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귀농 후 달라지는 가정생활( 귀농교육 강의안)

모두 빛 2009. 7. 24. 06:53

농협 중앙회에서 여는 귀농 귀촌 교육 가운데 제가 맡은 강의안입니다. 귀농 후 달라지는 가정생활을 정리해보았는데 제법 글이 기네요.

 

 

 

<<귀농 후 달라지는 가정생활>>

                       ... 보고 싶은 사람을 더 자주, 더 오래, 더 소중하게 보는 삶


<머리글-도시가 싫어 떠나온다면 자기치유가 절실하다>


도시 살다가 귀농한 뒤 달라진 게 무얼까? 이런 질문을 받고 보면 참 많은 게 떠오른다. 세월 따라 해마다 달라졌고, 몸과 마음이 달라졌으며, 어쩌면 지금은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삶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도 가정생활을 중심으로 풀어본다.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보고 싶은 사람을 더 자주, 더 오래, 더 소중하게 보는 삶’이라고. 보기 싫은 사람을 자꾸 보아야 하는 삶이라면 나중에는 정말 소중한 사람조차 꼴 보기 싫게 된다. 하루하루 일상의 삶이 조금씩 망가지다보면 나중에는 전체 삶 자체가 헝클어지고 망가진다. 이게 점점 심해지면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에 이르기도 한다.

시골이나 자연이 진정으로 좋아서 도시를 벗어난다면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설사 그 과정에서 작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쉽게 극복한다. 그러나 도시가 싫어서 자연으로 내려온 경우라면 꼭 필요한 과정이 있다. 바로 치유다. 자신을 치유하지 않는 한 자연이 주는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한 어느 이웃을 보기로 들어보자. 이 집은 도시 살 때 아침이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저녁 늦게 흩어져서 돌아오니 식구끼리 얼굴 한번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가족이 함께 하는 삶을 누리고자 시골행. 지금은 좁은 방에 오그리복작, 날마다 24시간 얼굴을 본다.

과연 만족하는가? 만족은 잠깐, 잠시 뒤 식구끼리 자주 싸운다. 그 과정에서 소통하는 법을 다시 배운다. 함께 사는 법을 몸으로 배우지 못했기에 치유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가정마다 땅에 뿌리 내리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친다.

요즘 적지 않는 사람들이 소중한 사람과 관계 맺는 걸 두려워한다. 부부싸움이 잦고, 이혼을 하며, 결혼이나 자녀를 기피한다. 설사 자녀를 낳고 키우더라도 자녀가 커갈수록 부모 자식 사이에 벽이 더 두터워지기도 한다. 부부관계도 그렇다. 그저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다가 맞은 노년도 부부 사이 소통이 잘 안 되면 두려움이 된다.

그렇지만 귀농한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다만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새롭게 가꾸어 가면 새살이 돋고 조금씩 치유가 된다. 너무 욕심 내지 않고, 자신들이 먼저 내린 선택과 결정을 충분히 공감하고 또 즐기면서 한걸음씩 나아간다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으리라.


자, 왜 귀농인가? 이 첫 단추를 잘 끼워야한다.


-불건강에서 건강으로. 몸과 마음이 거듭나기.

-단절에서 연결로. 생명과 자연 순환에 눈뜸

-잃어버린 관계 회복. 가족 사이 소통이 깊어진다. ‘나’에서 시작하여 부부, 부모와 자식, 그리고 세상 이웃과 관계 맺기. 중심에서 뻗어가는 동심원.

-자기 ‘삶의 ceo' 되기


<저절로 얻게 되는 소득. 하지만 돈 주고는 결코 살 수 없는 축복>


우선 자연이 주는 환경을 능동적,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1 해지면 특별하지 않는 한 집으로 모여든다. 새들이 보금자리 찾는 거 마냥. 어두워지면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이를 적극 살리고 누린다. 가족이 모이는 게 자연스럽다. 얼마나 소중한 가족인가? 그 소중함을 되찾는다. 낮에는 일, 밤에는 쉼이라는 아주 간단한 리듬이 생긴다. 요즘은 적지 않는 사람들이 밤다운 밤을 잊고 산다. 하여, 온전한 밤이 새삼 소중하다.

