려주려는 배려심....

 

이렇게 자식 덕 보기는 끝이 없어요. 자식 덕 보는 비법은 자식이 성장하는 걸 부모가 칭찬하며 받아들이는 겁니다. 부모가 자기 욕심에 눈이 멀면 자식이 성장하는 모습은 안 보이고, 성장해야하는 당위만 보는 거지요. 이렇게 하는 건 부모도 아이도 불행하게 됩니다. 반면에 자식 덕을 보는 건 부모도 좋고 자식도 좋은 거지요. 자녀가 일차 쓸모가 있는 건 바로 부모에게서니까요. 부모에게 쓸모가 없다면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고 봐야지요. 아이들의 사회진출은 바로 부모 쓸모를 넘어 사회 쓸모로 나가는 길이기도 하구요. 그건 곧 자아실현의 확장된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 또한 만약 된다면 탱이님의 생각도 듣고 싶기도 해요. ^ ^ 탱이님은 수능이나 대학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보셨을 것 같아요. 현 사회는 많은 부분이 대학의 학벌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해요. '대학네임'때문에 몇천 만원의 빚을 지면서까지 사립대를 택하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그러한 학벌사회에서 대학과 공교육은, 미래의 꿈인 '직업'과도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탱이님이 장래희망을 결정하셨을 때, 대학이나 홈스쿨링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셨다면 그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김광화님과 장영란님의 책 마무리글, '꿈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에서 두 분의 생각을 알 수 있었지만, 탱이님의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탱이 답변 :


  안녕하세요. 탱이입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가워요. 대학에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랜만에 들어보는 질문이네요. 대학을 갈 나이가 되었을 때, 잠시 대학에 대해 생각했어요. 대학에 가려면, 제가 여태껏 살던 삶을 다 버려야 했어요. 자연 속에서 사는 것도, 자유롭게 공부하는 것도. 그렇게 대학에 가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대학네임’이나 학벌은 저에게 별 의미가 없었어요. 미래에 직업이라면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고, 그 당시부터 어느 정도 하고 있었거든요. 저에게 대학의 매력이라면 ‘또래들’이었어요. 스무 살 대부분 대학에 가니까요. 그렇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어야 깊이 있는 친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만났던 저랑 비슷한 삶을 사는 친구들과 모임을 시작했어요. 써놓고 보니 모임을 만들게 된 게 어떤 면에서는 대학 덕분이네요? 아하핫. 마지막으로 공부. 대학에 관한 질문에도 답변에도 공부가 차지하는 자리가 적네요. 그러나 원래 대학은 공부하러 가는 곳이니까, 묻지 않으셨지만 대답할게요. 요즘은 여러 길이 열려있어서 대학 바깥에서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더라고요.

 

  자연 가까이에 살면 삶을 꾸리기가 훨씬 풍요로워서, 돈을 덜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을 선택할 때, 미래를 생각할 때, 다른 가치들에 더 비중을 둘 수 있어요.


두 번째 인터뷰 질문 :


-첫 번째 인터뷰 질문과 연관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꼭 여쭤보고 싶었던 질문이랍니다. <아이들은 자연이다>책을 읽으면서 '현실에서는 이루어 질수 없는 공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굉장히 '이상적인 교육'이기도 했구요. 그러한 교육형태를 택하시고 지금까지 계속해오시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 있으셨나요? (교육방법, 교육결과, 교육비, 교육내용 등등) 그리고 혹시 그 힘든 점을 극복해오셨다면, 그 과정과 방법도 궁금합니다.


@힘든 점은 역시나 부모 욕심이라고 봐야지요. 일상에 대부분을 아이를 믿고 아이 덕을 보지만 부모에게 남아있는 그 어떤 욕망은 깊은 거 같아요. 아이들이 이렇게 하면 더 발전하겠다는 욕심 같은 거 말이죠.

 

보기를 들어, 아이가 정리정돈을 잘 안하다면 하라고 지금도 가끔 잔소리를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게 참 주관적이잖아요? 아이 처지에서 정리정돈의 기준이 있는 건데. 다른 것도 다 마찬가지겠지요. 건강이라든가 배움이라든가...

 

이 간격을 극복하는 건 아이와 그때그때 솔직하게 대화로 푸는 길밖에 없지요. 대화과정에서 부모가 밀리면 솔직히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고, 아이가 밀리면 부모 생각을 받아들이는 거고요.

