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부모야 자신들이 좋아 시골에 산다지만 아이들에게는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나요?”
그러니까 이 말에는 도시가 선택의 기회가 많으며 보고 배울 게 더 많다는 논리가 강하게 깔려있다. 과연 그런가?
얼마 전에 20대 젊은 연인 사이인 수와 진이가 우리 집을 온 적이 있다. 귀농을 준비한단다. 오기 전에 수가 전화로 묻는다.
“저희가 내려갈 때 혹시 필요한 거 없나요?”
이럴 때 나는 흔쾌히 ‘그냥 와라’고 하지를 않는다.
“응. 많아. 건강한 몸 그리고 요리 한 가지 익혀오기. 그 다음 너희들의 구체적인 꿈!”
일하러 오겠다는 젊은이들이지만 안 해보던 농사일을 얼마나 하겠나. 그저 건강한 몸을 가지고 맛나게 요리해먹고 가면 그게 남는 거니까. 그리고 젊은이들의 계획이 궁금했다.
집에 도착해서 일하겠다고 옷도 갈아입고, 신발도 갈아 신고 옥수수 모종을 들고 밭으로 갔다. 옥수수를 심어나가는 데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나중에는 소나기가 한바탕 내린다. 일을 조금 하다 말고 철수.
“너희가 준비한 메뉴가 뭐니?”
“달걀말이 밥이요.”
“그래, 어디 맛 좀 보자.”
곁에서 순서를 보니 이렇다. 밥을 하고 양념을 해서 비빈 다음 주먹밥처럼 작게 만다. 달걀 네 개를 푼 다음 한 스푼씩 프라이팬에 달걀프라이를 하듯이 얇게 편 다음 그 위에 주먹밥을 올리고 나서 달걀프라이로 밥을 돌돌 만다.
우리 식구 처지에서는 색다른 요리이기에 맛나게 먹기는 했다. 그런데 많고 많은 음식 재료가 여기 둘레에 널려있지만 이를 활용할 생각을 전혀 못한다. 심지어 쑥조차 잘 모른다. 아내가 그런다.
“서울에서 자취하자면 다 돈이잖아. 여기 쑥이 지천이니 많이 뜯어가라. 쑥국도 좋고 데쳐서 작게 뭉쳐 냉동실에 보관하면 오래 먹을 수 있어.”
그런데 수는 아예 쑥을 모른다. 그나마 진이는 기억이 가물가물한가 보다. 밖을 나갔다가 한참 있다가 돌아오더니 묻는다.
“이게 쑥 맞나요?”
기다랗게 뿌리째 뽑아왔다.
“응, 맞아. 근데 먹을 걸로는 위에 연한 순만 따면 되지.”
어릴 때 부모 따라 한두 번 쑥을 뜯거나 먹어 본 적이 있을 뿐. 삶이 되지 못하는 배움은 세월 속에서 잊혀지기 마련이다.
사실 채소 가운데 쑥만한 게 없다. 쑥은 3월부터 단오 무렵까지 먹을 수 있다. 사람들이 심고 가꾸는 배추 같은 경우는 두어 달이면 다 자란다. 손수 키우다 보면 어릴 때는 너무 어려서 먹기 어렵고, 다 크면 또 이를 제대로 다 먹어치우기에는 양이 많다.
그러나 쑥은 오래도록 먹을 수 있고. 먹다가 남아도 거름으로 쓰고, 더 자라면 베어서 멀칭을 한다. 또한 단오 무렵 쑥은 베어서 말려두면 민간의학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쑥뜸을 뜰 수 있고, 말린 쑥을 목욕을 할 때 넣으면 쑥탕이 된다. 집안에 나쁜 기운을 몰아내거나 소독 처리할 때도 쑥을 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쑥은 우리네 일상이 된다.
이 모든 것들은 일일이 지식으로 알려줄 수가 없다. 아니 골치 아프게 배울 필요가 없다. 살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니까. 그러나 삶이 자연과 동떨어지면 자연맹이 될 수밖에 없다.
자연맹이 어찌 쑥 하나만일까? 나무, 새, 벌레 들. 으름이 뭔지도 잘 모르는 데 으름 꽃(사진)이 얼마나 예쁜지, 으름이 얼마나 맛난지를 알지 못한다. 봄에 짝을 찾는 온갖 새소리를 듣지 못하니 누군가 자신을 절실히 원하더라도 그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작은 벌레 한 마리의 생명 에너지를 모르니 친구사이 따돌림이나 어른에 의한 아이들 학대가 흔하게 일어난다. 계절을 모르고 철을 모르니까 앞날이 불안하고 삶이 쉽게 흔들린다. 문맹을 가난이 낳은 사회적 질병이라 한다면 자연맹은 현대 사회가 낳은 또 다른 병인지도 모른다.
수와 진이는 20년 이상을 도시에서만 살다가 이제 다시 흙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니 얼마나 두려움이 많은가? 앞에 펼쳐진 삶이 설렘이 되기보다 두려움 덩어리로 뭉쳐있다. 우리 부부가 도시 부모들에게 종종 받았던 질문을 다시 되돌려 본다. 부모야 자기 좋아 도시에 산다지만 아이가 자연맹이 되는 건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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