2 낮과 밤은 물론 사계절을 뚜렷이 느끼는 삶.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춥다보면 면역력이 높아진다. 여기다가 적당한 육체적 노동으로 이따금 땀을 흘리다 보면 몸에 독소는 빠져나가고 혈액 순환이 좋아져, 감기가 멀어진다. 해가 갈수록 몸과 마음이 자연을 따른다. 우리 몸은 자연이자 살아있는 생태계다. 병이란 바로 이 생태계가 균형을 잃고 무너진 상태. 몸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도 몸을 존중하는 삶. 몸과 마음의 끊임없는 대화를 즐긴다.

3 부부 사이가 솔직하게 바뀐다. 자주 보고 함께 일하니 서로를 속속 들이 안다. 역할 분담식 부부관계가 아닌, 새로운 관계 맺기로 나아간다.

4 자녀들은 부모가 무슨 일을 하는 지 다 안다. 이해심이 높아진다. 특히 아버지 자리를 되찾게 된다. 아이가 원하면 엄마는 물론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속속 들이 다 안다.

5 가족 모두가 스스로 독립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자연에 모든 생명은 다 주인으로 살고자 한다. 이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과정은 곧 아기가 태어나고, 사춘기를 겪으며,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먹고 치우는 일에서 대화하는 법. 물건 쓰고 제자리 두는 법, 농사일과 집안 대소사....나중에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치 경제에 이르기까지 식구 사이 대화가 늘어난다. 밥을 같이 먹을수록, 일을 같이 할수록, 가까울수록 관계가 더 깊어진다. 하여, 말 그대로 식구(食口)가 무엇인지를 깊이 느낀다.


새롭게 달라진 걸 적극 감사하며 서로 칭찬하고 이를 잘 살려가야 한다. 단점을 고치려하기보다는 장점을 서로가 북돋아주기. 귀농 후 가정이 달라지는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자.


<부부 관계 치유>


-낮과 밤 계절 순환 가운데 특히 밤이 주는 평화가 크다. 밤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집중하게 하는 힘을 준다. 밤을 온전하게 보낼수록 낮 동안은 생산적이고 활기차다. 새벽에 저절로 잠이 깨는 삶으로 거듭난다.

-자연의 생명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 암수가 같이 집을 짓는 새(까치나 참새) 잠자리나 나비들 짝짓기 하는 여러 생명들 모습은 말없는 가르침을 준다. 곡식이 꽃을 피우고 수정하는 모습, 씨앗을 퍼뜨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부부 관계를 잘 하고 싶고,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러다 보니 홀로 귀농을 했다가 곧이어 결혼 하는 사람이 많다.

-아이들이 부부싸움을 말린다. 자신들이 잘 성장하고자 하기에 부모가 사이좋기를 바라는 건 아이들 본성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부모가 싸우는 걸 힘들어하고 참을 수 없어한다. 이를 무시하지 않고 귀를 기울인다면 부모로서 철이 든다고 할까. 부부 사이가 좋은 건 자녀한테 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교육. 아이를 가르치려 하기보다 아이한테 하나라도 더 느끼고 배우려 할 때 부모도 성장하는 기쁨을 누린다.

-혼자 있는 시간. 자신과 마주하기. 배우자 탓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기. 절대 자유를 위해 스스로 독립하는 삶. 짝을 고치고 싶다면 그에 앞서 나부터.

-경제성. 혼자일 때보다 둘이 하면 경제성이 두 배 이상. 특히 부부는 시너지 효과가 크다. 단순히 두 배가 아니다. 부부가 함께 할 때 오는 심리적인 만족도는 훨씬 크다. 아니, 셈을 할 수 없을 정도. 자신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자녀교육>


무한 경쟁 교육이라는 억압을 벗어나, 생명 교육이라는 축복을 누리자. 땅에 뿌리내리는 삶과 교육. 자녀 교육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는 데는 농사에서 받은 영감이 크다. 자식 농사란 말도 그래서 생겼다.

-벼가 분얼하는 모습. 벼는 적당한 거리를 둘 때 자유로우면서도 당당하게 자란다. 아이 생명은 곧 부모 생명. 아이 행복 역시 부모 행복. 무한 경쟁 교육에서 남보다 앞서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자기 존중감을 잃어버리는 아이들이라면 ‘독’을 빼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앞날 행복하자고 지금 모든 건 억누르고 힘들게 사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움.