 

이러한 과정에서 대화에 대한 방법이나 태도에 대해 부모나 아이들 역시 많이 배우게 되요. 대화를 하자면 내 이야기에 앞서 상대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려는 자세가 시작이니까요. 또 이렇게 대화를 하다보면 국어에서 말하는 ‘말하기나 듣기 교육’ 또는 토론교육은 저절로 된다고 봐요.


세 번째 인터뷰 질문 :


  -학교에는 세 가지 교육과정이 있다고 해요. 하나는 정부에서 명시된 교육과정, 즉 교과서와 교사용지도서에 나타나 있는 교육과정이죠. 그리고 하나는 선생님이나 학교에서 가르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아이들이 배우는 교육과정이에요. 친구의 부정적인 행동을 따라 배우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세 번째 교육과정은 '잠재적 교육과정'입니다. 그 교육과정의 내용은 원래는 학교에서 '가르쳐야만' 하지만 명시된 교육과정 내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들이에요. 친구들과의 우정이나, 교과서에 포함되지 않은 사회의 도덕이나 규칙을 지키는 것.. 등이 해당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교육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위의 배운 것을 떠올리던 중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잠재된 교육과정'은 홈스쿨링에서 어떻게 가르쳐지는 걸까? 하구요. 잠재적 교육과정의 예는 매우 많지만, 그 중 하나가 '사회성'이겠지요... 책을 읽고 두 분이 '사회성'과 관련된 질문에 답하신 내용을 읽었지만, 그럼에도 궁금한 것이 있어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두 분이 말씀하셨다시피 사회성에는 두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다른 사람과 사귀는 능력', 하나는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이죠. 저희가 궁금했던 것은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이예요.


  사회에 적응한다고 하는 것은 여러 의미를 지닐 수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사회의 규칙을 알고 그에 맞춰가는 것'인 것 같아요. 그 의미에서 공교육의 학교는 '작은 사회'라고 지칭된 바 있지요. 사회가 으레 그렇듯 학교도 아이들을 줄 세워서 심화반-보충반 나누기 바쁘고 아이들은 학교에게 '견뎌내야 함'을 강요당하죠. 그러한 학교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면서 평가주의 교육이니 뭐니 비난하지만, 결국은 '어쩔 수 없는 것'도 이러한 학교의 모습이 사회의 많은 부분과 닮아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옳고 그름을 따지기도 이전에 이미 학교는 사회의 한 부분이면서 사회의 모습을 띠고 있는 거라고 인정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물론 탱이님과 상상이님께 '사회부적응'같은, 부정적인 단어는 절대로! 붙이고 싶지 않아요.(취학의무유예 사유에 '학교부적응' 이라는 말이 적혔다는 것에 저희 조원들 모두가 격분했었답니다. 모 양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보수주의 사회같으니!'라고 말했죠. ^ ^;) 하지만 언젠가 탱이님과 상상이님이 '적응해야 하지만 적응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피할 수 없을 때, 그 때 부모님이신 두 분은 어떠한 결정을 내리길 바라시는지 궁금해요.


인터뷰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제시해보았어요.


'한 기업에 취직을 했지만, 그 기업은 탱이님과 상상이님의 경우를 인정하지 않아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야하는 것을 비롯한 기업의 규칙을 강요하고, 그에 따라 승진점수를 매기며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그 기업에서 승진할 수 없게 되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물론 직업의 세계는 매우 다양해서 탱이님과 상상이님이 이러한 직업을 택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상황이 닥쳤을 때, 장영란님과 김광화님의 '생각'이나 '바람'이 듣고 싶어요.) 


@위의 세 가지 교육과정이라면 나로서는 잠재적 교육과정이 아주 마음에 드네요^^이렇게 분류한 걸 놓고 보니 학교는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부분에 대해 많은 걸 놓치는 거 같군요. 우리는 아이들끼리 어깨너머로 주고받는 것 가운데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걸 많이 봐요. 홈스쿨링에서 친구는 강제된 경쟁이 아니고 서로가 필요에 의해 친구를 사귀기에 서로가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많이 준다고 봐요.

그럼, 세 번째 잠재된 교육과정의 한 부분인 사회성에 대해 이야기 해 볼게요. 우선 사회를 좁게 보면 안 돼요. 사회는 무척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회사도 조직도 많고, 직업은 더 많지요?

 

그러니 보기로 든 질문은 내게 답을 ‘강제’하는 거 같군요^^. 이렇게 강제된 상황은 인간의 에너지를 부정적으로 소모시키는 면이 많아요. 굳이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지요. 그런 일 말고도 일이 얼마나 많은 데....생명교육의 또 다른 장점, 위에서 말한 세 가지 가운데 잠재된 교육 과정의 하나가 ‘일머리 교육’이라고 봐요. 요리라든가 집안 일 같은 작은 일부터 스스로 해 나갈 때 일머리가 자라게 되는 거지요.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일머리도 늘어나고, 일머리가 늘어나는 만큼 일자리도 많아지는 거구요. 공부를 다 마친 다음에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 아주 에너지 소모가 큰 교육방식이라고 봐요. 그리고 그 일자리를 남이 주는 것이라는 것도 문제가 많아요.

 

일자리란 원래 본인 스스로 창출하는 거거든요. 자신의 일자리를 넓혀가다가 다른 사람 또는 어느 회사와 접목이 되면 한시적으로 필요한 만큼 일을 나누어서 하는 것이고요. 탱이가 어린이 책을 출판사와 결합하여 내는 것도 그렇고, 인터넷 서점과 제휴하여 아이들 요리 교실을 열어 강의를 하는 것도 그래요. 요즘은 어느 출판사와 그림 계약이 되어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리고 비슷한 또래들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두어 달에 한번씩 모임을 가지면서 힘을 키우고 있지요.

 

다시 한번 질문과 관련한 답변을 다르게 한다면 굳이 회사에 들어가 그 곳 룰에 맞추어 승진을 꿈꾸느니 ‘자기 삶의 CEO'를 이루는 게 자아실현에 더 가까이 가는 거지요. 이런 걸 새로운 사회성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으리라 봐요. 너무 이상적인가요? ㅎㅎ

 

그러나 원칙적인 부분에 대한 질문에는 공감을 해요. 즉 '적응해야 하지만 적응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피할 수 없을 때. 이를테면 서울에서 복잡한 지하철을 타야할 때. 이럴 때는 대개 자신이 원해서 서울을 가는 것이기에 힘든 순간은 참는 거지요. 사실 오랜만에 지하철은 타면 구경거리도 많고, 지하철 냄새도 독특해서 신기하기도 해요. 하지만 오래되면 그 신선도가 떨어지고 힘든 순간이 있는 거지요. 여기서 중요한 건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인내는 자극제가 된다는 점이예요. 똑같은 상황에서 남이 시켜서 하는 거라면 고통이 배가 되지만 스스로 원해서 그 상황에 놓이게 되면 별로 힘들지 않지요.

 

어린이 요리 교실을 열고 탱이에게 강의를 하라고 강요했다면, 주어진 시간과 장소에 맞추어 꼭 가야하는 거라면 엄청 스트레스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러 제안을 받고, 자신이 하겠다고 원하여 가니까. 그곳까지 가는 과정이 녹녹치는 않지만 참을 만하다는 겁니다. 약속 시간도 마찬가지에요. 늘 시간에 쫒기는 삶이라면 약속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요. 하지만 자신이 원해서 하는 약속은 기다려지는 거지요. 마치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예정된 시간보다 한두 시간 넉넉히 앞당겨 가곤해요. 시간에 쫓겨 종종거리느니 조금 일찍 가요.

 

학교 교육도 그렇지 않나요. 스스로 배우길 원하면 그 생활이 즐겁지만 학점이나 졸업 같은 억지 목표로 다닌다면 고통스러운 거지요. 일 역시 배움의 연장이라고 보면 되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원하는 만큼 하는 거지요. 보기를 든 회사하고 관계도 마찬가지고요. 하나의 직장, 하나의 회사에 일방적으로 자기 목을 매는 게 아니란 뜻입니다. 가끔 관계를 맺더라도 독립된 인격, 당당한 주체로 만나는 거지요. 이게 다시 말하자면 ‘자기 삶의 CEO'의 한 모습이 되는 겁니다. 너무 이상적인가요?^^


네 번째 인터뷰 질문 :


  미래의 교육자로서 고민해야하는, 그리고 고민하는 문제가 있어요.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퇴직을 당하신 선생님께서 저희 학교에 강연을 오셨을 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무엇을 왜 가르쳐야 하는가?' , '누가, 어떠한 사람이 가르칠 것인가?'

  그리고 교사는 위의 질문에 차례로 답을 하면서 발전해 나간다고 해요.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한 장영란님과 김광화님의 답을 듣고 싶습니다.


  조금 추상적이기도 하고, 질문 하나에 세 개가 들어있다니 다소 치사한(?) 질문이긴 하지만(^ ^), 저희는 두 분의 '교육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었어요. <아이들은 자연이다>라는 책을 읽으며 '이상적인 교육이다!'라고 외쳤지만, 두 분이 행하시는 교육의 기저에 있는 '교육관'에 대해 꼭 여쭤보고 싶었답니다.