-지나친 욕심의 보기, 고추농사를 가장 잘 짓겠다고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더니 보통 고추보다 키가 두 배가량 자라고 고추가 훨씬 많이 열렸다. 하지만 너무 웃자라 태풍에 쓰러지고 병에 걸려 평년작 보다 못한 결과가 나온 경험을 했다. 자녀교육도 그렇지 않나.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 아이를 망친다.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아이를 지켜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부모가 행복하게 살면 자식은 행복을 배운다. 부부사이 소통을 잘 하면 아이들도 소통을 잘 한다.

-나와 가정이라는 중심에서 뻗어가는 사회성


<자식 덕 보기>


- 아이들도 쓸모 있기를 바란다. 일차 쓸모 있는 관계는 부모와 자식 사이.

-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기 원초적 행복. 그 결과 큰아이는 어린이 요리책 <열두 달 토끼밥상>을 내었고. 작은 아이는 해마다 술 빚기와 창조적인 요리. 성장의 기쁨을 충분히 누린다.

-자식 덕에 한결 젊게 산다.

-일상적 대화, 자주 만나는 만큼 가까워진다. 하루 세 끼 밥 먹을 때마다 이야기 나누기. 뭐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밥상이 늘 떠들썩하다. 가족회의 신문 잡지 만들기...

-어른이 되고자 하는 아이들. 일과 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능력도 자란다. 시골 환경에서 큰돈 벌기는 솔직히 어렵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버는 가능성은 널려있다. 어릴 때부터 이를 잘 살려 가면 아이 좋고 부모 좋다.

-자신이 주인 되는 ‘삶의 ceo'로 키우자. 삶의 순간마다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을 발전시킨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다. 나이에 크게 구애 없이, 서로 성장하는 윈윈 관계로 발전

-원수인가 보배인가. 양자역학

-작은 힘이지만 큰 변화, 임계질량

-아이 친구들이나 도시 청소년들이 계속 찾아온다. 점차 사회적 부모 노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지금은 내 자식을 넘어, 다른 집 아이들 덕도 두루 본다.


<만국의 부부들이여, 다시 연애를 하자>


부부도 다시 연애를 할 수 있다. 나의 새로운 명함이 부부연애 전도사.

아내가 아닌 여자로 바라보기

아내의 다양한 모습.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친구, 연인, 선생, 동반자...

설레는 노년을 위해 요리 익히기, 부부가 계속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더 나아가 자연과 합일 과정으로 나아갈 때 죽음도 두렵지 않다.

남편은 아내에게 밥상 안식년을, 아내는 남편에게 가장 안식년을! 그 과정에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이웃관계> : 먼저 오랜 세월 터 잡고 사시는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인사 잘 하기. 구체적으로 인사하면 배우는 게 많다. 보기를 들면 ‘뭐 하러 가시나요?’ ‘벼 베었나요?’ 이런 식으로. 이렇게 선배 대접을 하면 관계 맺기가 한결 좋다. 그러다 보면 점차 꼴 보기 싫은 사람을 덜 보아도 되는 관계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이웃은 가족의 연장이 된다. 씨앗 나누기를 비롯하여 물물교환, 품앗이, 품 나누기, 새로운 문명(돈이 중심이 아닌 생명가치를 서로 나누는 사회로 나아가기)을 꿈꾼다.


<결론> : 함께 하는 삶이 주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기(배우자와 아이들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넘치는 건 이웃과 나누는 삶으로. 사는 날까지 새롭게 거듭나는 삶으로 나아가자.


김광화 : 전북 무주 농부. 15살 아들과 22살 딸은 모두 학교를 다니지 않고 부모와 함께 일하고 공부하며 성장한다. 곡식 농사 뿐만이 아니라 자식 농사에 이어 글 농사도 짓는다. 자칭 부부연애 전도사.

그동안 아내와 함께 자연에서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인 <아이들은 자연이다>와 건강한 먹을거리 이야기인 <자연 그대로 먹어라>를 냈다. 올 봄에는 남성의 치유와 자아발견에 대한 이야기인 <피어라, 남자>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