@두 번째 '무엇을 왜 가르쳐야 하는가?'부터 이야기 하는 게 좋겠어요. 아이의 관심과 호기심에서 출발해야한다고 봐요. 즉 아이가 관심을 가지니까 가르친다는 겁니다. 어른들이 아이를 압박하지 않는 한 아이들 관심과 호기심은 무궁무진해요. 아이들이 궁금해 할 때 여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존중해주는 게 교육의 시작이 아닌가요. 

 

이렇게 하다 보면 ‘왜’라는 질문은 사라지지요? 아이가 원하니까가 답이니까요. 아이가 갖는 많은 관심에 어른들이 무관심할 때 어른이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아이는 관심이 없는 거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이 탓을 하곤 하지요, 아이들이 산만하다고...교육의 근본은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이지요. 아이가 배우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을 때 교사의 가르침은 그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 질문에는 ‘배우듯이 가르친다’고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그러니까 교사는 아이를 가르치지만 실제 가르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배우잖아요? 단순한 지식을 넘어 왜 가르치는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사가 성장한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성장이란?....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교육 현장은 교사들을 그 어떤 것보다 많이 배우게 하잖아요? 그러니 아이를 지식 전달의 대상자로 보는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새로운 교사상을 가질 때 가르침을 그 본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봐요. 성장하지 않는 교사는 아이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어요. 아이는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이 넘치는 데 교사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한다면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게 아닐까요? 이야기가 너무 무섭지요? ㅎㅎ 삶의 교육은 쉬우면서 무서운 거랍니다^^

'누가, 어떠한 사람이 가르칠 것인가?' 아이들은 누구나 배움의 본성이 있어요. 다만 어른들에 의해 왜곡 되는 경우 교사의 역할은 부분적으로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부모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제대로 돌볼 수 없을 때, 또는 일부 폭력적인 교사에 의해 상처를 입은 아이들에게는 치유의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보다 이렇게 뒤틀린 아이를 바로 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그 본래적인 믿음과 사랑을 되찾아줄 그런 교사가 필요하다는 거지요. 아이가 배움의 본성을 되찾는다면 교사도 더 이상 가르치려는 노력보다 스스로 성장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다섯 번째 인터뷰 질문 :


  <아이들은 자연이다> 에는 두 분의 교육형태가 가진 장점과 시사점이 매우 잘 드러난 것 같아요. 그래서 인터뷰 내용으로 '장점은? 시사점은?'이라는 질문은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 ^)

  대신 여쭤보고 싶은 것은 4번째 질문과 연관하여, 홈스쿨링과 생태주의 교육을 행하고 계신 두 분이 예비교사인 저희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입니다. 고민해주었으면 하는 점이나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것 등이 있으시면 부탁드려요. 그리고 생각하고 계신 공교육의 한계와 그를 보완할 방법이 있으시다면, 그 또한 부탁드릴게요.  (^ ^)

 

@네 번째 마지막 답변과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교사라는 직업보다는 ‘삶의 교사’라는 큰 틀에서 접근하면 좋겠다 싶어요. 근본에서 보자면 배우고 가르치는 건 즐겁다는 거지요. 이렇게 되자면 교사 스스로 어느 정도 자급자족하는 힘이 필요해요. 내가 아는 걸 대가 없이 기꺼이 나누자면 스스로 독립적일 필요가 있거든요. 아이들이 교사의 밥줄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밥그릇을 챙기면서 아이에게 다가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배우는 게 즐겁지 않는 사람은 가르치는 걸 즐겁게 하기가 어려워요. 즐겁게 배웠다면 나누어주는 것 역시 즐겁지요. 공교육이든 대안교육이든 홈스쿨링이든 다 마찬가지라고 봐요. 자신에게 절실하면서도 소중한 것들을 배울 때 즐겁고 기쁜 게 아닐까요? 어떤 교사가 될까 또는 밥줄을 무엇으로 할까를 고민하는 것 못지않게 ‘왜 배우는가’ 또는 더 깊이 ‘왜 사는가’에 대해 기꺼이 답을 찾는 젊은이가 되면 좋겠어요.

 

이상으로 대략의 답변을 했네요. 어쩌면 지나치게 근본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교사가 되고자 한다면 그 근본에 다가가는 물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본인을 위해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도. 더 나아가 인류 발전을 위해서도^^

 

끝으로 유익한 연구가 되고, 늘 ‘성장하는 교사’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